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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Aug 08. 2023

온유의 자리

3. 유나마트의 유나짱

   교실로 돌아가니 책상 네 개씩 모둠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림보림보 느림보. 이제 오냐? 역시 느려 터졌어.”

   문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몇몇 아이들이 쿡쿡 웃으며 나를 봤어요. 얼굴이 또 화끈 달아올랐지요. 

   ‘너희들이 방석을 대충 쌓아서 미끄러졌잖아. 그거 정리하고 온 거라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어요. 

   그때 민지가 문수를 찌릿 쏘아보더니 내게 손짓했어요. 

   “이리로 와. 나랑 같은 조야.”

   “우우우! 둘이 뭔데, 뭔데.”

   문수가 놀려댔지만 민지는 ‘흥’하며 콧방귀만 뀌었어요.

   내가 책상을 들어 옮기는데 책상다리가 바닥에 쓸려 끽끽- 소리 났습니다.

   “살살 옮겨. 둔한 거 티내니?”

   손거울을 보던 혜리가 눈을 흘기며 톡 쏘아댔어요. 아까 웃었던 아이들이 다시 푸핫! 웃음을 터트렸어요. 

   나는 얼굴에 열이 올랐습니다. 겨우 민지 옆에 책상을 붙였지요. 민지가 자신의 책상 쪽으로 더 당겨 붙였어요. 자리에 앉고 보니 우리 모둠에 배서인도 함께입니다. 서인이는 삐딱하게 앉은 채 나를 보고 있습니다. 아, 저 눈빛. 나는 손가락으로 애꿎은 책만 문질렀어요.  

   “자, 잘 보고 따라하렴.”

   수업 시작과 함께 과학 선생님이 비커에 물을 부었어요. 민지와 내가 선생님 지도를 따르는 동안, 서인이는 옆자리 동수에게 물방울을 튕기며 장난만 치고 있어요. 

   “복수닷!”

   서로 튕긴 물이 내 책상에까지 후드득 떨어졌습니다. 

   “으, 다 묻었어.”

   나는 옷소매로 물기로 얼룩덜룩해진 책을 닦아냈어요.  

   “너희도 같이 실험 하자.”

   민지가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에요. 민지가 책상을 콩콩 치며 목소리 낮춰 다시 말했어요.

   “장난 그만하고 같이 하자니까. 안 그러면 우리, 선생님한테 혼나.”

   서인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어요.

   “너나 하셔. 저 느림보랑.”

   “하하하!”

   동수도 목청이 보이도록 웃었어요. 

   민지는 신경 쓰이는 듯 나를 살짝 보았어요.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핀잔을 주듯 말했어요. 

   “유치하기는, 그러지 마.”

   민지의 안쓰러운 표정을 보니까 더 우울해졌어요. 

   얼룩진 종이처럼 마음도 울룩불룩합니다. 익숙하면 무뎌진다는 말도 거짓 같아요. 들을 때마다, 그때마다 마음이 쿡쿡 찔려오는 걸요. 어쩌면 익숙해서 더 깊이 아파지는 걸까요.       

   수업을 끝내고 나오니 햇살이 쨍쨍합니다.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날이에요. 콧잔등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주룩 흘렀어요. 어깨에 멘 가방끈에도 땀이 채이고 있어요. 갈증이 나서 정류장 앞에 있는 가게에 멈추었어요. 파랗고 굵은 글씨로 ‘유나마트’라고 적힌 간판은 빛바랬어요. 

   가게 문을 여니 시원한 공기가 몸을 감싸 왔어요.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안은 쾌적했지요. 계산대에 앉은 주인아주머니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킥킥 웃고 있어요. 보글보글 곱슬머리에 노란 물방울무늬 머리띠가 눈에 띄었어요.

   내가 아이스크림을 골라 계산대로 가자 아주머니가 폰을 내려놓으며 말했어요. 

   “음! 탁월한 선택이야. 오늘 많이 덥지? 이제 여름이 오는 것 같아.”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대 옆에 붙어있는 아이스크림 광고지를 보았어요. 푸르스름한 아이스크림이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내가 손가락으로 전단을 가리키며 물었어요.  

   “아주머니, 이거는 없어요?”

   아이스크림 바코드를 찍던 아주머니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뭐니. 유나짱이라고 불러다오, 기왕이면.”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목소리보다 그 말에 더 놀라기도 했지만요.    

   “유··· 유나짱이요?”

   아주머니, 아니 유나짱이 씩 웃으며 말했어요. 

   “사람은 부르는 대로 힘이 생겨. 내가 이 가게 주인이니 짱이지 뭐냐. 하하하. 그냥 아줌마 보다 백배 낫지, 안 그래?”

   “하하, 네. 유나짱···님.”

   유나짱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냥 유나짱이라 불러. 그리고 저건 신제품이라 다음 주면 들어올 거야.”

   “네. 저, 이 아이스크림 먹고 가도 되나요?”

   “그럼, 당연하지.”

   나는 에어컨이 가까운 창가 의자에 앉았습니다. 휴대폰 영상의 시끌시끌한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어요.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말이지요. 

   ‘특이한 주인이야.’

   나는 주머니 속에서 슈퍼마리오를 꺼내 책가방에 다시 매달았어요. 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인형이 반짝거렸어요. 나는 이 슈퍼마리오가 좋습니다. 쨍한 색감과 밝은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없던 기운도 불끈 나기 때문이에요. 

   조금 전에 들은 말이 귀에서 자꾸 맴돌았어요. 정말일까요? 나는 원래 그렇게까지 느린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꾸 그렇게 불리니까 정말 느림보가 되는 느낌도 들어요. 그것도 놀림 받는 느림보요. 

   ‘마리오도 ’슈퍼‘가 붙어서 더 대단해진 걸까? 그렇다면 나도 슈퍼 온유면 좋겠다.’

   나는 아이스크림 껍질을 벗겨내며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오전에 본 버스정류장의 아저씨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치 동상처럼요. 왜 저렇게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렇게 큰 어른인데, 갈 곳이 없는 걸까요.

   아이스크림을 살살 녹여먹는 사이, 몸의 열기도 어느새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문을 나서며 인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히 가렴. 우리 아가 이름은 뭐니?”

   “저···정온유 예요.”

   “좋은 이름이네, 잘 가. 온유.” 

   나는 고개를 꾸벅하고 문을 밀었고 유나짱은 내가 앉았던 자리로 가 정리했어요. 문이 닫힐 때 유나짱이 중얼거리는 말이 언뜻 들려왔습니다.  

   “저런, 저기서 계속 저렇게 있으면 어쩌누.”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는데 큼큼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 코를 살짝 눌렀어요. 정작 정류소의 아저씨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표정이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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