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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ul 18. 2023

OpenAI의 연구프로젝트를 따다


거절을 당할 때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비슷한 조언을 해준다. 


1) "시도한 것만으로 멋지다! 계속 시도해야만 무엇이든 얻게 되는거야!" 

2) "그 덕분에 너는 first draft를 완성하는 쾌거를 거두지 않았니!"

3)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너는 너대로 훌륭해." 

4) "언젠가 너의 가치를 봐주는 사람들이 나타날거야. 분명히!" 


전부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마음이 무너질 때는 와닿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무너짐을 숱하게 겪는 동안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말은 딱 두 가지다.



"거절이 그렇게 슬픈 이유는 그것을 네가 그만큼 원했기 때문이야." 


순환론처럼 들리는 이 말이 나에게는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누가 나에게 해준 말이 아니라, 슬픔으로 가득차 있던 그 날 고요히 내 안에서 떠오른 단어들이다. 


"언젠가 잘 될거야."라는 희망 섞인 기대는 "나 따위를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야!!"라는 자존감 바닥 상태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나면, 주변 사람들의 위로 섞인 칭찬은 "그래, 너희는 나의 친구들이니까..."라면서 싸잡아서 튕겨낸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던 법이라. 더 이상 기대를 품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가 원하기 때문에 슬픈 것이라는 진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같은 데카르트의 말처럼, 

슬픔의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보면 그 깊은 곳에는 나의 욕망이 있다. 독자들에게 닿고자 하는 내 욕망. 나의 깨달음을 남과 나누고 싶은 욕망. 틀렸다고 욕 먹는 것은 무섭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것을 알리고픈 나의 욕망. 그 욕망은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지만, 한편 언어 장벽을 이겨내려고 30대 후반에 이를 악물고 글을 쓰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다. 


아, 그렇구나. Privacy Law Scholars Conference에서 상을 받은 친구가 부러운 이유는, 내가 그런 상을 받고 싶기 때문이구나. 퍼블리케이션을 못했을 때 크게 상처 받는 이유는 내 글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랐기 때문이구나.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슬퍼할 만큼,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을 바라고 있구나.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잘 가고 있나 보다. 그러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보다 나는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짓이 오롯이 '사서 하는 고생'이라는 자각을 하고 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나'하는 억울함도 살포시 잦아든다. 내가 원했던 일이니, 그것을 이루려면 이제 무엇을 하면 될까,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쪽으로 마음이 정리된다. "왜 내가 이 컨퍼런스의 좋은 핏이 아니었을까"라는 과거지향적 생각에서 "나는 넓은 독자층을 만나고 싶다. 그러려면 어디로 가야하지?" 같은 식의 생산적인 사고로 한발짝 다가설 수 있다. 



"하늘은 우리 모두를 품어줄 만큼 넓어(The sky is big enough to accommodate all of us)." 


트위터 댓글에서 우연히 본 이 말이 내 마음 한 켠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이 말에는 희망이 섞여있지만, 진실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붙잡고 저 말에 동의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 보다는 "네"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그래, 세상은 공정하지 않지만. 가끔은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도 정말 힘든 삶을 살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하늘은 넓고 기회는 많다. 


이 말을 스스로 되뇌이다보면, 내 시선을 "부족한 나"에서 "넓은 하늘"로 돌릴 수 있다. 그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의 쓰임이 있을 것이다. 나의 장점을 살려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나의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했지만, 하늘 저 먼 곳에 어딘가 내 자리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최대한 즐기면서 편안하게 유영하듯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이 두 말에 기대어서 오늘도 아픔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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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가끔은, 자랑할 만한 일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참여한 연구팀이 OpenAI의 Democratic Inputs to AI라는 연구 프로젝트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해서 연구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제출된 수많은 지원서 중 단 10팀을 뽑는 것인데, 우리가 포함되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 


OpenAI에서 이메일 받는 날도 오는구나...



난 두 개의 컴퓨터사이언스 팀과 함께 프로포절을 제출했는데, 한 팀은 떨어지고 한 팀은 붙었다. 붙은 팀은 내가 연구 기획안에 깊게 관여를 했던 팀이었다. 제출을 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다른 팀에 비해 연구자들의 경력이 훨씬 떨어지는 편이어서 사실 가망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합격해서 정말 놀랐다. 이러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구나... 


연구 기획 단계에서 너무 관여를 해버린 탓에 아마 계속 많은 짐을 지고 가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괜찮겠지...? 





이전 21화 끝없는 거절. 논문이 리젝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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