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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보 Jul 02. 2022

기후위기 앞에 선 문화예술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 이슈페이퍼 6월호 #2

기후위기와 문화예술 _ #2. 기대되는 역할과 요구되는 행동


지구 위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 탄소 배출자가 아닌 예외는 없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문화예술에 기대되는 역할과 요구되는 행동은 무엇일까요? 행동하는 예술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회변화의 “촉매”로, 환경을 생각하는 문화가 인간문명을 지속하게 해주는 “뉴노멀”로 자리 잡도록 하려면 어떤 전환이 필요할까요? 


(1) 기대되는 역할 ... 인식과 행동전환의 촉매?


행동을 위한 감동


기후위기에 대응해서 예술가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글 말미에 <알아두면 쓸모 있는 정보>로 소개한, 특히 해외의 기후위기 대응 예술단체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과학자, 예술가, 사회활동가들 간의 협업이 많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환경 관련 작품발표 활동 이외에, 기후위기의 실태와 영향에 대한 과학적 계측과 연구, 시민들의 참여뿐만 아니라 기업 및 국가의 정책변화를 이끌어 내는 사회변화 캠페인,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의 실천이 그 주를 이룹니다. 지난주에 소개했던 것처럼, 기후위기 대응 문제는 우리 삶의 전반에 걸친, 실천의 이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근거, 철학적 깨달음과 함께 실천궁행하는 힘이 필요한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런 기후위기 대응 관련 다양한 활동에서 예술의 고유한 역할이 돋보입니다. 이와 같은 협업을 통한 성공적인 활동 사례를 본 시민들은 다시 기후위기 대응 행동 안에서 예술의 역할을 기대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음악가, 시각예술가, 과학기술자, 미래학자들 간의 협업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The Climate Music Project의 홈페이지(https://climatemusic.org/)에는 행사 참여자가 언급한 음악의 힘을 다음과 같이 소개해놨네요. “It’s the most powerful, visceral representation I have heard or seen: because through the rhythm-tempo-dynamics-pitch we embody the music, instead of just looking at and away from the data. (그것은 제가 여지껏 듣고 본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몸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 한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멀리서 데이터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의 리듬-템포-변화를 몸으로 체화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적 체험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느낌을 공감할 것 같습니다. 행동을 만드는 데에는 과학적 데이터보다 마음의 움직임, 즉 감동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네트워크와 연대의 힘


시각예술, 문학, 음악, 영화 등 특정 장르에 집중하여 기후위기를 예술적 표현으로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빙하가 녹는 과정을 장시간 사진으로 촬영하는 Extreme Ice Survey(http://extremeicesurvey.org/)처럼, 작품 활동 그 자체로 과학적 증거자료 수집 역할을 담당하는 예술가도 있습니다. 예술가의 조금 더 예민한 반응이라고, 특수한 사례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전 세계 여러 작가들이 폭넓게 수집한 데이터는 설득력 있는 증거자료가 됩니다. 


기후위기와 지구 위 생물체들 간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논의하고 담론을 만들어가는 활동에서도 예술의 역할이 큽니다. 예를 들어,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Literature and the Environment (www.asle.org)는 전 세계 30개 국가에서 1450개 단체가 참여하여 생물다양성, 환경정의, 기후위기가 인간과 비인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토론하는, 문학 중심의 네트워크입니다. 예술 네트워크는 국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인간의 철학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됩니다. 이런 국제적인 연대는 실천 차원에서도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최근 K-Pop 팬덤이 그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캠페인을 실천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No Music on the dead planet” 캠페인과 연대하여 “No K-Pop on the dead planet”이라는 슬로건으로 K-Pop4Planet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제 디지털 문화의 시대에서 취향을 공유하는 “문화부족(Cultural tribe)”은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가상세계 안에서 국제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사회변화의 촉매


시민들은 역사 속에서 예술이 중요한 사회변혁에 앞장서온 “Activist“로서의 역할을 익히 보아왔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활동 예술단체들도 단순히 기후 위기뿐만 아니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소위 “사회적 예술”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예술 표현에 담긴 주제 자체가 사회적 메시지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City As Living Laboratory (www.cityaslivinglab.org)처럼 보다 적극적으로 도시의 다양한 문제해결을 위한 학제 간 연구와 행동에 나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문제 해결 행동에서 예술적 표현은 다른 어떤 커뮤니케이션 보다 강력하게 여론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크기 때문에, 그 역할이 기대됩니다.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행동을 재미있게 실천하는데 예술의 역할이 크지요. “재주도 좋아”(https://blog.naver.com/jaejudojoa)라는 단체가 제주도 해변 쓰레기를 모아서 작품을 만드는 “비치코밍(beach combing)”과 “엿바꿔먹장” 같은 재치 있는 활동 사례가 그러합니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이 기후위기를 본인들의 삶의 이슈로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데 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촉매자로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채워지지 못해서 이제는 “추앙과 환대”를 바라는 시대에, 좀 더 고난도의 역할도 기대를 해 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문화와 예술의 강점이니, 갈수록 허해지는 인간의 마음을 문화예술로 채워준다면, 물질적 쓰레기가 덜 나오는 “추앙과 환대”로 자본주의 소비패턴이 바뀌는 변화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2) 요구되는 행동 ... 문화활동에서의 탄소배출 감축


공공기관부터, 실천과 지원


“친환경 예술을 위한 지원제도나 정부 정책이 예술가와 단체에 무조건 실천하라며 떠넘기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예술계 전반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대처할 방법을 찾도록 예술계 안팎의 많은 분이 협력할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현장 예술가의 말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한 행동은 열악한 예술단체들 보다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할 일입니다. 


