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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언 Jan 05. 2023

보고 싶은 나의 강아지, 해피에게 1

1월 5일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 해피야.


벌써 네가 내 곁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는구나. 몇 달간 일을 쉬는 동안 하루종일 붙어있고, 입원하는 동안 잠시 떨어져 있긴 했지만 퇴원하고 나서는 또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언니가 말 그대로 집 밖을 안 나갔었잖아. 그렇게 지겹게 붙어 있었는데도 너랑 같이 있는 시간들이 나에겐 다시없을 행복한 시간들이었나 봐. 너무 행복했던 시간들이라서 네가 떠나고 나니까 지금 이렇게 슬프고 그리운 거라고 생각해.


네가 쓰던 물건들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별로 없더라고. 엄마가 청소할 때마다 너 걷기 편하라고 깔아 둔 미끄럼 방지 매트가 불편하다고 뭐라고 했던 거 기억나지? 일단 그것부터 치웠어. 엄마가 표현은 많이 못했어도 너 아팠던 날 새벽까지 같이 잠 못 자고 지켜주고, 또 운전 못하고 해피 너 산소 호흡기 대주던 언니 대신에 운전해서 병원도 가주고 그랬잖아. 맨날 네가 밥 먹을 시간 되거나 다른 식구들 밥 먹기 시작하면 방에만 있다가 부엌까지 나와서 밥 달라 해서 밥 먹었던 거 기억나? 엄마가 그 이야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몰라. 언니가 행동도 느리고 게을러서 니가 몇 번을 나와서 감시해야 했는지 기억나지? 냉장고 앞에서 밥 지금 준비 중이라고 보여주면, 네가 좋다고 뱅글뱅글 돌거나 움직이다가 미끄러져서 언니가 냉장고 앞까지 미끄럼 방지 매트 깔아 뒀었잖아. 그걸 치웠어. 바로 치워야지 마음은 먹었는데 네가 나이 들고 밥 달라고 하거나 필요한 거 있을 때마다 좀 신나게 걸어 나오던 모습이 생각나서 언니 진짜 많이 울었다. 이사 오고 나서 우리 같이 쓰는 방에도 안 미끄러지도록 다 깔아 뒀잖아. 다 버리려고 했다가 네 생각이 너무 나서 모두 치우지는 못했어.


네가 잔뜩 쓸 거라고 생각해서 몇 백개로 사둔 배변매트는 겨우 포장 하나를 뜯어서 다 쓰지를 못했더라고. 너는 별로 관심 없었을 것 같은 너의 옷가지 몇 개랑, 네가 앞으로 잔뜩 먹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가득 사뒀던 네가 좋아하는 간식, 또 앞으로 우리 즐겁게 산책 갈 날만 있을 것 같아서 몇 박스 사뒀던 배변봉투를 모두 보호소에 보냈어. 너는 정말 관심도 하나도 없었지만 지난 추석에 새로 사서 입었던 한복 있잖아. 그것도 고민하다가 보냈어. 혹시 누가 예쁘게 입고 가족 찾을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최대한 많이 보내려고 이것저것 짐을 싸다가, 네가 겨울마다 입던 초록색 옷을 보내려고 접는데, 추운 보호소에서 진짜 잘 입을 것 같아서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언니가 도저히 못 보내겠더라고. 마지막으로 빨래를 했을 때, 엄마가  네 샴푸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걸로 세탁했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네 냄새가 나는 거야. 여름이랑 다르게 겨울은 너 춥다고 언니한테 잘 안겨있잖아. 옷 잘 접힌 거 꼭 안고 있으니까 우리 겨울에 산책하던 게 생각났어. 눈 오던 날 같이 산책하던 생각이 나서 그건 도저히 못 보냈어. 미안해.


하도 매일 다녀서 몰랐는데, 우리 같이 안 간 곳이 없더라. 근처 공원도 너랑 같이 갔었고, 강아지가 못 들어가는 곳이면 너는 밖에서 잠시 기다려주고 나 혼자 들어갔다 오기도 하면서 우리 정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더라. 그래서 그런지 언니가 그냥 길만 걸어가다가도, 또 지하철을 타고 먼 곳을 가더라도 니 생각이 너무 나서 너무 많이 힘들었어. 이렇게 많이 울고 슬퍼하는 나를 보면 분명 너는 한숨부터 쉴 텐데, 내가 울면 안 되는데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아직도 잘 안 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해. 너랑 매일 산책을 하면서 정말 이렇게만 평생 살고 싶다,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할 만큼 행복했었거든... 너는 막상 언니가 혼잣말해도 주변 냄새 맡느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우리 동네만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 너무 행복한 시간들을 너랑 함께 보내서, 네가 없는 빈자리가 너무 큰 것 같아. 강아지가 신경 쓰이지 않게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어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네.


해피야.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 해피야.

부족한 나랑 긴 세월 참아주면서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내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나를 믿고, 나에게 넘치는 사랑을 줘서 고마워.

언니는 네가 나를 사랑해준 기억으로 누구보다 행복했어. 너무 사랑하고, 너무 보고 싶어.

언니 또 잘 지내볼게. 밥도 잘 먹고 있고, 어렵지만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보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나는 잊고 살아.

우리 여기저기 재밌게 놀러 가서 즐거웠던 기억만 가지고 지내. 언니가 맨날 말만 하고, 해준 게 없는 보호자라서 너무 미안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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