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일상적 욕망과 권태를 파고드는, 정교하고 서늘한 심리 호러
당근마켓 알림음은 그녀의 권태로운 오후를 자르는 소리였지만,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빌어 세상으로 스며 나오는 신호이기도 했다. 햇살은 거실 창을 가르고 들어와 먼지 앉은 칼라데아 잎과 소파 위 흩어진 쿠션들을 희미하게 조각냈다. 민지는 습관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했다. ‘Eun-hye's Atelier’라는 서명이 새겨진 빈티지 인형이었다. 희미한 장미빛을 간직한 낡은 치마,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인형의 눈이었다. 호박처럼 깊고 흐릿했지만, 그 안에는 오래도록 말라붙은 눈물 자국처럼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1만 5천 원.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마치 오래된 약속에 응답하듯.
오후 세 시, 배달 기사 아저씨가 인형을 건네며 “예쁜 인형이네요.”라고 짧게 말했다.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인형을 품에 안자 미묘한 떨림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물속에 잠긴 오래된 사진처럼, 희미하게 색이 번져나가는 듯했다. 그녀는 인형을 거실 한켠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시든 칼라데아 옆, 그 자리였다. 칼라데아는 몇 주 전부터 조금씩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햇빛을 향해 몸을 돌리던 잎사귀는 이제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그녀의 공감 능력처럼, 조금씩 마모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내일 아침엔 남편이 잔소리 좀 줄였으면…” 민지는 무심코 혼잣말을 던졌다. 상훈은 늘 아침 식탁에서 그녀의 옷차림부터 하루 일과까지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그 잔소리는 때로는 사랑의 표현이었지만, 대부분은 그녀를 투명한 막으로 가두는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민지는 인형의 낡은 눈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처럼 검고 깊은 눈동자는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다. 그 안에는 시간의 먼지가 쌓여 있었고, 희미하게 떨리는 슬픔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거울처럼, 그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상훈은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다. 그의 입술은 조용했고, 잔소리는 없었다. 평소 같으면 “오늘 옷차림이 좀 칙칙하네.” 혹은 “아침부터 뭘 그렇게 느긋하게 먹고 있어?”라고 했을 텐데, 그는 침묵했다. 이상했다. 너무나 이상했다. 침묵은 때로는 은혜였지만, 오늘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민지는 그의 침묵 속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마치 커다란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파도는 곧 그녀를 덮칠 것 같았다.
그녀는 출근하는 상훈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때 유망한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결혼과 육아를 위해 꿈을 접었다. 화려했던 스튜디오는 어느덧 먼 과거의 기억이 되었고, 그녀는 이제 평범한 주부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친구 수진과의 끊임없는 비교도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수진은 여전히 완벽한 몸매와 세련된 스타일을 유지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다. 민지는 종종 수진에게 질투심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은근히 경쟁심을 느끼곤 했다. 수진은 마치 잘 다듬어진 조각상 같았고, 자신은 조금씩 부스러져가는 도자기 조각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대 위의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낡았지만 어딘가 매력적인 인형의 눈은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했다. ‘혹시 이 인형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걸까?’ 민지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원을 떠올렸다.“내일 수진이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카프를 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녀는 은근히 수진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스카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수진에게 인정받고 싶은 갈망, 그리고 자신이 아직 아름다운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다음 날, 수진은 민지가 가장 아끼는 실크 스카프를 목에 매고 나타났다.. 그녀의 미소는 마치 ‘어느새 내 취향까지 따라 하게 되었네?’라고 말하는 듯했다.. 약간의 빈정이 담긴 미소였다.. 하지만 민지는 그 미소를 그냥 지나쳤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 오히려 수진에게 감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역시 수진이는 뭘 입어도 예쁘네.’ 그녀는 점점 더 인형에게 의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듯이 말이다..
그녀의 욕망은 밤하늘에 피어난 검은 꽃처럼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삶을 되찾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며,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인형의 낡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민지는 속삭였다.“나도… 나도 빛나고 싶어.” 그리고 그 순간, 인형의 눈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위로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욕망의 시작이었을까?
당근마켓 알림음은 그녀의 권태로운 오후를 가르는 칼날이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빌려 세상으로 스며드는 신호였다. 그 후로 민지의 삶은 완벽하게 맞추어진 저울에 아주 작은 납덩어리를 올려놓은 것처럼 미묘하게 기울어졌다. 흔들림은 있었지만, 아직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번져나가듯, 그녀의 일상은 미세하게 변색되고 있었다.
처음엔 사소한 것부터였다. 동네 엄마들의 뒷담화 시간, 민지는 평소처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김여사의 새 며느리에 대한 험담이 시작되자 민지는 무심코 “저 며느라미는 겨울 햇살 아래 놓인 얼음 조각처럼 표정이 딱딱하네.”라고 툭 던졌다. 평소라면 ‘조금 심했네’ 정도였겠지만, 김여사는 얼굴이 붉어지며 뒷담화를 주도하던 자리를 피했고, 민지는 오래된 먼지가 털려 나가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마치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탄산처럼, 작은 승쾌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날 저녁, 민지는 인형을 거실 소파에 앉히고 차를 마셨다. 인형의 낡은 눈은 희미하게 빛나는 검은 호수 같았다. “내일 아침엔 남편이 잔소리 좀 줄었으면…” 민지는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상훈은 아침마다 습관처럼 그녀의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저녁 메뉴까지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다음 날 아침, 상훈은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었다. 침묵이었다. 그의 입술은 잔소리를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민지는 토스트를 굽던 손을 잠시 멈췄다. 세상의 소리가 조금 줄어든 듯했고, 그녀의 심장은 미묘하게 떨려왔다.
