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D Oct 11. 2023

SUMMER OF CANADA

캐나다에서의 여름 _ 선크림 사건

캐나다에서 맞는 첫 주말, 토요일이었다.

퇴원 후 첫 목욕 당시 배꼽이 탈락했던 땅콩이는 배꼽의 상처가 낫지 않는 상태였다. 눈물샘이 막혀 눈곱도 계속해서 굳어져 빨갛게 되어 초보 엄마 아빠와 육아 지식은 하나도 없는 이모는 계속해서 검색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 중이었다.


출산 다음 날 퇴원하여 그 뒤로 주기적으로 클리닉에서 전화로 상태를 묻거나 해결방안 등을 알려주곤 했는데 토요일 제부의 출근 전 클리닉에서 전화가 왔다. 동생은 눈곱에 대한 이야기, 배꼽이 탈락된 후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얘기 등을 나누었다. 당시 난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방에서 통화를 하던 두 사람이 거실로 나왔다. 땅콩이를 카시트에 앉히고 있었다. 동생은 굳어진 채로 급히 나갈 준비를 했고 제부는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클리닉에서 응급실을 가보라고 했다고 한다. 이미 황달 치료로 퇴원 후 다시 입원을 했던 땅콩이었다. 동생이 긴장할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그 순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동생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말을 하려 했던 내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선크림 발랐어? 바르고 나가


말을 뱉고도 당황해서 웃었다. 동생은 지갑을 찾으며 정색을 하고 지갑을 찾는 게 우선이라 얘기했다. 우리는 후에 이날의 선크림 발언에 대해 곱씹게 된다.


병원으로 떠나고 홀로 남은 난,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손을 더 씻었어야 했나 하며 자책을 하기도 했다. 또다시 폭풍 검색이 이어졌다. 응급실에 간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괜찮다고 평범한 일이라는 말과 함께 눈물샘이 막힌데 넣는 안약과 배꼽에 바르는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고 한다.


돌아온 동생과 땅콩이, 출근을 한 제부. 

토요일의 반이 그렇게 지나갔다. 우왕좌왕 동생과 함께 응가를 한 땅콩이 엉덩이를 씻기고 안정이 된 동생에게 아까 왜 웃었냐는 질문도 받고 해명의 시간도 갖으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고등어구이와 간단한 밑반찬들로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니 9시가 다 되어갔다. 아직도 해는 지지 않은 상태였다. 노을이 예뻐 문 밖으로 나갔다. 길의 끝을 향해 걸어갔다. 교회가 있었고 낡은 농구대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길 끝에 펼쳐진 잔디밭 너머로 큰 도로가 있었는데 그 사이를 덤프트럭들이 지나갔다. 그 차들 너머로 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에서 붉게 타들어가는 노을이 조그맣게 보이는 농장 건물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모기에 물릴 까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갔다. 


까만 밤, 동생과 선크림 발언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 웃었냐고 물었을 땐 예전 여자 연예인들의 언니 나 싫죠? 사건이 떠올랐다고 뒤늦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예전 첫 조카가 아팠을 때가 떠올랐다. 언니와 형부가 긴장한 모습으로 병원을 가는 모습, 뭘 못 챙긴 건 아닌가 숨죽여 집을 둘러보며 챙겨줬던 상황들. 


사실 그 순간 난 남이 된다. 이모는 이모일뿐이니까. 해줄 수 있는 것은 마땅히 없다. 내가 출산과 육아에 경험이 있었다 할지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가족들이 또 다른 각자의 가정을 이루었고 그들을 바라보며 난 대리 만족, 부러움, 행복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 같은 상황에서 오는 감정은 막막함과 자책감 그리고 소외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남동생이 결혼하면, 못 된 시누이가 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는 이유기도 하다. 


고요한 밤,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인데 이제야 지는 해와 각자의 집이라는 공간에서 각기 다른 삶을 영위하는 캐나다의 사람들, 그리고 다른 타임 라인에서 다른 오늘을 사는 멀리 떨어진 가족들. 같은 집, 다른 공간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평화로운 걸까. 

이전 06화 SUMMER OF CANAD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