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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Oct 11. 2023

SUMMER OF CANADA

캐나다에서의 여름_이웃 라즈베리

금요일이 되었다. 

시차적응보다는 물갈이가 괴로웠고, 고요하고 한적한 마을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일어나서 식사를 챙겨주고 말동무를 해주거나 부탁을 하면 들어주는 정도의 소소한 일들은 내게 너무도 쉬운 일들이었다. 단지 식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산후조리원 식단표를 검색해 가며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은 머리가 아팠지만, 재미도 있었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보는 일도 행복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못 본 동생을 사진에 담는 일도 즐거웠다. 보통은 조는 모습의 슬로 모션이라던가 눈을 살짝 뜨고 잠든 모습을 담았지만, 엄마가 된 동생의 모습을 순간 포착할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출산 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캐나다의 시스템에 대해 관찰하는 것도 유익했다.

캐나다는 모유 수유에 진심인 나라인 듯했다. 모유 수유를 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묻고 모유수유를 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수유를 위한 도움을 준다. 목요일에는 수유 컨설팅을 위해 모유 수유 전문가가 방문했다. 그녀는 자세를 교정해 주고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과 책자를 나눠준 뒤 돌아갔다. 당시 거실에서 책을 읽는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콘셉트를 잡다 조는 모습을 들켜버린 나였다.


목살 볶음밥, 미역국, 소고기 뭇국, 잔치국수, 샌드위치, 새우전, 쥬키니 전, 불고기, 샐러드, 계란찜, 멸치볶음, 시금치나물(이곳 시금치는 무언가 줄기 없이 잎만 있어 식감이 사뭇 다르다), 계란말이


나름 균형 잡힌 식사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아직 이틀, 벌써 이틀 하면서 감정은 이리저리 오가며 시간을 아까워했다가 아직 남은 시간이 넉넉하다 느끼기도 했다. 뒷마당에 나가 잔디, 새집, 울타리 너머를 구경하기도 했다. 분명 오기 전에는 해외에서 조깅을 하는 나를 상상했지만, 실상은 울타리 넘어가 두려워 빼꼼 구경만 하고 있는 처지였다.


이곳은 새들을 위한 새집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다고 했는데 앞마당 높은 나무에도 뒷마당 높은 나무에도 새집이 하나씩 걸려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캐나다에 온 동생이 새집을 만들었다고 연락해 왔던 것이 떠올랐다.


주택들은 울타리가 쳐져 있거나 없거나 제각각이었는데 울타리를 설치할 경우 옆집과 반반씩 부담하며 어떤 울타리를 할 건지도 조율한다고 했다. 동생의 집 왼편에는 원목 울타리가 우측에는 낮은 펜스가 쳐져있었는데 그게 옆집과의 의견 조율로 탄생한 결과였다. 물론, 동생이 이사 오긴 전 주인들 사이의 의견인 듯하다. 동생은 펜스가 아니라 울타리로 바꾸고 싶다고 얘기했으니까.


각각의 주택들은 현관을 마주 보며 이차선 도로를 끼고 위치해 있었고 뒷 집과는 뒷마당을 마주 보며 비포장 도로와 세 가구 정도가 함께 쓰는 쓰레기 수거함이 있었다. 어떤 집은 차고가 뒷마당에 위치해 있었고 어떤 집은 현관 옆쪽으로 위치해 있기도 했다. 앞마당도 뒷마당도 잔디가 깔려있었는데 집의 경계, 즉 인도와 앞마당 사이에 낮은 나무들을 울타리 삼아 심어놓은 집들도 있었다. 인도에는 가로수가 줄지어 있었다.


초록초록한 세상, 하얀 집, 노란 대문집, 민트색 집 각양각색이지만 조화로웠고 그래서인지 어색함보다는 이런 마을의 공간 구성과 분위기가 부럽게 느껴졌다.


오늘 오후에는 이웃집 그러니까 펜스를 사이에 둔 옆집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뒷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구경하고 새집에 새가 쉬었다 가는지 확인할 참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하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었고 헛것을 들었나 싶을 찰나, 뒤쪽 경계 끝자락에 덩굴처럼 자란 라즈베리 사이에서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미안 내가 숨어있었네' 라며 하하하고 웃었다.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내 입은 그저 함께 웃고 '하이'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동생에게 옆집 여자가 인사를 했다고 얘기했다. 동생 말로는 항상 무언가를 들으며 인사도 잘 나누는 편이 아니랬는데 인사를 나눴냐고 되물었다. 라즈베리는 그녀가 이사오기 전 이웃집 할머니가 심은 것이라는 설명도 함께 해주며 펜스를 넘어온 라즈베리는 우리가 따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 뒤로 뒷마당을 나가면 종종 그녀와 마주쳤는데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하이 정도였고 나는 그녀에게 라즈베리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녀의 이름을 묻지 못했고 물을 용기도 없었던 탓이다.


매일을 기록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적으려고 노력했다. 오늘 밤에는 저녁식사 후 홀로 맥주 한 캔을 하는 제부를 보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이 된 저 아이는 지금 이 순간 맥주 한 모금에 무엇을 담아 삼키고 있을까.


이제는 엄마와 아빠가 되어버린 아이들이 이곳에서 어떤 하루하루를 보냈을지,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본다. 그렇게 조금은 셋이 된 아이들을 위해 도움이, 힘이 될 수 있도록 더 분발해야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아 약간의 귀찮음도 한 몫했지만 내일은 나가 볼 마음을 품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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