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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Oct 18. 2023

나니까상 마인드셋도 필요해


어른이 되어서는 조금 다른 종류의 창의력에 목을 매게 되었다.

바로 '독창성'이다.

 

공무원들이 예산 신규사업 심사를 받을 때면 이런 류의 질문을 무수히 받는다.


"이거 옛날에 했던 거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이거 전에 비슷한 것 개발된 것 본 것 같은데?"

"이거 다른 부처에서 하는 것 같은데?"

"이거 또 '국산화' 어쩌고 하는 의미 없는 데에 예산 쓰는 사업 아니에요?"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야! 완전 다르다고! 우리만의 색깔이 있고, 완전히 새롭고, 유사 사례 A, B, C, D와는 이러이러 저러저러한 점에서 다르고, 분명히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신규'사업이라고 열심히 주장해본다. 가끔은 받아들여지고 보통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가 심사자의 입장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차별화'에 대한 질문을 한다.

"전에 이런 연구도 있었는데, 굳이 새로운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뭐죠?"

어쩔 수 없다. 국민의 혈세를 허튼 데에 낭비해서는 안되니, '굳이' '왜' '또' 필요한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을 받다보면 묘하게 내가 관할하는 사업과 '유체 이탈' 현상이 벌어진다. 너무 마음을 주면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끝 없이 받을 때, 혹은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업이 폐기될 때 마음을 다치게 되니까. 겉으로는 '독창적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독창적이기는 커녕. 그냥 월급받으려고 하는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공무원 직업병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 사회의 경쟁이 워낙 심하기 때문인지. 업무와 무관한 일에서도 나는 타인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독창성을 요구했다. 대학원에서 연구를 할 때 '나만' 잘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찾았고, 친구들이 창업을 한다고 할 때 '그거 벌써 나온 거 아니야?'라는 식의 의구심을 먼저 품었다.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들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자신이 당연히 없기에, 나는 창업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배달의 민족'이나 '틴더' 같은 앱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정말정말 기술을 잘 아는,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나 같은 평범족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미국 사회도 독창성에 목을 맨다. 어쩌면 더 심한지도 모른다. 대학을 갈 때 '자기소개서'를 자기만의 시선으로 잘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아마존 면접을 볼 때도 제프 베조스의 17가지 경영 원칙에 맞추어 '자기만의 이야기'를 준비해가야 한다. 자원봉사에 지원을 할 때도 '지원동기'를 쓰게 한다.


논문을 쓸 때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독창성(novelty) 문단이다. 기존 연구에 비해서 내 연구가 왜 새롭고 중요한지를 강조해서 쓰는 부분이다. 그러려면 기존 연구의 부족함을 지적해야 한다. 이 부족한 '갭'을 채우기 위해 바로 내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 논문을 읽어라!! 이런 식의 과감한 문장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나는 이 '독창성 요구'에 기가 질렸다. 세상에 있는 논문을 다 읽을 자신도 없었고. 그 논문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내가 '처음으로 해냈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 부끄러운 기분이 앞섰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좀처럼 논문에 novelty 문단을 포함시키지 못했다. 가끔 어떤 대학원생이 '기존 연구는 전부 잘못된 가정에 기초해 있다!!!'라고 과감하게 쓰는 용기를 보면서(그리고 실제 그 분들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을 무럭무럭 키웠다.


그렇게 박사 5년차가 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미국 학계에서 요구하는 독창성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내가 처음 한다!는 정도의 확신은 필요 없었다. 내가 약간 새로운 '앵글'을 시도했다는 강조하면 충분했다. 대체로 (1) 기존 학자들이 비교적 덜 관심 가졌던 주제가, (2)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게 등장했기 때문에, (3) 다소 신박한 방법론으로 내가 한 번 해명해보겠다는 식으로 쓰면 된다. 또 이것보다 조금 더 과감하고 단순하게 이야기한다 해도 어차피 누가 쫓아와서 마구 비판하지는 않는다.  



창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어느 학회에 갔다가 'VR 갤러리'로 창업을 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VR에서 마음껏 자기 디지털 작품을 걸어둘 수 있도록 갤러리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듣자마자 내 마음 속에 스멀스멀 든 생각은 '그거 벌써 있는데?' 였다.


누군가 그에게 '이미 VR 갤러리 사업은 많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자, 그 분은 벌써 준비되어 있다는 듯이 '예술가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사업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예술가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UI를 설계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짠다.'라고 이야기 했다. 눈동자에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 분의 논리에 완전히 설득되진 않았지만, 그 분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나도 한 번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업이 잘되지 않더라도 저 분은 '분명히 자기 걸 해내고야 말 것 같다.'는 생각도.


미국에서 창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미 강자가 있는' 시장에 거침 없이 뛰어든다. 차별화 전략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쓰긴 하지만 차별화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사업을 포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번에 OpenAI 본사에서 만났던 AI 스타트업들도 사업 모델이 어디선가 들어본듯 비슷비슷했다. 알고리즘 편향성을 해결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반영한다, 블록체인과 AI를 접목해서 시큐리티 문제를 해결한다... 조그만 팀이 AI기업을 이길 순 없겠지만, 이들은 작은 팀이 갖는 강점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보려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면 큰 회사에 인수합병될지도, 아니면 OpenAI처럼 큰 회사가 될지 또 모르는 일이다.


꼭 기술과 관련된 스타트업이 아니라도 내 주변 사람들은 김치 사업에, 불고기 도시락 사업에, 아이 돌보기 사업에 거침없이 뛰어들고 있다. 다들 복잡한 허가나 법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겠지만, 종업원도 고용해가면서 차츰차츰 일을 키운다.


세상에 넘치고 넘치는 운동 유튜브든, 브이로그든, 창업이든, 연구든 일단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의 것과 비교하면서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강박보다는, 남의 것을 베끼지 않는다는 양심나의 생각을 밀고 간다는 뚝심이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에 이미 있는 것이어도 내가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이폰의 굴곡면이나 figma의 단순한 UI처럼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작은 차이는 경험이 쌓여야만 가능하니까. 일단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전에, 나중에 이 날을 부끄러워하게 될지 몰라도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것인지, 내가 나에게 주입한 것인지 모르겠는 독창성, 창의성의 압박을 조금 내려놓기로 한다. '잘할 수 있어서 > 내가 한다'가 아니라 '내가 하니까 > 잘할 수 있다'는 마안드셋을 가져보기로 한다.

나만의 앵글로 꾸준히 세상에 무언가를 선보이는 과정.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독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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