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긴 있다
누군가를 엄청 사랑했다가 딱 그만큼 미워해 본 적 있는가?
난 있다. 한 번.
그 사람은 내게 신이었고 난 ‘그 사람교’ 신도였다.
하지만 그 사람은 신이 아니니 당연히 인간의 삶을 살았고, 때로 실수했고 잘못했고, 그래서 난 상처받았다.
가슴에 난 생채기에 괴로워하면서도, 신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를 향한 숭배를 멈출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내겐 그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그 사람이 내 전부였으니까.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심해지고 간혹 핏물이 고였다.
가족을 향한 상처가 그래서 더 무섭다.
왜 지워지지 않는 걸까, 궁금했다.
원래 이런 용도의 지우개는 없는 건가? 그렇다고 무언가로 덮어 숨길 수도 없었다.
지울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고 옅어지지도 않는다면, 결국 회복되어야 한다는 건데...
그 연고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했던 선택들에 마음 아팠다. 몇 번의 선택은 ‘실수’일 수 있지만, 그 실수들이 모이고 ‘일관성’이라는 끈으로 엮이면 그건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단지 실수였다고 그 사람을 위해 변명해 보지만 진실을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왜 그런 사람이냐고 그 사람을 탓할 수 있을까? 아쉬워할 수는 있어도 나무랄 수는 없는 법이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그건 그냥 ‘현실’이니까. 그걸 직면하기가 어렵고 인정하기는 더더욱 어렵더라.
그에게 장점도 많지 않으냐고 날 다독여봐도 가슴속 상처는 씻기지 않았다. 좀 편해지고 싶어서 용서해 보겠다고 용을 써봐도 ‘때로는 내 마음이 내 거가 아니’라는 깨달음만이 오롯이 남았다. 용서라는 건 그래서 어렵다. 살아보니, 내 영역이 아니었다. 그건 신의 영역이더라.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쉬워할 수는 있겠지만,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나무라지는 말자.
어쩌면 지금 내 인생은 내가 처했던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결정판일지도 모른다.
더 좋아졌을 수도 있지만, 더 나빠졌을 확률도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람마다 처한 인생의 조건들은 다 다르고,
그래서 현재 잘 나가는 그/그녀도 나와 같은 조건이었으면 지금과는 달랐을 수 있다.
나를 둘러쌌던 조건들을 비관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이 해봤는데 별 쓸모가 없더라)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여기까지 걸어온 날 쓰다듬어주고 토닥토닥해 주자.
고생 많았다고, 네가 힘들었던 거 내가 다 안다고, 날 위로해 주자.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같이 잘 해보자고, 조금 촌스럽지만 파이팅을 외치며 격려도 해 주자.
이 세상에 내 거는 별로 없었지만 ‘내 거’라고 불릴만한 게 딱 하나 있긴 있었다.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