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좋아하세요?"
영화나 음악 혹은 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할 용기가 있지만 드라마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가 참 난감합니다. 그 이유는 드라마를 즐기는 방식에 있는데요.
일단 드라마처럼 호흡이 긴 영상 매체에서 저의 경우엔 정을 붙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고 무엇보다 한번 봤던 것을 계속 보고 또 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본 드라마의 수는 굉장히 적은데 드라마를 보는데 투자한 시간은 꽤 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더 이상 국물도 안 나올 것처럼 끊임없이 우려먹는 드라마 중 하나는 이병헌 감독의 <멜로가 체질>입니다.
<멜로가 체질>에는 사랑에 있어서 각자 깊은 상처를 떠안은 3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들이 각자의 상처를 어떻게든 회복하고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줄거리죠.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란 연인과의 사별, 아이를 사실상 부인에게 유기한 채로 이혼해 버린 남편 등등 생각보다 깊고 어두운 상처들입니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과는 달리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코믹하게 진행됩니다. 사실상 시트콤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죠.
바로 그 점에서 저는 이 드라마를 사랑합니다. 함부로 남을 비하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순수한 위트들이 이 드라마를 계속해서 재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머들 덕분에 드라마 속 심각한 상황은 하나의 해프닝이 되고 밤의 수다로 흘려보낼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누구나 드라마 속 주인공 못지않게 진로, 내면, 우정 그리고 사랑 등과 관련된 고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고민들은 그에 맞는 고통들이 있겠죠. 하지만 지금을 괴롭게 하는 그 문제들에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의 장르입니다.
자신에게 들어온 불운과 불합리를 온전한 불행으로 받아들이면 비극이 될 것이고 하나의 에피소드로 받아들이면 옴니버스 식의 드라마가 되는 것이죠. 불운과 불합리는 불행과 동의어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리고 유머는 그러한 문제들을 유쾌한 드라마 장르로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현재의 문제들을 우습게 만들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상황을 보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마치 <멜로가 체질>에 나오는 유쾌한 수다처럼 말이죠.
사실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진 못할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도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변경이 가져다주는 변화는 작지 않을 것입니다. OST의 분위기가 변하고 영상의 색감이 변하는 것처럼 현재의 고민들에서 약간 고개를 돌리게 만들고 다른 것들이 보이게 만들죠.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에게로 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품고 있는 고민들이 너무나 무거워서 당장의 여유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문제들은 언제까지나 옆에 있지 않고 떠나갈 것들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누구나 각자의 드라마에선 주연이므로 여러분과 저의 장르가 되도록이면 해피 엔딩이 예정된 유쾌한 모험 활극이 되기를 기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