『문화예술의 친환경적 관점 도입을 위한 연구』(노영순 등,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1)에서 실시한 설문결과, 문화시설의 친환경 전환을 위한 중앙정부의 역할로 ‘문화 분야에 특화된 표준 및 가이드 마련’이 64.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친환경 문화서비스 프로그램에 대한 보조금 지원’(53.1%), ‘문화서비스 이용객의 친환경 인식 확대’(49.6%)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 문화인프라 시설의 탄소배출량을 계산하면서, 문화시설 자체 뿐만 아니라 이용객의 교통수단이 발생시키는 탄소량을 포함하였습니다. 이는 공공문화시설이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수행할 행동으로, 시설물의 에너지 절감과 내부 직원들의 행동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의 행동을 바꾸는 역할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차 없는 공연장 등, 관객서비스 설계도 변화한 기후 민감성 수준에 맞게, 또는 시민의 인식변화를 유도하도록, 예전과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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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설정을 위한 철학 세우기, 비관이 아닌 행동을 위해


사실 이산화탄소 배출은 개인의 행동보다는 문명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지적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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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공감할 수 있게, 한쪽 면만 볼 것이 아니라 균형 있는 시각을 견지해야 합니다. 세상사 중에는 얼핏 보아서는 서로 연결된, 상반된 양면을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 행동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서도, 그 연결의 방향이나 영향을 어떤 한 방향으로 상정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지구 위에서 인간과 연결된 다른 생명체들의 안녕과 지구라는 생태환경 자체의 안정과 인간의 행복은 한 지점에서 만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난하기 쉬운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자연의 자원을 활용해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가 내 바깥의 몇몇을 죽이고, 결국 나도 죽어가는 행위라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또 누군가 살지 못하는 것이니, 너무 슬퍼할 일도 아니구요. 그리고 일단 태어난 인간이 살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인데, 차라리 선한 흔적 남기기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요?


친환경적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본 받을 만한 무위자연 철학의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가르칩니다. 자연은 인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10만년도 안 된 인간종(種)에게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의 존속 따위에 관심이 없습니다. 돼지도 자기 우리를 깨끗이 관리 하듯이, 그저 인간은 그 삶터에서 자신이 계속 살 수 있도록 자기 삶을 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후 위기”라는 말은 “인간의 위기”를 “지구의 위기”처럼 얘기하는 것 같아서 오만하게 들릴 수 있고, “기후 변화”라는 말은 지난 주에 소개한 음모론자들의 주장처럼 “지구의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왜곡된 뉘앙스를 풍깁니다. “기후위기”라고 쓰고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에 의한 인류 문명의 위기”임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아픈 지구”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구 위에서 계속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친환경이든 “침”환경이든, 각자 행동의 방향을 정할 철학은 스스로 선택할 몫이지만, 과학적 사실은 왜곡되지 않게 두루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창작과정에서 쓰레기를 덜 만드는 NFT 미술이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은 일견 그럴 듯 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조금 더 살펴보면,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서버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렴한 전기요금 탓에 중국과 카자흐스탄 등지로 채굴자들이 몰려들어 결국 정전사태까지 빚어지자, 올해는 이란, 코소보 까지 나서서 블록체인 가상화폐 채굴을 금지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이 냉각을 위해 해저에 클라우드 서버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대로가 사실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소방귀세” 처럼 자극적인 말 뒤에 숨은 진실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방귀도 못 뀌나? 가축학대 아닌가?”라고 희화화되었지만, 실제로는 농업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중 40%가 축산업에서 발생하며, 소에게서 나오는 메탄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나 차지하고, 이것은 전 세계 교통수단이 내뿜는 것(13.5%) 보다도 더 큰 비중이라면,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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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물질적 관점”에서의 역설 앞에서 비관하는데 머물지 않고, 정신적인 문제까지 포함한 행동에 나서기 위해서는, 다른 시각으로 나를 설득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활동 자체가 양면성을 가진 다는 점을 인식하고, 좀 더 “의미 있는” 쪽으로 행동하도록 가치를 설정해야 하겠습니다. 기후위기 대응 캠페인 문화행사에서는 기념품을 만들지 말자는 반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의식이 있고 여건이 되어서 현장까지 온 참가자들만 공감하는데 그치지 않으려면, 현장에 오지 않은 더 사람들에게도 행사의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은 따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민감성 높은 몇몇의 행동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에 개최된 행사에 쓰인 “자원의 보람” 을 최대화 하는 방법을 더 고민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보다 더 “친환경적”이지 않을까요? 예술에 쓰이는 자원을 자본주의 문명구조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는 더 큰 변화를 위한 투자로 보고, 좀 더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 예술행동에 나서야 되지 않을까요? 먼저 오늘 저녁 퇴근 후 벗은 마스크의 두 끈을 떼 내서 고무 밴드로 쓰고, 몸통은 현관 청소에 쓰는 실천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전체 글은 첨부한 파일이나

서울문화재단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슈 페이퍼_문화+정책]은 매월 셋째 주 수요일에 서울문화재단 블로그에 연재됩니다.

(https://blog.naver.com/i_s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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