다음 날 수진과의 만남에서, 민지는 또 다른 작은 거래를 했다. 수진은 최근 새로 산 명품 가방을 자랑하며 “이 가방 덕분에 자신감이 확 올라갔어!”라고 활짝 웃었다. 민지는 무심코 “색깔은 예쁜데, 어딘가 좀 촌스럽지 않아?”라고 말했고, 수진의 얼굴에서 살짝 미소가 사라졌다. 다음 날, 수진은 중요한 미팅에서 가방에 커피를 쏟아 망신을 당했다. 수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가방을 감싸 안았고, 민지는 미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작은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집 안에는 작은 변화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민지가 아끼던 다육식물이 조금씩 시들었다. 처음엔 물을 잘 못 준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식물은 점점 더 축 늘어졌다. 잎맥이 검푸른 실처럼 가늘어지고, 마지막 힘을 짜내듯 땅을 향해 몸을 숙였다. 마치 생기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민지는 인형에게 소원을 빌 때마다 은혜롭게 미소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형의 낡은 눈동자 속에는 욕망과 만족감, 그리고 아주 작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 그녀 자신의 슬픔과 닮아 있었다.
민지는 이제 인형에게 ‘사소하고 못된 생각’을 적극적으로 투영하기 시작했다. 이웃집 강아지가 너무 시끄럽다거나, 동네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너무 까칠하다거나… 작은 불만들이 인형의 귀에 속삭여졌고, 놀랍게도 대부분 현실로 이루어졌다. 강아지는 갑자기 목청을 잃었고,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뜻밖의 사고로 한동안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녀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상을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사가 된 기분이었다.
“혹시 이 인형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걸까?” 민지는 인형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인형의 낡은 눈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욕망은 밤하늘에 피어난 검은 꽃처럼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삶을 되찾는 것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며,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그녀는 과거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깨달았다 – 그때 그녀가 빛났던 것은 단순히 디자인 감각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도전하는 열정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열정이었다.. 인형의 낡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민지는 속삭였다.“나도… 나도 빛나고 싶어.” 그리고 그 순간, 인형의 눈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위로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욕망의 시작이었을까? 빛줄기는 마치 오래된 사진 속에서 흘러나온 향수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민지의 욕망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그녀는 단순히 남편의 잔소리를 줄이는 것을 넘어 그의 성공까지 잠식하고 싶었다.. 그녀는 단순히 수진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을 넘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싶었다.. 인형에게 소원을 빌 때마다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인간성을 잃어갔지만, 동시에 더욱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육식물은 완전히 말라 죽었고, 집 안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느 날 밤, 민지는 인형에게 속삭였다.“나는 왜 이렇게 빛나고 싶은 걸까?” 인형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심연처럼 그녀를 응시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혹은 오래된 연인처럼.. 그리고 그 순간 민지는 깨달았다 – 그녀가 빛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불안함을 잠재우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고 싶었고, 그 벽 너머에 있는 자유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싶었다..
“이제부터 진짜 거래가 시작되는 건가?” 민지는 인형에게 물었다.. 인형의 낡은 눈동자 속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지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 앞으로 더 많은 사소한 거래들이 이어질 것이고, 그 거래들은 결국 그녀를 어디로 이끌지 모른다는 것을…
당근마켓 알림음은 오후의 권태를 깨우는 단순한 신호가 아니었다.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빌어 세상으로 스며 나오는, 기묘한 촉수였다. 이제 그 촉수는 소원을 넘어 민지의 삶에 미묘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남편 상훈의 승진 경쟁이 시작되면서, 그녀는 인형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욕망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인형의 낡은 눈은 마치 바싹 마른 호수의 침전물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욕망을 담고 있었다.
상훈의 경쟁자는 김민준이었다. 젊고 야심만만한 그는 상훈보다 훨씬 역동적이었고, 임원들의 눈에 쉽게 띄는 스타일이었다. 민지는 김민준을 볼 때마다 은근한 질투심과 함께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저 자식, 웃음이 꼭 굶주린 하이에나 같아.” 식탁에서 투덜거리는 상훈에게 민지는 무심하게 말했다. “내일 프레젠테이션 때 김민준이 좀 실수했으면 좋겠다.” 그 말을 던질 때, 그녀의 시선은 인형의 낡은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인형이 묵인하며, 희미하게 ‘좋아요’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상훈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옷을 차려입었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로 긴장한 듯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민지는 그를 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평소 같으면 잔소리를 퍼붓던 상훈은 오늘은 침묵했다. 마치 입 안에서 혀가 마비된 것처럼,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 침묵은 민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평소엔 잔소리라도 해줬는데…'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낡은 인형의 눈은 창밖의 회색 하늘을 고요히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운명의 장난처럼 무심한 듯했다.
프레젠테이션 당일, 김민준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김민준이 중요한 통계 자료를 설명하던 중, 갑자기 수치가 엉망으로 꼬여버린 것이다. 김민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순간, 민지는 희열과 함께 미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김민준의 뇌 속에 작은 바늘을 꽂아 넣은 듯했다. 희열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민지의 심장을 관통했고, 죄책감은 미세한 균열처럼 그녀의 자존감을 흔들었다.
