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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ul 18. 2023

끝없는 거절. 논문이 리젝될 때.

어제도 오늘도 불합격 메일을 받는다. 

이제는 일상이다. 유형도 다양하다. 


내 페이퍼가 컨퍼런스에 떨어졌다고 하면서, 리뷰어들의 가열찬 비판 의견을 잔뜩 보내준다. 주제는 좋지만 컨퍼런스 취지와 맞지 않다, 방법론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다, 충분히 창의적이지 않다, 이 부분이 좀 더 강조되었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다, 오타가 많다, 등등. 


누군가가 내 페이퍼를 읽고 상세한 의견을 써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내 자식 같은 글이 대차게 까이는 것을 마음 편히 보기는 힘들다. 얼굴 모르는 리뷰어들이기에 말도 직설적으로 한다. 때로는 결국 끝끝내 다 읽지 못하기도 한다. 퍼블리케이션에 실패할 때 상처가 가장 크지만, 썸머 인턴십, 트래블 그랜트, 퍼블리케이션 그랜트에 떨어지기도 한다. 


많은 학자들이 리젝션을 극복하는 법에 대한 글을 썼다. 나도 그런 글을 읽으면서 긍정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교내 일자리를 결국 찾아냈던, 작은 성공의 기억들에 의존해서. 그래, 이렇게 문을 두드리다 보면 결국 볕들 날이 오겠지, 하고. 그치만 가끔씩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며칠 간 잠적하기도 한다. 






공원을 걸으며 오리를 바라본다. 

오늘도 벨뷰는 눈부시게 아름답네. 

오리들은 오늘도 사이가 좋네. 


햇빛 좋은 날 암수가 둥둥 떠다니며 오수를 즐긴다. 


이제는 아무리 기분 좋은 날 공원에 나가도 오리만 보면 슬프다. 

슬픈 눈으로 너무 자주 봤더니 

슬픔이 오리털 사이사이 배기고 말았다. 





가장 최근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은, 내가 고치고 고친 페이퍼가 장장 3번의 리젝션을 받았을 때였다. 정말 연구자로서의 내 능력에 의심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2022년에 데이터 수집이 마무리 된 연구이기에, 이제 더 이상 어디에도 안 내는 것이 맞는건지 헷갈린다. 


데드라인에 임박해서 드래프트를 고치고 또 고치느라 친구들에게 리뷰를 부탁하지 못했던 나. 다른 미국 학자들보다 내 연구를 매력적으로 framing하는 능력이 한참 뒤떨어지는 나. 이것도 부족한 나. 저것도 부족한 나. 과거의 내가 밉고 현재의 나를 못 견디겠고 미래의 내가 두렵다. 


이제 거절 메일 만큼 두려운 것은 동료들의 announcement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동료 두 명이 NSF (미국 과학재단) Fellowship을 받았다. 뒷 자리에 앉은 친구는 Google PhD Fellowship을 받았다. 그 친구들은 1-2년차인데 벌써 유수의 컨퍼런스에서 퍼블리시를 했다. 


나와 함께 공부하던 로스쿨 PhD 친구가 Columbia Law Review라는 명문 저널에 Distinguishing Privacy라는 멋진 글을 실었다. 나는 비록 단독저자로 하긴 했지만, 지난 번에 12위권에 드는 명문 저널에서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그 친구의 글을 읽어보니 잘 쓰긴 했는데, 내 글이 딱히 그보다 못한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 차이를 잘 모르겠는 내 자신이 또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친구는 몇 주 전, Privacy Law Scholar Conference라는 명문 행사에서 Junior Scholar Award도 받았다. 그 상을 받은 초고도 어딘가 좋은 곳에 퍼블리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시 공부를 하던 시절, 나를 지도해주시던 교수님께서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미워하는 것 만큼 쓸 데 없는 것이 없다고 했다. 복권 명당이 있듯이, 면학 분위기가 좋은 고시반에서 합격생이 많이 나오는 것이고. 옆 자리 학생이 합격하면 내 합격률도 덩달아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신주단지처럼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학생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내가 거절 당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동안 모두 저만치 웃는 얼굴로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에 왠지 잘될 것이라 생각했던, 생성 AI의 인격권 침해로 인한 배상책임 분석에 대한 논문이 USENIX Security라는 컨퍼런스에서 떨어졌다. 내가 상심을 하니, 컴퓨터 사이언스 학과의 지도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학제 간 연구라는 것이 원래 어려운 거야.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이게 왜 중요한지 계속 알려주어야 하잖아. 우리는 물에 계속 돌을 던지고, 물은 돌을 그냥 삼켜버리겠지만, 계속 돌을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큰 빙산처럼 될거야. 물 밖에 나와있는 조그만 꼭대기를 보고 사람들은 "와, 이런 분야가 있었어, 너 정말 대단하다, 나도 알려줘! 듣고 싶어!"라며 박수를 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난 생각해. 그 때 사람들은 꼭대기만 보겠지만, 그 밑에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잘 모르겠지. 오늘은 그 날 중 하루일 뿐 인거야."


계속 돌을 던지다보면. 언젠가는. 

 




여전히 거절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오리를 보며 슬퍼하고 있지만, 

신주단지로 삼을 말이 하나 더 늘었노라 생각하며,

이 과정을 나 홀로 걷고 있지 않다는 것에 감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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