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는 시간을 "원장님"이라고만 불리며 살아왔으니, 저에게 딱 맞추어진 호칭처럼 길들여져 있었나 봅니다.
이 호칭이 사라지면 저라는 정체성까지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건 다 양보한다고 쳐도 이 명함만은 쥐고 있어야 저의 가치가 유지될 것만 같았거든요.
'그만둘래. 아니지 이건 안 되지.' 그렇게 몇 번을 줏대 없이 번복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주위의 어린이집들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죠. 크게 건물을 지어 확장이전을 하고, 공공형 어린이집으로 지정을 받고, 열린 어린이집으로 운영을 한다고 합니다. 민간어린이집에서 시립어린이집 원장님으로 발령을 받아 가시는 분들도 계셨죠.
나름의 삶에 대한 스케치가 있었습니다. 예쁘게 색칠을 해가며 잘 꾸며가고 있는데도 움켜쥐고 있는 왼손의 어린이집이 뜨거운 감자 같았습니다. 급기야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에라 모르겠다' 확 바닥에 놓아버렸어요.
그렇게 '어린이집원장'이란 명함을 없앤 지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앨버트로스]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큰 날개가 있지만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바보새라 불리는 새 [앨버트로스].
그러나 바람이 부는 날.
벼랑 끝에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
한 번의 날갯짓도 없이 몇 시간을 비행할 수 있는 새.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을 배경 삼아 날아 오른 앨버트로스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저는 늘 동경했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원장님들과 만남을 가집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러시죠.
"너무 좋아 보여요. 부럽다"
"나는 언제쯤 이일에서 해방되려나? 너무 힘들어."
"원장님. 저처럼 사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누군가는 사명처럼 유아교육 하셔야죠. 다음세대를 키워가는 위대한 일을 원장님이 하고 계신 거예요."
이분들의 고민과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저보다 더 긴 시간을 천직으로 보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천 ** 원장님!!!
원장님을 생각하면 늘 '감사'가 떠올라요.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감사로 가득 메우시며 사시는 분.
왜 데이지를 닮았냐고요?
데이지의 꽃말처럼 희망, 평화, 사랑스러움, 숨겨진 사랑. 겸손한 아름다움이 삶 전반에 녹아져 내려 있기 때문입니다.
원장님!
가장 힘들고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저와 함께 해 주셨어요. 그냥 묵묵히, 한 번의 질책도 없이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저의 끝없는 '투덜거림'을 원장님의 '감사'로 늘 덮어주었지요.
어쩌면 자연스레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같은 모습으로 부러질 듯 치솟은 저의 가시들을 살그머니 부러뜨려 주신 거 같아요.
오랜 시간 동행했던 시간들 속에 원장님의 모습이 곳곳에 그림처럼 남아 있더군요.
5년이 넘게 같은 공부를 했고, 가끔은 등산을 떠났고, 여행을 했어요. 그리고 저의 50대를 꽉 채워, 삶이셨던 감사의 메시지로 제가 이겨내게 영양분을 공급하셨어요.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원장님!
제가 했던 고민을 나누는 원장님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가 됩니다.
저와 같지 않은 상황들이 있고, 원장님이 추구하시는 삶이 있기에, 저도 그냥 저한테 그러셨던 것처럼 무엇이든 옳은 선택이라 박수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