인형은 욕망이 커질수록 점점 더 낡고 기괴하게 변해갔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느껴졌던 주름들이 깊어지고,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인형의 옷 색깔도 점차 바래져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빛바랜 느낌을 주었다. 집안 곳곳에는 시드는 화초들이 놓여 있었지만, 다육식물들은 어느새 통통하게 살이 오르며 욕망의 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육식물의 푸짐함은 민지의 욕망에 비례하여 점점 커져갔다.. 수진과의 관계 또한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상훈은 승진했지만 이전보다 냉소적으로 변했고, 친구 수진은 민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요즘 당신, 웃음이 어딘가 어색해졌어요." 상훈의 말에 민지는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수진 역시 민지가 이전보다 계산적으로 변했다고 느꼈는지, 대화할 때마다 은근히 비꼬는 듯한 말투를 사용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민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과거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시절에는 좀 더 따뜻하고 배려심 넘쳤던 자신이었는데… 지금은 욕망에 눈멀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이전보다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다.. 특히 눈동자 속에는 욕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탐욕스러운 맹수의 눈빛 같았다..
어느 날 저녁, 민지는 인형을 끌어안고 혼잣말을 했다.. “혹시 이 인형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걸까? 아니면 내 욕망을 먹고 자라는 괴물일까?” 인형의 낡은 눈동자는 여전히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했다.. 석탄처럼 검어진 동공 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빛줄기는, 오랜 관조와 침묵의 흔적이었다.. 혹은 민지의 욕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기도 했다..
그날 밤, 민지는 잠자리에 들기 전 문득 과거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밤새워 디자인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생기 넘쳤던 자신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질투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때가 더 행복했던 걸까?” 민지는 잠에 빠져들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꿈속에는 낡은 인형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꿈속에서 인형의 눈동자는 점점 커져서 민지의 온 세상을 삼켜버릴 듯했다… 꿈속에서 그녀는 작은 소녀로 돌아가 인형에게 매달려 울부짖었다… "돌려줘… 내 행복을…" 그러나 인형의 눈동자는 여전히 고요히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꿈속에서 시든 화초들은 활짝 피어났지만 꽃잎 색깔은 검붉었다... 다육식물들은 더욱 통통하게 살이 올랐지만 만지면 차가웠다...
당근마켓 알림음은 권태로운 오후를 갈랐을 뿐 아니라,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빌어 세상으로 기어 나오는 신호였다. 민지는 인형의 출처를 쫓기로 결심했다. 마치 고고학자가 먼지 덮인 유물을 발굴하듯, 그녀는 판매자의 프로필을 샅샅이 뒤졌다. ‘별빛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그녀는 평범한 주부 같았지만, 프로필 사진 속 그녀의 눈빛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사진 속 빛바랜 미소처럼, 어딘가 모르게 위태로웠다.
별빛맘을 통해 ‘Eun-hye's Atelier’라는 이름의 빈티지 인형 제작자를 알게 되었다. 온라인 빈티지 인형 커뮤니티는 ‘Eun-hye's Atelier’ 인형들의 사진으로 북적였다. 섬세한 바느질과 독특한 분위기를 칭찬하는 글들이 많았지만, 묘한 기운을 느꼈다는 의견도 있었다. “묘하게 주인의 감정을 빨아들이는 느낌이에요.” 한 회원은 댓글을 남겼다. “특히 질투심이나 원한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요.” 민지는 그 댓글에 시선을 멈췄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듯했다.
인형 수집가 박선영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동네 카페에서 인형을 들고 앉아 있던 민지를 박선영이 알아보고 말을 걸어온 것이다. 박선영은 빈티지 인형들을 수집하며 연구하는 전문 수집가였다. “그 인형, Eun-hye's Atelier 작품이죠? 정말 아름답네요.” 박선영은 민지의 인형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Eun-hye's Atelier 인형들은 주인의 가장 강한 감정을 반영한다고 해요. 특히 낡은 눈은, 잃어버린 공감 능력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죠.” 박선영의 말은 민지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인형의 낡은 눈은 마치 오래된 거울처럼, 민지의 메마른 마음을 비추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었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무관심인지…
친구 수진과의 관계는 점점 더 미묘해졌다. 수진은 민지의 성공을 질투하면서도 은근히 비꼬기 시작했다. “요즘 옷 센스가 아주 좋더라? 혹시 남편 덕분인가?” 수진의 말에는 잔잔한 독이 스며있었다. 민지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무거웠다. 마치 수진의 질투심이 인형을 통해 자신에게 전염된 듯했다. 수진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고양이처럼, 민지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그녀의 질투는 꽃잎 위에 맺힌 이슬처럼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 상훈과의 거리감 또한 점점 커져갔다. 승진 후 회사일에 더욱 몰두한 상훈은 민지에게 건네는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요즘 당신, 웃음이 어딘가 어색해졌어요.” 상훈의 말에 민지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상훈은 자신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이…?” 애써 웃으며 물었지만, 상훈의 시선은 차가웠다.. 좀 더 다가가려 할 때마다 상훈은 은근히 멀어졌다.. 그의 온기는 희미하게 타들어가는 양초처럼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녀의 눈 속 깊숙한 곳까지 보지는 못하는 듯했다..
