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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니 Feb 01. 2023

항공업 '천하삼분지계'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중국의 꿈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에 그치지 않고 이노베이션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꿈은, 심지어는 중국과 같은 대국도,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국제협력이 아니라 이민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것이 다를 뿐. 일론 머스크도 태생은 남아공이다 *


작년(7월) 중국이 에어버스 항공기 292대 구매 계약(우리 돈으로 약 40조 원)을 체결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에어버스의 마음이 마냥 편하기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더 큰 역할을 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에 갈수록 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


(비록 중국 항공사들의 신토불이 정신 덕분이긴 하지만). 중국이 개발한 첫 중형기인 C919은 이미 32개 고객사로부터 천대가 넘는 주문을 확보했다


하지만 국내를 넘어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해외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대형 항공기가 필요한데 이것은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무리다 (보잉 787도 다국적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을 만큼 항공기 개발은 엄청난 리소스가 들어간다)


이에 중국은 공동개발로 방향을 선회한다. 다음 프로젝트인 C929를 개발하기 위해 중국의 COMAC (Commercial Aircraft Corporation of China)과 러시아의 UAC (United Aircraft Corporation)가 합작한 CRAIC (China-Russia Commercial Aircraft International Corporation)을 세운 것. 비행기 명도 C929에서 CR (China-Russia)929로 개명했다


러시아의 기술력과 중국의 자본, 생산력은 강력한 조합처럼 보였다. 미국에 버금가는 규모의 중국 시장에 러시아와 그 영향력이 남아 있는 중앙아시아를 더하면 보잉과 에어버스를 위협할 수 있는 규모의 판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둘의 파트너십이 서로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놓고 이견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엔진이 논란이 됐는데 러시아는 엔진 기술과 공급을 독점하길 원한다. 연구소와 조립 공장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놓고도 긴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중국은 항공기 시장에서 미국, 유럽과 동격에 선 제3의 플레이어가 되는 ‘천하삼분지계’를 꿈꾼다. 미래 항공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항공기술의 엄청난 경제적, 군사적 파급력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항공 대국의 꿈을 꾼 것은 매우 오래됐다. 민항기 개발을 목적으로 COMAC을 세운 것이 2008년이다. 애초에 강대국이 Domain Superioriy를 갈구하는 것은, 사람이 의식주가 해결되면 존경과 자기실현의 욕구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면서 항공과 우주에서 '우리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



한편 러시아가 원하는 것 역시 명확하다. 중국과의 파트너십에서 주도적인, 최소한 대등한 협상력을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 가능하면 돈으로 러시아의 기술을 사버리고 싶은 중국과 잡음이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는 러시아의 고위직들의 입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대로는 협력 지속이 어렵다…' 는 말이 서슴지 않고 흘러나왔다’


꾸역꾸역 개발이 진행되던 도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러시아는 개발에서 서양 업체들을 완전히 배제하자고 주장했지만 중국은 이 요구를 거절했다. 여전히 러시아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겉으로 노출된 대립만 이 정도면 수면 밑에선 얼마나 시끄럽게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알 만한다. 작년 5월, 중국의 해커들이 러시아의 방산 업체들을 해킹하려고 한 시도가 드러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기술 공개에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유럽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같은 서양이지만 유럽은 패권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다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유럽에게 중국의 두툼한 지갑은 외면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중국이 유럽의 비행기를 무지막지하게 사들이는 것도 단순히 ‘미국을 견제’하는 것 외에 이러한 심산도 깔려있을지 모른다. 에어버스가 중국에 대규모 연구센터를 짓기로 결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다양한 의미로 읽힌다. 이 센터는 그냥 간판만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 팩토리, 수소 동력, 항공의 디지털화 등 핫한 첨단기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흔히 미-중 신냉전이 열리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작금의 정세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유럽이라고 미국을, 러시아라고 중국을 무조건 편드는 것도 아니다.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기민하게 대응하는 인도도 있다. 심지어 사우디가 중국과 우주협력을 논의하는 시대다. 이 정도면 삼국지보단 춘추전국시대에 가깝다..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러한 글로벌 합종연횡도 더욱 빠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기술로드맵에는 이러한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도 녹여 넣어야 할 것. 지피에 지기가 더해져야 비로소 백전백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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