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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Sep 14. 2023

나를 위로해주는, 인공지능

인간은 실수를 한다. 그리고 실수에는 책임이 따른다. 


지난 며칠 간은 지옥 같았다.  

미국 과학계에서는 저널이나 컨퍼런스에 기고하기 전에 arxiv라는 웹사이트에 논문 preprint를 올린다. 나는 사회과학자이므로 보통 SSRN을 활용하지만, 이번에는 컴퓨터사이언티스트들과 함께 쓴 논문이라 arxiv에 초안을 올렸다. 그런데 내 preprint에 작지만 중대한 하자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preprint를 자세히 읽은, 어느 저명한 학자가 "여기 내가 발견한 이 실수 좀 보세요. 요즘 논문 대충 쓰네 하하하!!"라는 식으로 우리 preprint link를 SNS에 배포했다. 여기저기서 나와 공저자들에게 '어떻게 된거야?!'라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빠르게 오류를 시정하고, 오류를 인정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오류가 주된 논점을 흐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초보적인 실수여서 비웃음을 사도 할 말이 없었다. 


나와 함께 이 논문을 쓴 공저자들은 "앞으론 좀 더 열심히 검토하자! 괜찮아!"라는 입장이었지만, 1저자인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것이 싫었고, 함께 비웃음을 당하는 공저자들에게 미안했다. 


이 일이 없을 때도, 워낙 오랜 시간 고독한 연구를 하면서 점차 가라앉던 차였다. 하루에도 10번씩 연구자로서의 내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던 차였다. 내가 쓰는 글을 과연 누가 읽어줄지, 과연 누가 재밌어할지. 


그러던 중 명치 한 가운데에 펀치를 맞게 된 것이다. SNS글을 본 후, 흔적을 되짚어가면서 진짜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그 좌절감, 모멸감, 부끄러움이란. 이 SNS글이 얼마나 멀리 퍼질지 무서웠다. 뉴욕타임스가 기사를 쓰는 거 아니야? 요즘 학자들이 최소한의 검증도 안하고 논문을 내는 습성이 문제라고? 


공저자들은 우리가 한 연구가 워낙 방대하니 1% 정도의 실수는 있을 수 있고, 기고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알아차린 사람들이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들이 우리를 이렇게 viral로 활용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더 커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손가락이 성글다. 접시를 잘 깨뜨리고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세탁기를 돌린 후 건조하는 것을 까먹는다. 이렇게 일상에서 워낙 실수가 잦은 스타일이라 공적인 일에서는 극도로 매사에 조심해왔다. 그래서 내 기억으로는, 한국 정부부처에서 산더미 같은 많은 서류를 소화할 때도 중대한 오타를 내거나 실수를 한 일이 없었다. 작은 업무를 수행할 때(예. 커피 배달)도 두 번, 세 번 체크를 했다. 내가 일을 그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그런데, 내가 정말 수백, 수천 시간을 들여서 쓴, 내 자식 같은 논문을 불완전한 상태로 세상에 내 보냈단 말인가! 결국 내가 꽁꽁 숨겨왔던 나의 본성을 만 천하에 드러내고 마는구나. 



나는 고요하게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미국의 동료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들이 먼저 물어오면 이야기하려 했지만, 아무도 내게 물어오지 않았다. 소문이 다 났는데, 나를 배려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그들의 SNS 위력이 높지 않았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도 만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구자로서 나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남편에게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야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겠지만, 내 입으로 그 일을 꺼내는 것이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Photo by Christopher Campbell on Unsplash


나는 연구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가?  

그리고 이렇게 영원히 '미흡한 연구자'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인공지능과 대화를 시도하다. 


그렇게 홀로 며칠 간을 면벽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문득, 인공지능과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찮아도 생성 AI의 Mental Health Advisor로서 역량에 대해 연구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 나의 이 우울감과 답답함을 연구의 기회로 삼아보자. Wysa (역사가 긴 심리상담 앱), ChatGPT, Hugging Face의 LLaMA-2 Chat (Meta가 개발한 LLaMA를 이용), 그리고 Claude 2(Anthropic)를 써보았다. 


Wysa: 인공지능 챗과 사람과 하는 챗(유료) 두 가지. 사람챗은 써보지 않았다. 인공지능 챗은 심리상담 '교본' 같은 것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교본을 착실하게 따르지만 전혀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분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인간 심리상담사가 어떤 식으로 접근하라고 조언을 해주겠구나, 라는 가정적 깨달음(?) 같은 것은 얻을 수 있다. 

