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의별 Sep 24. 2024

키다리아저씨 덕분에

감사편지. 서른다섯 번째  법정싸움을 이겨냈습니다.


처음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소하게 경찰서에도 한번 가 본 적이 없는 제가 3년이란 법정싸움을 했습니다.

그것도 정부를 상대로.


죄명: 정부보조금 횡령 및 사기죄.


50대 초 삶의 가장 정점을 찍고, 시작된 내리막길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곤두박질쳐진 거 같았습니다.

평생처음 받아본 경찰조사는 그냥 네? 네! 네? 네! 대답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컴퓨터 화면에 빽빽이 적힌 진술서를 읽어 보랍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활자는 눈물 속에 둥둥 지맘대로 움직입니다.

'위 진술서는 사실입니다'라는 의미의 글 뒤편에 마지막 지문을 찍어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서러움과 두려움의 눈물은 탁자 위로 뚝 뚝 떨어져 내리고, 몰아붙이던 경찰관도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저의 경찰서 첫 방문(?)이 끝나고, 얼마 후 등기로 송달된 건 나 외 25명의 어린이집 이름과 제 각기 다른 금액의 교육금액이 빼곡히 적힌 고소장이었는지 검찰 출두명령서였는지 모를 위 죄명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벌금 300만 원을 부과하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이 파악도 채 되기 전 전과자가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에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로자들에게 무료교육이 지원되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정상적으로 교구를 구입하고 교구 활용법을 무료교육 한다는 업체의 말에 어린이집 교사들이 교육을 받은 것뿐인데, 정부보조금 횡령과 사기죄로 300만 원의 벌금형이 부과된 겁니다.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함께 정식재판을 받기로 결정한 16분의 원장님들과 함께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그리고 3년의 시간 동안 3분의 판사님이 교체되는 지루한 법정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12월 19일, 마지막 판결이 선고되는 날. 변호사님 조차 갸우뚱했던 전원 무죄가 성립되었습니다.

 

교육기관 사장님이 서류를 조작하여 불법적으로 정부보조금을 유용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교구를 구입한 다른 한분과 저는 교육기관 사장님이 보내온 메일을 통하여 확실하게 같이 공모한 사실이 없음이 증거 되었으므로 무죄가 성립된 것입니다.


마지막 판결을 내리시면서 검사를 향하여 판사님의 호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재 각기 다른 상황들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고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일관적인 기소가 이루어짐에 대한 질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검사 측 항소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3년의 서러움과 두려움과 억울함은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법원으로부터 보상받았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은 이길 수 없다고 말들 하셨지만, 확실한 증거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우리에게는 승자가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가끔씩 목사님에 대한 안부가 들려옵니다.


목사님께 오래도록 긴 글을 적었었지요.

한 삼 년을 적었을까요?

처음엔 제자훈련 과제를 매주 적다 보니 익숙해져서 훈련이 끝나고 나서도 부탁을 드렸었지요. 잠시만 저의 키다리아저씨가 되어달라고. 그리고 편지글을 적었었지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할 말이 가슴에 그득하게 차면 일기처럼 쏟아내었습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던 12월 어느 날.

3년이 넘게 적은 글을 '나가기'버턴 하나로 삭제하던 날.

음부터 일방적으로 부여했던 '키다리아저씨'의 역할을 종료했지요.


처음 글을 적기 시작했을 때는 모세가 가데스바네아 광야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했던 것처럼 저의 광야시기를 기록해 놓고 싶어서였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만나와 메추라기로, 구름기름과 불기둥으로 이끄신 그분이 저를 어떻게 이끄셨는지를 간증하고 싶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3년이란 긴 법정싸움을 제가 처음에 부탁드렸던 것처럼 시종일관 한마디의 코멘터도 없이 확인만 해 주셨어요.

마지막 재판결과가 나오고 보내드린 글에 긴 답글을 보내주신 걸 보면 저의 글은 읽고 계셨던 게 확실합니다.


목사님!

저의 모든 글이 사라지던 날.

잠시 고민했습니다.


'어딘가 옮겨놓아야 하나?'


그러나 미련 없이 나가기 버턴을 누른 걸 보면 그냥 모든 상황들을 종료하고 싶었나 봅니다.


목사님!


저의 키다리 아저씨로 섬겨주셨던 3년만 기억하겠습니다.

어느 곳에 계시던지, 어느 곳에서 무얼 하시던지 건강과 하나님의 종으로써 귀하게 사용되시길 기도합니다.


2024년 9월 24일 김 00 권사 드림



이전 10화 비타민이 되어 드릴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