저녁 식사 시간, 거실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식탁 위에 놓인 시든 장미는 화려하게 피어났지만, 꽃잎 끝은 어딘가 모르게 시들어 보였다.. 장미 향기는 달콤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쓰라렸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이 장미처럼 아름다운 욕망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욕망의 색채를 잃고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장미처럼… 장미의 가시는 예리하게 빛나며 그녀의 손을 스쳤다.. 침묵 속에서 떨어지는 작은 꽃가루들은 유유히 떠다녔다.. 낡은 인형의 눈동자는 그녀를 향해 은밀하게 미소짓는 듯했다.. 그 미소는 위안이었을까, 아니면 조롱이었을까?
민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에는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각자의 욕망과 고독을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눈빛 또한 인형의 낡은 눈처럼, 무언가를 갈망하고 또 잃어버린 듯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다.. 욕망과 질투, 사랑과 소외… 그리고 낡은 인형의 눈동자에 담긴 오래된 원한까지도… 그녀는 자신 안에도 별빛맘의 불안정한 눈빛과 수진의 질투 어린 눈빛, 그리고 상훈의 서늘한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란 결국 욕망과 상실 사이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존재일 뿐이었다.. 인형의 낡은 눈동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조용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당근마켓 알림음이 울린 건, 그녀의 권태로운 오후를 깨우는 소리만이 아니라,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통해 세상으로 기어 나오는 신호였다. 수진의 편집샵 오픈 소식이었다. 완벽하게 큐레이팅 된 사진 속 수진은 마치 햇살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민지는 무심코 스크롤을 내렸지만, 가슴 한 구석에 날카로운 송곳이 박히는 듯했다. 수진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의 성공은 늘 민지의 은근한 질투심을 자극했다. 그 질투는 이제 오래된 포도주처럼 깊고 쌉쌀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저 화려한 꽃다발 좀 봐. 어쩜 저렇게 티 없이 완벽할까.”
민지는 인형 ‘은혜’에게 중얼거렸다. 은혜는 침묵했지만, 그녀의 낡은 눈동자는 마치 수진을 향한 민지의 질투심을 빨아들이는 검은 싱크홀 같았다. 그날 밤, 민지는 잠자리에 들기 전 은혜에게 속삭였다. “내일, 수진 언니네 가게에 손님들이 썰렁했으면 좋겠어. 그냥… 조금만. 꽃이 너무 화려하면 벌레도 몰려드니까.”
다음 날 아침, 민지는 수진의 편집샵 ‘라 벨 에포크’로 향했다. 예감대로 가게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몇몇 손님들은 둘러보기만 하고 발길을 돌렸고, 수진은 어딘가 초조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민지는 수진에게 밝게 인사하며 옷을 몇 벌 골랐다.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다는 핑계로 수진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은근히 그녀의 상황을 떠봤다. 수진의 미소는 점점 얇아졌고, 그녀의 목소리는 햇살 아래 피어난 야생화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오픈하고 반응이 괜찮아?”
수진은 잠시 머뭇거리며 답했다. “네, 뭐… 생각보다 조금 조용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반응이 있어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마치 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위태로웠다. 민지는 은혜에게 작은 미소를 보냈다. 은혜의 낡은 눈동자는 만족스러운 듯 반짝였다.
오후, 수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상보다 큰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새로 들여온 빈티지 드레스 컬렉션 중 상당수가 모조품이었던 것. 수진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울먹였다. “민지야… 정말 망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의 목소리는 부서지는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웠다.
민지는 수진을 위로하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희열과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마치 잘 익은 질투의 꽃처럼, 그녀의 마음을 아름답지만 날카롭게 채색했다. 꽃잎은 탐스럽게 붉었지만, 가시에는 독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독은 서서히 그녀의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전보다 얼굴이 조금 더 날카로워지고 차가워진 것 같았다. 마치 은혜의 낡은 눈처럼, 그녀의 눈빛에도 미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는 점점 짙어져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먹구름 같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과거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시절, 민지는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는 디자이너였다..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점점 더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은혜라는 작은 인형이 가져온 변화였다.. 은혜는 민지의 욕망을 흡수하고, 그녀를 점점 더 냉혹하게 만들었다..
집에 들어서자 시든 화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다육식물 몇 개가 시들했지만, 이제는 장미까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장미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민지는 시든 장미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내 안의 아름다움도 이렇게 시들어가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시들게 하는 데 집중하느라 자신의 아름다움은 뒷전으로 밀려난 걸까?
그날 밤, 남편 상훈은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다.. 그는 침묵하며 저녁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이전처럼 민지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와의 관계가 이미 희미해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민지는 문득 인형 은혜를 떠올렸다.. 은혜는 늘 조용히 그녀의 욕망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녀는 조금씩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정말 괴물이 되어가고 있구나." 민지는 조용히 속삭였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이전보다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다... 낡은 인형의 눈동자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조용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 안에는 희열과 죄책감, 그리고 희미해져 가는 인간성이 뒤섞여 있었다...