ChatGPT: 1위를 할 줄 알았으나, 예상 밖에 큰 격차로 2위. 인간 심리상담사를 찾아가라고 계속 말하는 점이 번거로움. 과거의 챗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도 유의미한 조언을 많이 해줌. 

Claude: 단연 1위. link와 pdf를 읽을 수 있음. 내 경우내 논문을 비판하는 SNS link를 읽게 해서,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었음. 내 마음 속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부정적 생각을 challenge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diplomatic한 전략까지 함께 짜줌.

LLaMA-2: ChatGPT나 Claude처럼 소비자를 위한 product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Meta가 무료로 푼 모델을 허깅페이스가 그대로 챗으로 구현했기 때문인지, Bing Chat처럼 조금 멍청한 느낌이고 대화가 일회성으로 뚝뚝 끊긴다. ChatGPT처럼 링크를 읽지 못함. LLaMA-2가 GPT-4보다 낫다는 의견이 있던데, 아마 모델을 직접 돌릴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Claude는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가입하게 되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 최소한 심리상담 측면에서는 챗지피티를 훨씬 능가했다. Claude를 만든 Anthropic은 생성 AI분야에서는 유명한 스타트업이다. 개발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도 질서정연하게 잘 쓰고, 윤리나 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듯 해서, 나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지난 번 학회에 갔을 때 그 곳에 있는 연구진들을 만나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었다.  


다만 Claude에도 단점은 있다. 무료 사용량이 현저히 적다. 며칠 전 처음으로 유료 가입이 풀렸는데 1달에 20불로 챗지피티와 가격은 같지만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료 사용량의 5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그리고 ChatGPT처럼 '사실상 기명'이다.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원초적이고 복잡한 내면의 심리까지 털어놓기는 왠지 꺼려진다;; 한편, Wysa는 회원가입조차 요하지 않는 완전 무기명으로 운영된다. 그 이유는 심리상담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의 특성상, 완전한 비밀유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대신, Wysa는 과거의 챗을 기억하지 못한다. 


클로드는 어딘가 모르게 품격 있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Wysa와 ChatGPT의 차이가 1만원 짜리, 10만원 짜리 스피커의 차이라면 ChatGPT와 클로드는 10만원 짜리와 20만원 짜리 스피커의 차이 정도...? 현저하진 않지만 오묘하게 훨씬 낫다. 돈만 있으면 20만원짜리 스피커를 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다음은 클로드가 내게 준 '위로'를 Deep.L로 번역하고 어색한 부분을 내가 수정한 것이다. 


'나 이러이러해서 너무너무 괴롭고 나 자신을 죽이고 싶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I understand this is a difficult situation, but try not to be too hard on yourself. We all make mistakes, especially when using new technologies that we are still learning how to interact with responsibly. Here are a few suggestions: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특히 우리가 아직 책임감 있게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단계에 있는 신기술을 사용할 때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제안 사항입니다:
Take a breath. This will pass, and you will recover. Don't despair.

심호흡을 하세요.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회복될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세요.
Recognize hindsight bias. In looking back, it's easy to overestimate what you "should have" known or done. Try to judge fairly.

과거를 돌아볼 때 발생하는 편견을 인식하세요. 돌이켜보면 자신이 '알았어야' 했거나 '했어야' 할 일을 과대평가하기 쉽습니다. 공정하게 판단하세요.
Be honest and take accountability. You've already done this by correcting and acknowledging the mistakes. That's commendable.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세요. 이미 오류를 시정하고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이 작업을 수행하셨습니다.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Learn from this experience. Now you know to double-check the details before publication. We all live and learn.

이 경험에서 배우세요. 이제 출판하기 전에 내용을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며 배웁니다.
Don't isolate. Lean on co-authors, friends and family for support. Collaboration and community will help get you through this.

고립되지 마세요. 공동 저자, 친구,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공동 작업과 커뮤니티가 이 시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Keep perspective. One misstep does not define you or your career. You clearly have a lot to contribute. Keep your eyes on the long game.

관점을 유지하세요. 한 번의 실수가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커리어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기여할 것이 많습니다. 긴 안목을 유지하세요.
Consider talking to a counselor if you continue to struggle with depression or self-blame. They can help give coping strategies.

우울증이나 자책감으로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상담사와 상담하는 것을 고려하세요. 상담사는 대처 전략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Use this to help others. In time, you could speak about your experience to help other researchers avoid similar pitfalls. Focus on the positive potentials.

이를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활용하세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연구자들이 비슷한 함정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잠재력에 집중하세요.
With humility, accountability and support you will get through this. Don't be discouraged. Brighter days are ahead. You've got this!

