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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Mar 24. 2016

북경에서 맞는 첫 봄

동물원 갔다가 사람 구경하고 왔지요.

순서로는 한참 뒤이지만, 봄소식 먼저 전합니다.

   

     며칠 동안 최악의 황사니 하며 하늘이 뿌옇더니 지난 주말은 모처럼 맑은 하늘에 바람도 강하지 않고 날씨도 좋아 사람이며 강아지며, 동네의 모든 동물들이 모두 밖으로 뛰어나온 것 같았다. 우리도 마찬가지. 좋은 날씨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찾아간 곳이 북경 동물원. 아이들도 다 큰 이 마당에 웬 동물원이냐 싶겠지만, 중국에 왔으니 판다를 봐야 된다는 굳은 신념이 우리 가족을 동물원으로 이끌었다. 반단합을 한다고 밤을 새우고 돌아온 시은이는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반 실신 상태가 되어버렸기에 혼자 남겨 두고 세 식구가 버스를 갈아타고 북경 동물원 입구에 도착했는데 예상대로 동물원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부분 꼬맹이들 손을 잡고 놀러 온 엄마,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들이었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으나 동물원 자체가 워낙 넓어서 사람에 치인다는 느낌은 별로 없이 쾌적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우선 우리의 목표인 판다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호랑이를 보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으로 갔더니 역시 판다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판다란 놈들이 이렇게 널브러져만 있다. 흑흑흑... 너무나 오래 가지고 놀아 싫증 나서 쓰레기통에 버린 때 탄 인형처럼. 가끔 숨을 쉬는 걸로 살아 있음을 짐작할 뿐,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밖의 우리에 먹이를 먹고 있는 판다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고개를 돌리고 앉아서는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판다를 보겠다는 우리의 의지는 '아, 중국 동물원에는 판다가 한 두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 많이 있구나.' 정도 확인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판다뿐 만이 아니라 호랑이, 사자, 코끼리, 사막여우, 늑대까지 기본적으로 웬만한 동물들은 다 자거나 깨어있다 하더라도 고개를 돌리고 사람들 쪽은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특히나 좁은 우리에 갇혀 있는 코끼리는 계속 똑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이상행동 같은 것을 보이고 있었고.

      아, 우리가 우리 좋자고 얼마나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매일 와서 쳐다보고 소리 질러 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싫었으면 저렇게 고개를 돌리고 눈길 한 번 보내지 않는 것인가? 가은이와 함께 동물원은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동물학대의 결과물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눈길을 돌렸다.


     씁쓸하기 했지만 북경의 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보던 봄보다는 색이 약간 바랜 듯한 봄빛이긴 하지만 여기도 꽃이 피고 새싹이 움트고 여기저기 봄의 빛깔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 구경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꼬맹이가 있는 집은 에버랜드를 연례행사처럼 다녀오듯 여기도 중국 웬만한 지역에서 주말을 맞아 서울에 있는 동물원에 큰 맘먹고 모인 사람들일 것이다. 다양한 중국사람들이 주말을 가족들과 보내는 모습,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아이들 목마 태우고, 손에는 구입한 장난감,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솜사탕까지. 한참 걷다 보니 잔디 밭에 앉거나 누워서 자유롭게 쉬는 모습은 옛날 우리 어렸을 적 어린이대공원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겨웠다.

     

     판다를 보겠다고 야심 차게 시작한 동물원 나들이. 그리 유쾌한 기억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북경의 첫 봄을 느낄 수 있었음에 만족하며 동물들도 봄에는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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