상훈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무관심함은 민지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는 예전처럼 그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주지도, 위로를 해주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방 안에 있는 가구처럼 느껴졌다... 민지는 상훈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어땠어?” 상훈은 짧게 대답했다… “그럭저럭.” 그의 대답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민지는 갑자기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은혜에게 더욱 의존하고 싶었다… 은혜에게만 자신의 모든 감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를 품에 안았다… "이제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민지는 은혜에게 속삭였다… "너만이 나의 진정한 친구야…" 낡은 인형의 눈동자는 마치 승리의 미소를 짓는 듯 반짝였다... 그리고 그 순간 민지는 깨달았다… 자신이 조금씩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 괴물은 아름다운 질투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지만, 그 뿌리는 깊고 어두웠다…
당근마켓 알림음이 울린 건, 그녀의 권태로운 오후를 깨우는 소리만이 아니라,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통해 세상으로 기어 나오는 신호였다. 은혜를 품에 안은 민지는 그 신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은혜의 눈은 더 이상 단순한 슬픔만 담고 있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칼날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검은 동공은 맛있게 욕망을 음미하고 있었다.
민지는 제작자 ‘은혜’가 누구였는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옷을 만들던 재봉사일까? 아니면, 그녀의 삶에도 민지처럼 잊혀진 꿈과 꺾인 열정이 있었던 걸까? 은혜의 이름은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아른거렸다. 수소문 끝에 민지는 은혜가 한때 유망한 디자이너였지만, 디자인 스튜디오 동료였던 박선영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모든 것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박선영은 지금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나는 유명 디자이너였다. 은혜는 마지막까지 박선영에게 원망하며 죽었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파고들수록, 은혜의 원한은 아이디어 도둑질 이상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은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 했던 예술가였지만, 당시 디자인 시장은 기성 디자이너들의 영향력이 강력했고, 혁신적인 시도보다는 안전한 디자인이 선호되었다. 박선영은 그런 시장 트렌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였고, 은혜의 아이디어를 흡수하여 더욱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날 밤, 민지는 잠자리에 들면서도 은혜의 얼굴을 떠올렸다. 은혜의 원한은 마치 덩굴처럼 그녀의 마음을 휘감았다. 다음 날 아침, 거실 창가에 놓인 화분 속 난초가 시들어 있었다. 난초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제 민지에게 난초는 단순한 성공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은혜가 빼앗긴 디자인 아이디어의 아름다움이자, 그녀가 꿈꿨던 완벽한 창작물의 형상이었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망설여졌다. 은혜에게 소원을 빌 때마다, 그녀의 불안감과 욕심이 난초처럼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
남편 상훈과의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다. 승진 후 그는 회사 일에 더욱 몰두했고, 민지에게 던지는 말들은 점점 더 간결해졌다. 상훈은 감정의 윤곽조차 희미해진 채, 마치 정교하게 조립된 기계처럼 움직였다. “밥 먹어.” “잘 다녀와.” 그의 목소리는 감정 없는 선언과 같았다. 민지는 은혜에게 상훈이 박선영에게 좀 더 냉담하게 대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박선영은 상훈의 회사와 협업하는 디자이너였다. 다음 날, 상훈은 박선영과의 회의에서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박선영은 평소처럼 능글맞게 대답했지만,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회사 내에서 경쟁사와의 계약 건으로 박선영과 상훈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친구 수진과의 관계 역시 서먹해졌다. 수진은 민지의 성공을 질투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민지의 변화를 감지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려워졌다. 민지는 수진에게 자꾸만 묘한 경쟁심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예쁘고 세련된 옷을 입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은혜에게 수진의 사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소원을 빌었다. 수진이 새롭게 오픈한 편집샵이 경쟁 업체 때문에 위기에 처하길 바랐다. 수진과의 경쟁심은 단순히 물질적인 성공을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다.. 민지는 수진보다 더 ‘세련된’ 삶을 살고 싶었고, 그녀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수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편집샵 계약 과정에서 큰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수진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지는 수진을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잘 됐다'라고 생각했다. 죄책감과 함께 희열이 밀려왔다.. 그녀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괴물은 아름다운 질투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지만, 그 뿌리는 깊고 어두웠다..
거울 앞에 선 민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전보다 차갑고 날카로워진 얼굴,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 그녀는 이제 자신이 원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좀 더 따뜻하고 배려심 넘쳤는데… 이제 그녀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과 같았다.. 낡은 인형 은혜의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 무게는 단순한 슬픔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원한이자, 인간성의 퇴색이었다… 그리고 그 원한은 이제 그녀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다…
민지는 거울 속 자신과 은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거울 속 자신의 눈동자에 은혜와 똑같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원한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듯했다.. 그녀는 이제 단순히 은혜의 원한을 이어받은 존재가 아니라, 그 원한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존재였다.. 그녀 안에는 슬픔과 질투, 분노와 좌절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은 하나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 파트에서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당근마켓 알림음은 그녀의 권태로운 오후를 가르는 칼날 같았다. 단순한 쇼핑 기회를 알리는 소리만이 아니었다.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빌려 세상으로 스며 나오는 신호였다. 알림음은 이제 은혜의 한숨 소리처럼, 미묘하게 쇠락한 영혼의 울림처럼 들렸다. 민지는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손가락 끝으로 인형의 차가운 뺨을 쓸었다. 인형의 눈은 망막에 박힌 사진처럼, 욕망의 잔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욕망은 종종 독사의 껍질처럼, 번들거리는 아름다움 속에 날카로운 이빨을 숨긴다.
최근 상훈과의 대화는 형식적인 인사말 정도에 머물렀다. 그의 말은 늘 회사의 보고서처럼 건조했고, 그녀의 이야기는 그의 잔잔한 배경음악처럼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어제 저녁, 김민준과의 승진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상훈은 희미하게 미소지었지만, 그 미소는 잘 포장된 선물 안에 들어있는 작은 돌멩이 같았다. 민지는 그 돌멩이를 꺼내 만져보았지만, 딱히 특별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안에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무뎌져 가는 듯했다. 마치 오래된 칼날이 반복되는 연마 끝에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것처럼.