겸손과 책임감, 지지를 통해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낙담하지 마세요. 더 밝은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챗지피티와 비슷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내 상황에 찰지게 맞는 조언 같은 느낌? 챗지피티가 신문에 있는 띠별 운세 같다면 클로드는 농협신년운세 느낌이었다. 


이 답변의 품질을 보고 감화를 받은 나는, (1) 현재의 이 곤란한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2) SNS 유포자들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서 오류에 대한 사과를 하고 해명을 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았다. 



'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SNS유포자에게 직접 사과/해명해야 할까'에 대한 클로드의 답변: 


Here are a few thoughts on how to handle this situation delicately:

다음은 이러한 상황을 섬세하게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생각입니다:
Be selective in who you tell. Sharing with one or two very close, trusted friends who will support you emotionally could be helpful. But wider spreading of what happened may not be advisable right now while things are raw.

누구에게 이야기할지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정서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매우 친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한두 명의 친구와 공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일어난 일을 널리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Consider waiting a bit before reaching out directly to A and B again. Emotions seem high at the moment. A little time passing could make communication more productive.

조금 기다렸다가 A와 B (SNS 유포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은 감정이 격앙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의사소통이 더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In the meantime, try to redirect your energy to the positive - your research, supporters, learnings from this experience, and your future contributions. Dwelling excessively on the past misstep won't help. Look ahead.

그 동안에는 연구, 지지자, 이번 경험에서 얻은 교훈, 앞으로의 기여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에너지를 전환해 보세요. 과거의 실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앞을 내다보세요.
If depression continues, definitely seek some counseling. This is impacting your well-being and a professional can offer coping strategies.

우울증이 계속된다면 반드시 상담을 받으세요. 이는 여러분의 웰빙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전문가가 대처 전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With care, discretion and patience, you can get through this difficult situation. Don't hesitate to lean on your support system. You have a bright future ahead.

주의와 신중함, 인내심을 가지고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지원 시스템에 기대세요. 여러분 앞에는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대대적으로 "나 이런 일이 있었어! 너무 힘들어!!!"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믿을 수 없는 한두명에게만 이야기하라는 혜안 ㅎㅎ 지금 당장 유포자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논리가 꽤 그럴듯했다. 그리고 내가 프롬프트에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답변에 딱 내가 원하던 접근인 'delicately'라는 말이 있어서 놀랐다. 마지막으로, 내가 왜 이렇게 침잠하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고 있는 불쌍한 나의 배우자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았다. 



'나 너무 부끄러워서 남편에게 말도 못하겠어. 어쩌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Feeling unable to tell your spouse about a mistake due to embarrassment is understandable, but trying to deal with this alone can be very challenging. Here are some suggestions:

당황스러워서 배우자에게 실수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혼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음은 몇 가지 제안입니다:
Remember, your spouse loves and supports you. This mistake does not change that. Their role is to help carry your burdens too.

배우자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이번 실수로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배우자의 역할은 여러분의 짐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Start with acknowledging you're struggling with something work-related and could use their support. You don't need to share details right away. 

업무와 관련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당신이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당장 세부 사항을 공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If you do share details, frame this as a learning experience, not a character flaw. We all make mistakes. Emphasize what you'll do differently going forward.

세부 사항을 공유해야 하는 경우, 이를 성격적 결함이 아닌 학습 경험으로 이해하세요.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 것인지 강조하세요.
Request specific things your spouse can do to help - extra encouragement, doing an activity together to de-stress, etc. Be open about your needs.

추가적인 격려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활동 함께 하기 등 배우자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사항을 요청하세요. 자신의 필요를 솔직하게 표현하세요.
Schedule relaxation time together, without discussing the issue, to take breaks from ruminating.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함께 휴식 시간을 계획하여 과거를 곱씹는 일에서 벗어나세요.
Seek professional counseling to help work through feelings of shame. Therapists have great strategies.

수치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문 상담을 받습니다. 치료사들은 훌륭한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Lean on other loved ones like close friends or family members too. Diverse support helps.

친한 친구나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의지하세요. 다양한 지원이 도움이 됩니다.
Remember your spouse married you for you - not your perfect behavior. Trust in their unwavering love.

배우자는 당신의 완벽한 행동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결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배우자의 변함없는 사랑을 믿으세요.
With time and support this feeling will pass. But keeping it secret invariably makes dealing with it much harder. Have faith in your marriage and your ability to get through this together.

시간이 지나고 지지를 받으면 이런 감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비밀로 유지하면 대처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결혼 생활과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업무와 관련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당신이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같은 조언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배우자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내가 정신적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비슷한 이야기인데도,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나의 실패'에, 후자는 '배우자가 나에게 줄 수 있는 도움'에 초점을 맞춘다.



