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 _ 청력 검사 여정
26일 수요일, 예정된 청력검사가 있던 날이었다. 그날 오전 이른 시각 눈이 떠진 탓에 단호박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던 시각, 전자레인지 소리에 아이들 잠이 깰까 조심스레 움직이며 찜기에 단호박을 쪘다. 마요네즈와 꿀, 냉장고 속 라즈베리를 준비해 삶은 단호박 절반을 으깬 뒤 버무렸다.
유독 동생이 좋아하는 쫀득쫀득하고 부드러운 식빵에 단호박 샐러드를 잔뜩 넣고 그 사이에 로메인과 슬라이스 햄, 계란을 넣었다. 한 끼 식사가 될 만한 두툼한 샌드위치였다.
청력검사는 40분 정도 떨어진 마을의 클리닉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떠났다. 뒷 좌석에서 땅콩이를 보고, 긴장한 동생에게 말도 걸며 도착한 곳. 문은 닫혀있었다. 청력 검사 일정을 잡아준 클리닉 직원의 실수로 다른 센터에 오게 된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현재 있는 마을에서 십분 정도 더 가면 나오는 지역으로 가야 했다. 이틀 뒤로 재예약을 잡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이제 땅콩이가 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월마트와 주유소, 팀홀튼 카페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동생이 커피를 사러 갔다. 역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팔지 않았다. 다른 청력검사 클리닉으로 안내되어 도착한 이 마을은, V마을이라고 하겠다. V마을은 뭔가 삭막한 분위기를 풍겼다. 날씨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두 명의 노숙자가 거리에서 싸우고 있었고 활기가 적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요란해지는 날씨 속에 동생이 사는 마을 근처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사 점심을 때워야 했다. 바람은 거칠고 산발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동생에게서 페이스 타임이 걸려왔다. 내 자동차 바퀴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해왔다. 그 뒤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너덜너덜해진 내 뒷바퀴였다.
날이 춥게 느껴지는 목요일, 내일 다시 청력검사를 위해 또 다른 마을로 이동을 해야 한다. 해외의 의료 시스템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
다시 청력 검사날, 이번에 도착한 마을은 C마을이었다. 직전에 방문했던 마을의 분위기가 삭막하고 척박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따스한 느낌의 마을이었다.
여정에 비해 청력검사는 너무 간단히 끝이 났다. 함께 건물로 올라갔고 검사가 시작된다고 하여 나는 자리를 떴다. 나오는 길을 못 찾아 헤매다 주차장 쪽 뒷 문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앞문으로 동생이 나오고 있었다. 그 정도로 빠르게 끝나버린 검사. 허무했지만 아직 잠들어 있는 땅콩이를 보며 빨리 끝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날 우리의 계획, 아니 동생의 계획은 검사가 끝나고 브리또 맛집에서 브리또를 사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8시에 나와 9시 즈음 검사가 끝난 탓에 근처 브리또 집이 열지 않은 상태였다. 동생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노래를 부른 날 위해 코앞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로 진입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줬다.
바로 갈지 근처 호수를 잠시 볼 지 하던 찰나 땅콩이가 깼고 공원 주차장에서 기저귀, 수유 등의 일을 해결했다. 사실 그냥 집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 호수공원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달리는 차 안에서 우는 땅콩이를 우왕좌왕 당황하며 달래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땅콩이가 잠시 쉬었다 가자고 눈을 뜬 것은 아니었을까?
마침 땅콩이가 다시 잠들고 나니 브리또 가게가 문을 열 시간이 되어 점심으로 브리또를 사갔다. 두 번째 외식이었다. 지난번 버거킹과, 브리또.
집으로 돌아와 동생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던 이야기들. 적으면서 들을 걸 했을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가 숨 쉬는 그곳이 흥미로웠다.
저녁 시간, 건너편 대각선의 노란 대문집 부부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땅콩이와 9개월 정도 터울의 친구가 있는 집이었다. 귀여운 파인애플 수건과 바디 슈트, 바디 클랜저를 선물로 주었다. 동생은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었구나를 알 수 있는 방문 중 하나였다.
2일 전 시작된 청력검사의 여정은 끝이 났다. 어느덧 이곳에 온 지 10일 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