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오히려 큰일 나는 어른들의 불안 경보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휴식하는데
한 아이가 옆자리에 와서
엄마와 함께 수학 문제집을 펼친다.
집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 큰 소리를 내며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느니
이렇게 오픈된 공간인 카페에 와서
남의 눈을 어느 정도 의식하며
함께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환경 설정은 내 마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어른에게도 필요하니까.
그런데 아주 오래전 큰 아이와 수학을 공부하다가
답답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는
부정적 언어를 전달했던
전력이 있는 나는
역시 오래전 아이 아빠 역시
큰 아이 사춘기에 수학 공부를 봐주다가
크게 어긋나 관계가 틀어진 경험도
트라우마처럼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하더니만
괜스레 멀쩡한 두 사람의 공부 대화에
신경이 쓰였고, 조금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분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오래지 않아 갑자기 높아진다.
'저번에 한 거잖아.
그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따라잡겠니. 에휴'
엄마는 그저
아이가 이 한 문제를 잘 풀어내지 못하면
입시에서 불리할 것 같고
잘 나가는 학군지 친구들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아 괴로웠을 것이다.
정작 아이는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데
엄마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디선가 형성된
기묘한 소용돌이는 멈출 줄을 모른다.
(안타깝게도 '미래'란 아이에게 추상적 개념이다)
문제는 아이의 마음에도 어느새
이런 불안과 걱정이 스며들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은 생각보다 쉽고 강력하게 전염된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말하는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는
레벨에 한참 못 미치는 삶을 살게 될 것 같아
불안하고 마음이 힘들다.
"이 정도 해서는 힘들어.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남들보다 힘들게 살아야 해.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힘들어.
인생이 많이 어렵게 되거든."
그런데 안타깝게도 동기부여를 위한
어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수록
더욱 큰일이다.
'내 인생을 끝장나게 만들'
그 실수를 용납할 수 없고
아이는 완벽주의에 빠져
단 몇 번의 실수에도
무기력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결국
불안을 잠재울 그 무엇인가에 자꾸 기대게 한다.
심한 경우 마약이나 도박,
성적인 탈선행위 등으로 이어지지만
유순한 친구들조차
점차 부모를 벗어나
친구 관계나 사교육 중독으로 빠지기 쉽다.
“도저히 집중이 안되면 잠시 수업을 멈추어도 좋아.
엄마에게 말씀드려 보면 어떨까?
용기가 나지 않으면 선생님이 도와줄게.”
언젠가 과도한 사교육으로
내 수업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학원을 줄이거나 멈출 것을 진심으로 권유한 적 있다.
아이는 하교 후 끊임없는 사교육 릴레이로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수업 중 계속되던 아이의 무심한 표정이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그저 이 나라의 교육 문화가
마냥 원망스럽고 속상할 뿐.
놀랍게도 아이는 사교육 줄이기를 돕겠다는
나의 진심 어린 제안을 단숨에 거절했다.
“지금 그만두면 레벨 떨어져요.
어느 세월에 따라잡아요. 그리고 대학 못 가잖아요”
아이의 이 말을 부모는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님 불행이라 해야 할까.
큰맘 먹고 아이를 위해 진정성 있게
눈앞의 수입 공백과 상관없이
당장 멈추어 생각하게 하고픈
순수한 교육 열정은 한순간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쿨내 진동하는 멋진 선생님이고 싶었던 마음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라앉게 될 줄이야.
세월의 흐름을 느껴보지도 못한
저 작은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어른의 사고와 철학이 그대로 다음 세대에 전이된다는
갑작스러운 현실 인식이
나를 그 시간 속에 잠시 머물게 했다.
내 자식이 아니라서 괜한 부추김을 한 것일까?
장담컨대 절대 그렇지 않다.
작은 교습소였지만
적어도 내게 와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싶은 순수한 열정은
줄곧 유지하고 있었고,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선생님의 메타인지로
끊임없이 생각해 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의 무기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엄마의 ‘어느 세월에’라는 마인드라는 결론을 내리고
학원계에서 지금도 성행하는
단 며칠 혹은 몇 개월만의 성공 마케팅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로 결심했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의 출석을 담보로
동기를 흥정하고 싶지 않다고.
내게 온 모든 아이들이 성공하는 교육을 꿈꾸며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진짜 흥미를 찾아주고
지지해 주는 엄마들을 위해
더 넓은 세상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어이니
그래. 엄마표영어부터 시작해 보자.
사람을 바꾸는 일이 그리 어려운데,
아이를 바꾸는 일은 오죽할까.
아이들의 변화를 종용하기 이전에
부모들의 마음을 모아보는 이 길을 가보자.
이 시대 부모들의 눈물과 아픔, 불안에 공감해 주고
함께 힘을 내어 그 오랜 세월 이겨내어 보자고
부드럽지만 강단 있게 손을 내밀어보자.
나의 대중을 향한 교육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믿으면 오히려 큰 일어나는
어른들의 동기 부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조금 쉬어도 괜찮아.
이제 고작 10대인 너에게는 시간이 많아.
하고 싶은 걸 찾아 몰입하면
뭐든 될 수 있는 나이야.'
라는 말은 언제쯤이나 이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