수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수진은 민지가 성공할수록 점점 더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마치 민지가 자신보다 조금 더 빠르게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처럼 대했다. 얼마 전, 수진은 민지의 새로운 옷차림을 보며 “요즘 뭘 좀 아는 것 같네”라고 칭찬했지만, 그 칭찬에는 미묘한 빈정이 숨겨져 있었다. 마치 잘 익은 사과에 벌레가 숨어있는 것처럼, 달콤함 속에 약간의 독이 섞여 있었다. 민지는 수진의 빈정을 알아차렸지만, 굳이 따져 묻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수진의 진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었고,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이었다 –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거실 화분 선반에는 시든 다육식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처음엔 작은 다육식물 몇 개만 시들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식물이 생기를 잃었다. 다육식물들은 민지의 소소한 욕망을 상징했다. 남편의 잔소리를 줄이고 싶다는 욕망, 동네 엄마들의 뒷담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약간 더 예쁜 옷을 입고 싶다는 욕망… 그 모든 욕망들은 인형에게 조금씩 먹혀들어갔고, 결국 다육식물들은 말라 비틀어져갔다. 마치 그녀의 공감 능력이 조금씩 증발하는 것처럼, 뿌리부터 말라가는 나무처럼 고독해졌다.. 다육식물 주변에는 희미한 먼지가 쌓여갔고 거미줄이 섬세하게 짜여져 황량함을 더했다..
민지는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냉장고 안에는 먹을 것은 많았지만, 이상하게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녀는 무심하게 요거트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요거트의 달콤함은 잠시 입안을 달래주었지만, 곧 다시 권태로운 맛으로 변했다. 차갑고 매끄러운 질감이 그녀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지만, 따뜻함은 찾기 힘들었다.. 주방 창밖으로는 회색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무겁고 답답해 보였다. 회색빛 하늘 아래 도시의 풍경은 희미하게 흔들리는 그림자 같았다..
“이제 뭘 원하는 걸까?” 민지는 혼잣말했다. 인형에게 빌었던 소원들은 대부분 이루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끊임없이 욕망을 채워 넣었지만, 결국 공허함만 가득했다. 욕망은 달콤한 사탕과 같았다. 처음엔 맛있었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질리고 입안에 텁텁함만 남았다.. 그리고 그 텁텁함은 점점 더 강렬해져 다른 맛들을 모두 가려버렸다..
그녀는 거실로 돌아와 인형을 무릎에 앉혔다.. 인형의 낡은 눈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깊고 슬펐다.. 하지만 오늘따라 인형의 눈동자는 은혜와 같은 색깔에서 조금씩 검게 변색되고 있었다..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민지는 인형의 눈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인형은 단순히 욕망을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녀 안의 슬픔과 외로움을 흡수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슬픔과 외로움은 결국 그녀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그녀는 점점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인형의 눈동자는 지금, 은혜와 똑같은 슬픔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 알았다... 욕망이 가져온 결과는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황량해진 마음이었다는 것을...
인형의 눈동자는 거의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검은 구멍처럼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민지는 인형을 끌어안고 함께 울기 시작했다.. 뜨거운 눈물이 인형의 차가운 뺨을 적셨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슬픔과 외로움을 토해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독감에 몸부림치면서… 마침내 완전히 탈진하여 소파에 쓰러졌다… 인형의 낡은 눈동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만이 남아있었다…
당근마켓 알림음은 오후의 권태를 가르는 칼날이 아니었다. 오래 묵은 원한이, 낡은 인형 ‘은혜’의 검은 눈을 매개로 세상에 스며드는 신호였다. 소파에 몸을 던진 민지는 은혜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인형의 눈은 단순한 검정색이 아니었다. 밤하늘 아래 잠긴 심연처럼 모든 빛을 삼키고,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은 그녀의 슬픔만이 아니었다. 오래된 두려움, 잊고 싶었던 욕망,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어둔 질투심까지, 은혜의 눈 속에서 꿈틀거렸다.
눈물이 마르고 나서, 민지는 은혜의 향을 깊게 맡았다. 오래된 옷감과 먼지, 라벤더 향, 그리고 희미하게 스치는 시간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 향은 할머니 품 안에서의 따스함과 닮아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다. 마치 완벽하게 복원된 옛 사진처럼, 아련한 행복 뒤에 숨겨진 그림자가 느껴졌다. 인형을 끌어안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했지만, 그 편안함은 곧 불안으로 뒤덮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은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녀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자아였다.
다음 날 아침, 거울 속 민지의 모습은 낯설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오랜 밤 잠을 설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은 욕망으로 조금씩 윤곽을 잃어가는 조각상 같았다. 한때 선명했던 이목구비는 희미해지고, 표정은 공허하게 변해 있었다.
“내가 대체 무슨 일이 된 거지?”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식탁 위에는 아직 시들지 않은 다육식물이 놓여 있었다. 민지가 처음 은혜에게 소원을 빌기 시작했을 때, 이 다육식물은 싱싱하고 생기가 넘쳤었다. 하지만 이제는 잎이 조금씩 말라갔다. 마치 그녀의 공감 능력이 점점 메말라가는 것처럼, 다육식물의 시든 모습은 무언가를 놓쳐버린 듯한 쓸쓸함을 더했다. 다육식물의 말라가는 잎사귀 하나하나가 그녀가 무심코 지나쳐 버린 작은 행복들을 상징하는 듯했다..
