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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온 것처럼
가을이 언제 이렇게 와 있죠?
소풍 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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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별
Oct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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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로운 아침인 것처럼 우리 집 마당도 역시나 새롭습니다.
콤프레셔 돌아가는 소리에 마당에 나와봅니다.
또 무얼 하려나?
어제 따서 의자에 널어놓은 무청을 남편이 뒤적이고 있습니다.
남편 너머로 방금 거름을 주었다는 무와 배추가 싱싱하게 자태를 드러냅니다.
카메라를 안 켤 수가 없습니다.
버건디색 국화꽃들이 소복소복 피어오릅니다. 작년 지고난 국화꽃들을 잘라 이불 삼아 거름 삼아 덮어두었더니 올봄 무지막지하게 싹을 틔웠습니다.
그리고 색깔다양하게 꽃망울들을 올립니다.
이제는 생의 긴 여정을 다 마무리하는 듯 씨앗을 머금은 버들마편초가 나의 인생처럼 가을 깊숙이 들어와 있나 봅니다.
내년 이른 봄을 위하여 며칠 전 마당정리를 했습니다.
어김없이 보라색향기를 뿜어낼 백리향이지만 넘치니 적당하게 잘라내고 뽑아주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봄엔 '아주가'의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 일부러 긴 자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포기포기 나누어 심어주었답니다.
내년 봄에도 우리 집 마당은 보라색이 제일 먼저 찾아올 듯합니다.
올봄 캐서 둔 튤립과 알리움 구근을 심어주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걸 보니 가을이 꽤 깊었군요. 올 가을은 비소식이 더 많아 이것저것 더 많이 아팠던 하루하루입니다.
남편의 은발 머리를 보니 나보다 더 가을 깊숙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가 봅니다.
나도 은발을 희망해 보았지만 남편의 강경한 반대입니다.
자네는 그냥 염색하게.
이제 같이 하얘지는 머리카락을 보는 것이 남편은 싫은가 봅니다.
지난날 청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 가장 좋다고 멋쩍게 이야기했던 그때처럼 아직까지는 청바지가 어울리는 여자이길 바라는 걸까요?
남편이 무언가 만들고 있습니다.
날씨가 쌀쌀하니 오늘은 따끈한 봉지커피 한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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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어린이집 원장으로 살았답니다. 이젠 '소풍 온 것 처럼' 살아가는 일상을 글로 이야기 나누어 보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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