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사랑이 있다면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상대방은 설명 없이도 이해할 것이다. 사랑이 있으면 굳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은 이해할테니까. 사랑은 언제나 이해한다. 사랑보다 높은 도덕률은 없다. 사랑은 최고의 법률이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그것을 대신할 것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낯선 이의 발을 밟으면 사과할 필요가 있다. 설명이 필요하다.
오쇼 라즈니쉬
오쇼는 마음은 늘 거리를 갈망한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은 간사하여 결코 가까워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볼 때 매혹되었던 대상이었더라도 가까워지면 권태로워지고 싫증을 느낀다. 거리를 가지면 꿈과 희망들을, 즐거움의 가능성들을 무한정 품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은 늘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우리에게 매력적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언제나 낯설거나 모르는 대상들이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눈길을 끄는 것은 내 것이 아닌 것들이다. 멀리 떨어진 것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유혹한다. 마음은 가까이 있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동한다.
마음은 반대되는 것에 자력을 느낀다. 진정한 이해를 통해 그것을 초월하지 않고서는 마음은 언제나 한 극에서 다른 극으로 계속 이동한다. 또다시 멀리 있는 것이 마음을 끌면, 그대는 다시금 순례의 길을 떠난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 이제는 반대편에 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이 다시 그대의 마음을 잡아끈다. 그것은 반짝이는 별들처럼 보이고, 가치 있는 그 무엇처럼 보인다.
하여,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미움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자각하지 못할 뿐, 사랑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감정 그 뒤편에는 분노와 질투와 미움을 품고 있다. 단지 무의식 속에 그것들을 감춰둔 채 표면에서는 사랑할 수 있지만 그 깊이에는 혼란과 혼돈이 잠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만간 그대는 싫증이 날 것이고 사랑하는 이에게 익숙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익숙함이 무관심과 무시를 낳는다고 하지만, 익숙함은 그저 우리를 지루하게 할 뿐, 무시와 경멸은 언제나 사랑 아래 숨겨져 있었을 뿐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늘 그곳에 있었다.
명상은 이해의 중심이다. 노력이나 갈고 닦아야 할 무엇이 아니라,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해는 자유를 준다. 마음의 구조를 알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해는 사랑의 중심이다.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관계는 사랑을 넘치도록 담을 수 있는 깊은 그릇을 가지고 시작하는 셈이다.
사랑은 언제나 책임을 진다. 사랑은 언제나 깨어 있고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