남편 상훈이 출근 준비를 하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민지를 흘끗 보고는 “오늘따라 유난히 초췌해 보이네.”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건조하고 무심하게 들렸다. 상훈의 말은 날카로운 가시처럼 민지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변해버린 것을 인정하는 듯했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별일 없어요.”라고 대답했지만, 상훈은 그녀의 미소를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균열이 감돌았다.. 침묵은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그들의 사이에 자리 잡았다.. 상훈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펼쳤고, 민지는 홀로 식탁에 앉아 멍하니 다육식물을 바라봤다.. 다육식물의 시든 잎들은 그녀의 메마른 감정을 닮아 있었다..
그때, 문득 ‘인형 은혜’의 제작자 ‘은혜’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은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원한을 품고 이 인형에 자신의 감정을 담았을까? 민지는 은혜의 사연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을 찾듯, 그녀는 은혜에 대한 정보를 찾아 나섰다..
점심시간, 민지는 온라인 빈티지 인형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Eun-hye's Atelier’ 인형에 대한 게시글을 검색해보니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인형들이 주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한다고 말했다.. 특히 '낡은 눈'을 가진 인형들은 질투심이나 원한을 잘 담아낸다고 했다.. 민지는 소름이 돋았다.. 마치 은혜가 자신의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은혜는 단순히 아름다운 인형이 아니었다.. 그녀 안에 숨겨진 욕망과 질투심을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상훈과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상훈은 회사 일에 지쳐서인지 말이 적었고, 민지는 그의 냉담함에 위축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조용히 시든 다육식물이 놓여 있었다.. 민지는 식사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정말 행복했을까? 아니면 욕망에 눈이 멀어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걸까?” 그녀가 추구했던 성공과 인정은 진정한 행복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허울 좋은 포장지에 싸인 불안감이었을까?
밤이 되자, 민지는 다시 인형 ‘은혜’를 끌어안았다.. 인형의 낡은 눈동자는 여전히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담고 있었다.. 민지는 은혜에게 속삭였다.. "당신도 나처럼 외로웠나요? 당신도 나처럼 욕망에 흔들렸나요?" 그 순간, 그녀는 인형 ‘은혜’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새로운 인식이라는 섬광이 그녀의 마음속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은혜는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질투와 불안감을 형상화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질투와 불안감이야말로 그녀를 더욱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혜의 낡은 눈동자는 슬픔 뿐만 아니라 연민과 이해를 담고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지켜봐 온 현자의 눈동수 같았다…
당근마켓 알림음이 울린 건, 그녀의 권태로운 오후를 가르는 소리만이 아니었다. 삶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욕망의 속삭임, 낡은 인형의 눈을 통해 세상으로 스며드는 오래된 원한의 신호였다. 이제 그 신호는 단순한 욕망의 속삭임이 아닌, 욕망의 불꽃이 타들어간 재가 켜켜이 쌓인 깊고 묵직한 울림으로 변모했다. 민지는 인형 ‘은혜’를 품에 안았다. 은혜의 낡은 눈동자는 마치 고요한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슬픔과 체념, 그리고 미세한 분노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욕망의 무게에 짓눌려 퇴색된 별빛 같았다.
“이제 당신 차례야.” 민지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은혜에게 소원을 빌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은 질투부터 시작해 남편의 승진, 친구의 몰락까지… 그녀의 욕망은 은혜의 눈을 통해 세상에 펼쳐졌고, 그 대가로 그녀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닳아 사라졌다. 마치 오랜 시간 바람에 깎인 조각상처럼, 윤곽은 선명했지만 생명력은 점차 희미해져갔다. 그녀는 은혜에게 자신의 불안과 욕망을 투영했고, 그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졌다.
민지는 은혜를 들고 폐허가 된 ‘Eun-hye's Atelier’ 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은 시간이 멈춘 듯 낡고 황량했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작업대 위에는 반쯤 완성된 디자인 스케치들이 흩어져 있었고, 녹슨 재단 가위는 마지막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녀를 감쌌다. 마치 은혜의 슬픔이 응축된 듯했다. 잊혀진 디자인들의 무덤, 그곳에는 은혜의 야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여기… 당신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네요.” 민지는 스케치들을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드레스 디자인들이었다. 그녀의 디자인 스타일은 유행을 타지 않는 고전적인 우아함이 돋보였다. 박선영의 디자인보다 더 섬세하고 감성적이었다. 민지는 문득 박선영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은혜에게 소원을 빌었던 자신을 떠올렸다. 얄팍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은혜에게 원망을 투영했던 것이다. 그녀는 박선영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싶었고, 더 완벽한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때, 은혜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은혜는 민지를 똑바로 응시하며 속삭였다. “너 역시 나처럼 야망에 눈멀었던 여자일 뿐이야.” 그 목소리는 육성이라기보다는 머릿속에 직접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떨려왔다. 은혜는 단순히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질투와 불안감을 형상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질투와 불안감은 사회라는 거대한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었다.
민지는 심호흡을 했다. “당신도 외로웠나요? 당신도 박선영에게 인정받고 싶었나요?”
