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_프롤로그
2019년 10월.
사랑하는 막내 동생이 캐나다로 떠났다.
그날은 모든 가족이 공항으로 향했고 동생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본 뒤 그 자리를 떠나 영종도의 어느 해물 칼국수 집에서 식사를 했다. 막내에 대한 걱정이 오가는 식사자리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술에 취한 아버지는 노래를 불렀다. 음정이 다 틀렸던 그 노래를 남동생이 함께 부르며 박자를 맞춰주었다. 집에 도착했을 땐, 밤이 다 되었다. 그 사이 동생의 비행기는 하늘 위를 유영하며 캐나다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23년, 4년이 흘렀다. 작년 임신소식으로 눈물을 쏙 빼놓은 동생의 출산이 가까워진 6월, 휴가로 일주일 정도 캐나다를 갈 계획을 세우 던 중 여러 일이 겹쳐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인수인계 기간까지 생각해 두었지만 인수인계서만 작성하고 7월 초 퇴사했다.
계획과 달리 이른 퇴사였지만 역으로 생각하니 장기로 떠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하필 캐나다가 성수기라 비행기 값이 비쌌다. 밴쿠버 경유가 입국 심사가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미국 경유는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소문도 비행 편 고르기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동생은 당장이 아닌 9월이나 10월에 오는 것도 괜찮다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퇴사를 한 지금 이 시점에 바로 갔다 돌아오는 것이 공백기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가던가 아니면 그냥 9-10월 즈음에 어머니를 캐나다에 보내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함께 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어쩌면 하루 만에 퇴원을 해서 제부가 일하러 간 사이 신생아와 둘이 있을, 걷는 것도 힘들 동생을 떠올리니 더욱더 출산일에 맞춰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갈 수 없다면 나는 안 가겠다 고집을 부린 셈이었다. 할머니 기일이 껴있었고 농작물 수확시기도 겹쳐있으니 어머니는 그냥 빨리 혼자라도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여차저차 내가 대표로 떠나는 것에 의견이 기울어졌다.
추석 전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비행기를 알아보던 중 막내는 내가 쉬는 김에 어디 다른 곳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했지만 온전히 동생이 있는 캐나다의 한 마을에서 60일을 지내기로 했다.
나는 관광하러 가는 게 아니야, 너를 위해 가는 거야.
그러니까 넌 너만 생각해. 나도 너만 생각하니까.
우여곡절 끝에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는 비행 편을 골랐다. 이제 짐을 싸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출국일은 7월 18일, 동생의 출산일은 10일.
고민하다 놓쳐 버린 비행 편들 덕분에 텀이 생긴 건 아쉬웠지만 동생은 너무 정신없는 상황보다 나은 것 같다고 되려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올 때 챙겨 와 달라고 하는 물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부 선물도 사고, 동생에게 택배로 못 보냈던 출산 물품들을 캐리어에 하나 둘 담았다. 동생은 출산 예정일에도 진통이 없었고 우린 이제 다른 고민을 했다.
언니 오는 날 땅콩이 나오는 거 아냐?
14일 꿈을 꾸었다. 내가 동생의 배를 베고 누워있었는데 스스로 깜짝 놀라 동생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머리를 들려고 하는 꿈, 동생은 괜찮다 하지만 머리가 들려지지 않아 낑낑거리며 엄마에게 일으켜달라고 소리 지르는 나. 눈을 뜨자마자 동생에게 카톡을 했다. 괜찮냐고 물었고 동생의 괜찮다는 말에 다시 잠에 들었다. 한 시간 뒤 엄마가 나를 깨웠다. 동생이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갔다고.
그렇게 땅콩이가 세상에 나왔다. 한국시간 14일 오후 1시경 세상으로 나온 땅콩이의 동영상이 도착했다. 깨끗하고 주름도 없이 눈을 땡그랗게 뜬 땅콩이에게 우리 모두 마음을 빼앗겼다. 동생의 건강이 괜찮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 그제야 캐나다로 떠난다는 사실이 몸으로 느껴졌다.
비자는 신청한 다음날 승인 메일이 왔고, 비행기도 끊었다. 숙소는 동생집. 짐은 점점 불어나는 중이었다. 왜 우린 택배에 역류방지쿠션을 넣지 않았던가 후회하면서 23킬로 캐리어 두 개를 들 수 있는 힘이 없어 하나에 욱여넣던 난 결국 두 개의 캐리어를 싸야 했다.
입국심사 블로그를 찾아보고, 입국 목적에 맞는 문장을 찾아 외우고, 경유 시간 8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하루하루 심장이 떨려왔다. 뒤늦게 가서 사용할 카드 유효기간이 중간에 만료된다는 사실에 은행에 가서 재발급을 받고 혹시 몰라 국제 면허를 발급받았다. 떠나기 전 날에는 엄마와 갈비탕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떠나는 날, 아기가 황달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 상황이라는 소식과 퇴원을 언제 하게 될지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도착 시간은 캐나다 시간으로 저녁 7시, 퇴근한 제부가 마중 나오기로 했다. 땅콩이가 건강하길 기도하면서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