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_온전한 하루
낯선 이방인은 낯선 공간에서 홀로 첫날을 맞이했다.
아침 7시 즈음 제부가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새벽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며 건어물을 직접 가져다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논했다. 엄마는 출근하는 제부 편에 먼저 전해드리고 땅콩이가 퇴원하면 함께 가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렇게 출근하는 제부 손에 쇼핑백을 전달했다. 제부는 병원으로 가는 길을 다시금 설명해 주고 떠났다. 새벽 잠들기 전 풀러 놓은 짐들을 다시금 거실 테이블 위에 보기 좋게 정리한 뒤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조금 헤매었지만 기억과 설명을 복기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한적한 전원 마을, 의외로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에서 살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사는 곳과 달리 집들의 간격은 여유가 있었다. 푸르렀고 시원한 하늘과 줄줄이 초록의 나무들이 있었다. 하늘이 낮아 구름이 코앞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몽글몽글한 구름들을 찍느라 속도가 나지 않은 것도 같다. 바람 소리에 흔들리는 잎들은 마치 파도가 치는 바닷가를 떠올리게 했다.
8시 반 즈음 병원에 도착했다. 의료진들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어제 걸어 들어갔던 길을 따라 동생과 땅콩이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땅콩이는 동생의 품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병실은 1인실이었다. 침대와 1인용 소파, 화장실이 따로 있었고 세면대는 문가에 따로 위치해 있었다. 문 앞에는 한 걸음의 텀을 두고 커튼이 쳐져 있었다.
소파에 앉지 못 한 채 동생 옆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큰어머니가 오셨고 건어물을 잘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큰어머니는 땅콩이와 동생을 살핀 뒤 일을 하러 가신다 하셨고 나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셋이 되었고 동생에게 먹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듣기도 하고 땅콩이가 퇴원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점심을 해서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퇴원을 할 수도 있으니 제부 편에 보내 줘도 된다고 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빈 그릇 등 당장 안 쓸 것 같은 짐들을 가지고 일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미역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를 하고 쥬키니 볶음을 했다. 그동안 정신없던 상황을 말해주는 듯 냉장고 안이 엉망이었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제부가 왔고 제부 편에 음식을 보냈다. 보내고 남은 밥과 계란말이를 덮밥처럼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했다. 핸드워시와 아기용 주방세제가 있었다. 보통 아기세제는 아기 용품만 닦는데 쓰이는 걸 알지만 핸드워시 향이 세제 같지 않아 일단 아기용을 사용했다.
며칠 뒤에야 핸드워시 통에 든 액체가 주방세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그 세제로 나는 열심히 손을 닦았었는데, 어쩐지 손이 너무 건조해지는 것이 이상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병원을 가볼 까 했는데 동생이 오늘 퇴원을 해도 된다고 했다며 다시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해왔다.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동생과 땅콩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낯선 집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큰어머니가 잠시 들르셔서 목욕시키는 법을 알려 주셨다. 가시기 전 심심하지는 않으냐, 시차 적응 하려면 자면 안 되다는 말 등 걱정과 조언을 해주셨다.
그 후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은 장을 보기 전이라 최대한 집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했기에 간단히 수육과 계란찜을 했다. 물론 미역국도 함께였다. 맛있게 먹어주는 두 사람 덕분에 만족스러움과 동시에 더 분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간 듯했다. 그럼에도 아직 밖은 밝았다. 이미 밤인데 해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자취를 감췄다. 온전한 캐나다에서의 하루였고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