은혜는 침묵했다. 잠시 후, 그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정받는 것보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어.” 그녀는 박선영에게 디자인 아이디어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존재론적인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민지는 은혜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당신의 디자인 아이디어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진심을 담아 속삭이자, 은혜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당신의 슬픔과 억울함을 내가 진심으로 이해하고 기억할게요.” 민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은혜에게 위로를 건넄다. 욕망으로 시작된 거래였지만, 이제는 진정한 공감과 이해가 필요했다.. 그녀는 은혜를 통해 자신의 욕망 역시 결국 사라질 먼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공방 안의 습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은혜의 눈동자는 점점 더 평온해졌고, 옷 색깔도 다시 선명해졌다.. 인형은 다시 평범한 빈티지 인형으로 돌아온 것이다.. 저주는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법처럼 완벽하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는 이미 상처를 입었고 친구 수진과의 관계도 어색함이 남아있었다.. 박선영 역시 여전히 그녀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하지만 민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소소한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며 자신의 내면과 진솔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은혜에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내 안의 열정을 따라 살아가겠어." 그녀는 이전보다 좀 더 과감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시도하기로 했다.. 은혜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말이다..
낡은 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의미있게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알림음이 당근마켓에서 울려 퍼진다… 이번에는 오래된 카메라였다… 또 어떤 물건이 그녀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까?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순환처럼… 다음 물건은 또 어떤 욕망을 불러일으킬까? 어쩌면 그것은 완벽하게 새로운 욕망일지도 모른다… 혹은 또 다른 얼굴을 한 오래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당근마켓 알림음이 울린 건,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때로는 잦고 때로는 느릿한 리듬이었다. 이제 그것은 그녀의 권태로운 오후를 가르는 소리만이 아니라, 오래된 원한이 낡은 인형의 눈을 빌어 세상으로 스며드는 신호였다. 알림 속 사진은 빛바랜 갈색 가죽 케이스를 가진 오래된 카메라였다. 먼지 앉은 렌즈 너머로 희미하게 번지는 빛줄기는,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의 눈처럼 그녀를 유혹했다. 찰나의 망설임 끝에, 그녀는 손을 뻗었다.
카메라를 손에 넣자 은은한 기름 냄새와 함께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낡은 눈처럼, 이 카메라 역시 수많은 풍경과 인물을 삼켰을 것이다. 그 안에는 웃음과 눈물,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응축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민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인형에게 욕망을 쏟아내기 전보다 얼굴은 조금 더 깊어졌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온전해 보였다. 겨울 나무가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녀의 안에는 잔잔한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라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이끼 같은 존재였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인형이 놓여 있었다. 더 이상 기괴하게 빛나던 눈빛은 부드러워졌고, 마치 오랜 친구를 바라보듯 편안하게 느껴졌다. 인형을 쓰다듬으며 민지는 생각했다. 욕망은 필연적인 것이었고, 그 욕망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들어버린 화초들을 보며, 그녀는 깨달았다. 다육식물은 소소한 만족을 넘어 생존의 의지를, 장미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자 동시에 가시 돋힌 자존심을, 난초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자 불안감을 상징했다는 것을. 결국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화려한 꽃이었지만, 그 자리에 더욱 튼튼하고 깊숙한 뿌리가 내렸다는 것을. 뿌리는 땅 속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하며 존재를 드러냈다.
남편 상훈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예전처럼 잔소리를 퍼붓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는 마치 정원에 심어진 다른 종류의 나무처럼 느껴졌다. 민지는 용기를 내어 그의 옆에 앉아 카메라를 보여주었다. “이번엔 카메라야. 예전에 사진 찍는 걸 좋아했었는데… 다시 시작해볼까?” 상훈은 잠시 신문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살펴보더니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 예전에 네 사진 찍어주는 걸 즐겼었지.”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처럼 위로가 되었다.
친구 수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요즘 어떻게 지내? 편집샵 일은 좀 풀려가?” 민지는 솔직하게 답했다. “괜찮아.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시작하면 되지.” 수진의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 안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는 동안, 민지는 문득 과거 디자인 스튜디오 시절의 열정을 떠올렸다. 그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그때 실패는 단지 시작점이었을 뿐이다..
저녁 식사 후, 민지는 카메라를 들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섰다. 석양이 지는 하늘은 핏빛과 쪽빛으로 공원을 삼켰다. 그녀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듯했다 .그 순간, 민지는 깨달았다 .욕망은 삶을 움직이는 엔진이었고 ,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이었다는 것을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하지만 욕망은 양날의 검이었다 . 때로는 우리를 구원하고 때로는 우리를 파괴한다 .
카메라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낡은 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의미있게 보였다 … 그리고 새로운 알림음이 당근마켓에서 울려 퍼진다… 이번에는 오래된 재봉틀이었다… 녹슨 바늘과 페달이 달린 재봉틀… 마치 어머니가 늘 사용하던 재봉틀과 똑같았다… 또 어떤 물건이 그녀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까?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순환처럼… 다음 물건은 또 어떤 욕망을 불러일으킬까? 어쩌면 그것은 완벽하게 새로운 욕망일지도 모른다… 혹은 또 다른 얼굴을 한 오래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 마치 거미줄처럼 미묘하게 연결된 삶 속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재봉틀에 담긴 어머니의 기억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와 그녀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 과연 그 기억들은 그녀를 어디로 이끌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