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_인생은 에피소드만이 남는다
오전, 제부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출근길 요기를 위함이었다. 동생과 간단한 아침을 먹고, 클리닉 센터로 향했다. 동생과 땅콩이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이곳에는 패밀리 닥터가 존재했고 클리닉 센터와 병원 건물이 분리되어 있었다. 입원실과 응급실이 있는 병원, 의원처럼 증상을 얘기하고 처방을 내려주는 클리닉 센터. 보통 아프면 클리닉 센터에 먼저 들려 증상을 얘기하고 그를 근간으로 수술, 채혈 등의 검사가 필요할 시 병원에 가게 되는 시스템. 간호사는 모두 여성이었고 다양한 나잇대로 추정되며 굉장히 친절했다.
접수를 했다. 아이가 귀한 곳이라 그런지 땅콩이는 모두에게 인기였고 특히 신생아라고 하기에는 큰 키는 놀라움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안내를 받아 진료실 같은 곳에 들어갔다. 안내해 주는 간호사는 잠시 동생에게 여러 상태가 어떠한지 묻고 내게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여러 질문 중 그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동생의 엄마로 오해한, 엄마니?라는 질문 때문이다. 언니라고 말하니 당황하던 그의 눈빛, 더 크게 웃던 웃음. 함께 폭소하고 난 뒤 네가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게 아니라 동생이 유난히 어려 보인다는 말과 함께.
우린 4살 터울이다. 친구라는 소리도 들었던, 동안이란 말을 줄 곧 들으며 살아온 나로서 동생의 엄마가 되어버렸던 그 찰나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4살 터울이 족해도 18살 이상의 터울이 되어 버린 샘인데, 동생의 나이는 알 테니 난 그녀의 첫인상에 마흔 후반, 오십 초반인 것이었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너무 충격적이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황급히 의사가 올 거라며 나간 간호사였다.
의사가 왔고 땅콩이의 이곳저곳을 보고, 끝으로 동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사는 럭키걸이라며 동생의 빠른 회복에 놀라는 눈치였다. 언니가 보낸 도넛 방석 덕분이었는지 4명의 자녀를 둔 엄마의 유전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회복이 빠르다는 말은 안도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웃으며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 잠시 파머씨를 다녀왔다. 약을 다루는 곳과 그 외 상품을 계산할 수 있는 곳이 한 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가게였다. 정체성은 약국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약 코너 보다 문구, 장난감, 아기옷, 기념품, 간식, 화장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사실 클렌징크림이 필요해서 온 나였지만 귀여운 아기옷을 보니 사고 싶고, 재밌는 잠옷을 보니 또 사고 싶고 쇼핑 욕구가 점점 커져갔다. 마음을 억누르고 꼭 필요한 클렌징크림, 동생을 위한 찜질기를 샀다. 계산을 하려는 찰나 눈에 들어온 노트도 함께.
디자인 캐나다라는 문구에 이건 사야해 라고 집어 들었지만 그 밑에 작은 글씨로 프린트 바이 차이나가 적혀있어 이곳 제작 시스템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야 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제부가 퇴근해 돌아왔고 제부와 동생, 둘만의 첫 목욕시키기가 시작되었다. 기록을 위해 사간 레트로 캠코더를 거치해 놓은 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두 사람이 함께한 첫 목욕을 담았다. 땅콩이는 울다 물속에서 안정을 취했다. 웃고 울고 당황하고 겁먹다 타협하는 목욕의 순간.
저녁을 먹고 일몰을 담으러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길에 비가 내려 다시 돌아가는 중, 서둘러 돌아가려 달렸다. 슬리퍼가 발에 낀 채로 돌아가 넘어질 뻔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 찍을 생각한 내가 또 웃겨 혼자 실성한 사람 마냥 웃으며 비를 맞은 채 빠르게 걸어갔다.
남동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나 인생에 남는 건 에피소드뿐이야, 그러니까 많이 만들어.
맞는 말이다.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으니까. 난 간호사의 엄마니?라는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오늘이 기억 날 것이다. 한국에서는 스쳐 지나는 일몰을 찍으러 어슬렁 걷다 비가 쏟아져 달려 돌아가는 길 돌아간 슬리퍼. 그 와중에 그걸 찍겠다고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그 상태로 잠시 멈춘 에피소드. 캐나다의 파머씨라는 곳에서 쇼핑욕구를 불태웠다 자제하는 에피소드.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여전히 살아있는 백김치의 배추를 죽일 수가 없어 타협하기로 한 것까지.
내일은 청력 검사를 위해 다른 마을로 가야 하는데 기대가 된다. 내일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내일을 이토록 기대한 적이 언제였지싶다. 어린아이가 된 마냥 설레하며 내일을 고대하는 내가 반가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