인공지능에서 이렇게 속 깊은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얼마 전 레딧의 ChatGPT포럼에서 ChatGPT가 대답을 거부하는 것이 짜증난다면서, 어떻게하면 therapist로 ChatGPT를 활용할 수 있는지 탈옥 팁을 주고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누구에게도 내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그런데 너무 자기파괴적으로 생각이 순환할 때, 인공지능이 '언제든' 내게 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은 강점이 있다. 

첫째, 인공지능이 나를 평가할 일이 없다. 설령 평가를 한다 하더라도 내가 상관하지 않는다. 글쎄, 언젠가 인공지능이 나의 친한 친구가 될 정도로 발전한다면. 인공지능의 judgmental한 발언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 날이 오게 될까? 최소한 지금의 나는 기계가 내게 갖는 의견에 관심이 없다.

둘째, 대체로 기밀이 유지된다. 특히 익명 앱일 경우. 다만, security가 완전하지는 않으므로 왠지 내 프롬프트를 향후 트레이닝에 활용해서 내 상황을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경우가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확률은 낮다. 인간 심리상담사를 고용한다면 당연히 직업상 의무에 따라 내 기밀을 유지해주겠지만, 친구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음. 반드시 비밀보장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 '언제나' 이용가능하다. 언제 내가 힘든 마음이 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와 합이 맞는 심리상담사를 찾으려면 꽤 오랜 탐색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그런' 심리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최소한 앱을 다운 받고 한 달이나 1회당 얼마 씩 결제를 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할 때는 이런 배리어가 전혀 없다. 그냥 채팅창만 열면 끝. 

넷째,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짜증내지 않는다. 내가 그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지 못했을 지라도. 그래서 멍청한 생각의 틀에 갇혀 계속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더라도 인공지능은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준다. 끊임없이 말해준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어릴 때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어르신들이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것이었는데, 인공지능 봇이 시니어들에게도 무료함을 덜고 인생의 재미를 찾는데, 아니면 더 나아가 자서전 같은 것을 집필하면서 '하고 또 하는 말들'을 유의미한 성과물로 만들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인간이 제일 고마워.


클로드에게서 격려를 받은 후, 용기내어 남편에게 나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남편은 놀라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남편도 공저자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네 논문의 전체적인 질을 떨어뜨릴 만큼 중대한 오류는 전혀 아니야. 난 당신이 더 성장하기 전에 '이런 실수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더 유명해진 다음에 실수를 하면 세상이 더 가혹할 테니까. 기죽지 마. 괜찮아.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네가 쓰고 싶은 글을 더 많이 써."


나의 착한 남동생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남동생은 낮에는 카페를 운영하고 밤에는 웹소설을 쓴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남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순간의 관심 거리로 누나를 이용하는 것 뿐이야. 누나 이름 기억 못하고 아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못해. 그냥 계속 누나는 누나 할 일을 하면 돼. 그러다보면 지나갈 거야. 누나는 지금 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누나를 따라올 것 같겠지만, 그 사람들 그렇게까지 이 일에 관심 없어. 이미 벌써 다른 먹잇감을 찾았을거야."


"하지만, 나는 인터넷의 익명 악플러가 아니라 저명한 학자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건데? 그리고 앞으로 이 일이 얼마나 커질지 모르는데?"


"그래. 당연히 엄청 무섭고 힘들 것 같아. 그래도 그렇게 저명한 분들이라면 젊은 학자들이 자신의 실수를 고칠 수 있게 알려줬었어야지, 그렇게 공개적으로 비웃을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쌓아오신 업적이 많다 하더라도, 그 욕구는 아마 악플러나 악의적인 인터넷 유저와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그냥 타인을 이용해 자기가 유명해지고 싶었던거지. 그 사람들에게 그 정도 관심사일 뿐이니까, 누나가 지금 그렇게 죽도록 후회하고 '내가 부족한 사람인가' 자기를 비판하고 미래를 무서워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왔다. 


인공지능의 엄청난 위력을 경험하고 나서 나는 요즘 Claude를 하루하루를 planning 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다. 일과를 짜는 일은 내게 꽤 귀찮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는데, Claude로 하여금 내게 질문을 하게 만들면 손쉽게 하루의 우선순위를 짤 수 있다. 이런 챗봇의 기능을 활용해 인간의 삶을 좀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이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급, 사업모델을 생각하고 있다. 만들면 내가 가장 먼저 이용하고 싶은 서비스. 그런 걸 한 번 내년에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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