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자리는요
신호등이 계속 빨간색이면 좋겠습니다. 눈앞의 횡단보도 건너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우리학교가 나옵니다. 집에서 교문까지 7분이지요. 반에서 우리 집이 학교와 가장 가까워요. 그 다음 가까운 집은 민지네 래요. 그러면 뭐해요. 지금은 우리 집이 제일 멀면 좋겠어요. 그러면 지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 불이 초록으로 바뀌었어요. 내 걸음에 맞추어 책가방에 멘 슈퍼마리오가 달랑댑니다. 탁탁탁. 내 등을 두드려 응원해주는 것 같습니다.
너밖에 없다, 슈퍼마리오.
버스정류장 의자에 웬 아저씨가 늘어진 떡처럼 누워있었습니다. 아저씨의 누리끼리한 티셔츠에 펑퍼짐한 바지는 밑단이 다 닳아 삐뚤빼뚤했어요. 사방으로 삐죽 뻗은 머리카락에 얼굴은 또 어떻게요. 몇날 며칠을 씻지 않은 것 같았어요. 아저씨 주위로 빈 술병과 쏟은 음료가 말라버린 자국, 과자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남아 지저분했어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멀찍이 선 채로 힐긋거렸지요.
나도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습니다.
교문을 들어섰지만 곧장 교실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운동장을 걷다가 등나무 벤치에 앉았어요. 햇살은 내 마음과 달리 밝고 따스해요. 시간이 이대로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들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지킴이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수업 시작하겠다, 안 들어가고 뭐하니? 어디 아프냐?”
“아니요. 괜찮아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어요.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데 가늘게 숨이 뱉어졌어요. 모래바람을 마신 것처럼 입안이 텁텁하고 가슬가슬 거렸습니다.
‘할 수 있다면 지지난 주로 돌아가고 싶어.’
사실 주말 내내 이런 생각을 하며 보냈지요.
현관에 들어가 신발장 하나를 슬쩍 열어보았어요. 흙이 잔뜩 묻은 검은 운동화가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반문수의 운동화입니다. 요즘 들어 문수는 지각도 결석도 안 해요. 학교 오는 게 살 맛 나나 봅니다.
‘아프다고 꾀병을 낼 걸.’
나는 이마 위로 손을 갖다대어봤어요. 열도 오르는 것 같습니다. 교실이 가까워질수록 걸음도 이렇게 무거울 수 없는 걸요. 정말로 아픈 게 분명합니다.
교실 문 앞에 이르자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어요. 나는 책가방을 벗어 슈퍼마리오를 톡 떼어냈지요. 파란 멜빵바지에 빨간 티셔츠의 슈퍼마리오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그래, 너처럼 씩씩하게! 들어가자.’
마음을 다잡고서야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하필이면 반문수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지 뭐예요.
반문수가 손나팔을 불며 외쳤어요.
“어이. 림보 림보 느림보. 와았뉴우?”
반문수와 마주보며 있던 까까머리 배서인도 돌아보며 내게 히죽대며 웃었습니다.
“아, 안녕.”
나는 눈길을 피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에이, 반가워서 인사하는데 반응이 왜 그래?”
반문수가 얄밉게 말하며 킬킬댔어요.
나는 묵묵히 맨 뒷자리로 가 앉았습니다. 괜히 말을 더 했다가는 둘이 합심해서 무어라 할 것이 뻔하거든요. 내 옆 칸에 앉은 선우는 곁눈으로 흘끔 볼 뿐이에요. 예전에는 신나게 인사하던 친구인데 말입니다. 겨우 이 주 만에 바뀐 상황에 마음이 또 울컥해왔어요. 내 자리는 교실 안에 있지만 있지 않는 것입니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민지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외쳤어요.
“얘들아, 일 교시는 시청각실에서 한대. 선생님이 거기로 오라고 하셔!”
“오예! 영상 수업이다!”
“신난다!”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걸음을 옮겼어요.
책상을 정돈하고 의자를 밀어 넣는 사이에 모두들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문 앞에 있던 민지가 말했어요.
“온유 너도 얼른 가자.”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지는 앞서 뛰었어요. 하얀 실내화가 흰 토끼마냥 경쾌하게 달려갔어요. 덩달아 민지의 어깨까지 오는 갈색 단발머리가 힘차게 나풀거렸지요.
“참 재빠르다.”
나도 주머니 속 슈퍼마리오를 만지작거리며 부지런히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