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주분을 정면으로 바라본 건 거의 8년 전입니다. 매주마다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저 멀리서 보이는 것만으로도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분은 [방과후학교]를 섬길 자원봉사자로 만났습니다.
교회에 등록한 지 일주일이 안되셨지만, [방과후학교]를 섬기시겠다 지원서를 제출하셨다고 소개받았습니다.
사실 [교회 방과후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을, 제게 말씀해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선뜻 협력하겠다고 나서기가 망설여지는타이밍이었죠.
이분의 열정과 거침없는 자신감에 힘을 얻어 시작한 방과후학교는, 지나치리만치 준비기간이 짧았습니다.
오랜 시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저와. 방과후학교 영어과목 교사였던 이분과의 운영방침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저는 행정과 절차에, 이분은 교육실무에 익숙해 있던 터라 조율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형사건이 터졌습니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입장에 있던 중직자들이 많은 터라, 지원은 미비했습니다. 사비를 털어서 재정을 충당했지만 암묵적 진행자였던 저에 대한 불평은 '무능력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습니다.(이건 제가 느낀 감정입니다.)
최고 결정권자와 함께 하는 회의를 소집한 이분의 발언은, 30분 회의 중 20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나머지 몇 분의 짧은 형식적 의견이 마무리되고, 저에게는 '메일로 의견 보내주세요'라는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최고 결정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회의가 있다 떠났습니다.
어느 작가님의 표현처럼 '감정페허'시기였던 저에게는, 이분의 강한 의사표현이 수용되기 힘들었습니다.
수치심에 몸서리를 쳐대는 저 대신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분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저는 장문의 의견서를 메일로 보내드렸지만 답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나이 어린 청년이 부모님께 전했고, 속절없이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그 이후로 지옥행의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이 분의 열정만큼 끝이 없는 질주에 페달을 밟아주는 이들은 늘어만 갔죠.
그리고 작년, 최고 결정권자도 이분도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딱 7년 6개월이 지난 오늘 그분의 자녀 결혼식에 온 겁니다.
굳이 이 결혼식에 왜 왔냐고요?
아이러니하게 저는 이분의 두 자녀와 함께 같은 부서를 섬겼습니다.
공무원과 초등교사인 이들은 참 바르게 성장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올해가 시작될 때, 결혼과 개인적 사유로 이들도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때론 기성세대들의 잘못(실수라고 말하고 쉽습니다.)때문인 거 같아 속이 상합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한 번씩 안아주는 거밖에 없었습니다.
집사님. (선교사님이란 호칭이 아직은 어색해서 집사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축하드려요"
제 목소리에 정말 놀라신 거 같았어요.
마스크를 착용한 제 얼굴을 몇 번이나 확인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올 거라 상상도 못 했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죠.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식사시간 인사를 다니면서도 그러셨죠.
"오실 거라고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시고 저의 촉촉해진 눈을 바라보셨지요.
"두 청년을 너무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진심이었습니다.
[방과후학교]는 실패했지만 섬긴 이들은 실수했을 뿐입니다. 그 실수 때문에 소중한 청년들을 가슴에서 지우고 싶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