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곧 내 세상

영화에 미친 자, 현실에 미친 자

by 세바스찬

내 이름은 박성훈. 어느덧 마흔을 목전에 둔 스물아홉의 내 나이가 무색하게도, 내 삶은 영화 한 편처럼 기승전결을 찾기 어려운 무성영화 같다. 전 세계에는 50만 편에서 70만 편에 이르는 영화가 존재한다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극장에 걸린 작품의 일부일 뿐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중에는 제목만 그럴듯하고 내용은 유명무실한 영화도 있고, 눈을 뗄 수 없는 기적처럼 아름다운 영상도 섞여 있다.


비혼이라는 선택지는 나의 외로움을 설명해 줄 뿐, 위로해 주지는 않았다.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응원해 주던 가족도, 신뢰에 든든한 친구도 없다. 대신 한 달 이자로 50만 원을 내는 2,500만 원의 빚만이 유일하게 내 곁을 지킨다. 빚더미 위에서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혹여 남은 잔상을 붙들기 위해 마주한 화면 속 이야기는 여전히 빛나 보였다.


공장에서 땀 흘리며 일해도, 월급 180만 원(실수령액 약 130만 원)을 받고 난 뒤면 삶은 늘 계산서로 가득했다. 이자 50만 원, 휴대폰 요금 5만 원, 식비 30만 원, 월세 30만 원, 총 115만 원. 남은 15만 원은 고스란히 OTT 구독료와 영화비에 바치고, 그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 모를 한 편의 영화를 마주했다. 대사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끝은 예상치 못한 해피엔딩이었다. 그 순간, 낯선 전율이 전신을 타고 흐르며 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두려움에 휩싸여 숨죽이던 내가, 스크린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좀비가 들끓는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내가 앉아 있는 이 공장과 내 인생도 언젠가 기적처럼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뮤지컬 영화 속 화려한 무대 위에선, 관객과 배우가 어우러진 숨결이 희망의 빛을 품고 있었다. 그 빛 속에 잠시나마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칠흑 같은 외로움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숫자도, 명예도, 돈도 아니었다. 바로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그 이야기는, 가난과 고단함에 지친 내 마음에 작지만 분명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이제 나는 묻는다. 빚투성이 인생 속에서도, 이 작은 빛이 모여 언젠가 나를 완전히 감쌀 수 있을까?


스크린 위로 흘러가는 자막처럼, 내 이야기도 언젠가 해피엔딩을 향해 움직이길. 그렇게 나는 오늘도 영화 한 편을 선택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를 꿈꾼다.


UVgAobacrr74%3D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반지하 원룸 현관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빛 한 줄기 없는 어두운 복도 끝, 현관등이 꺼지자 세상의 모든 색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불안이 가슴을 조여 오지만, 묵묵히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선다.


먼저 향하는 곳은 화장실이다. 다른 공간은 어때도 상관없지만, 화장실과 침대만큼은 반드시 깨끗하게 유지한다. 내 몸이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를 곳이기 때문이다. 청결을 확인한 뒤 다시 거실로 나오는데, 쓰레기가 널브러진 바닥이 나를 맞는다.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노트북을 켜고 OTT 플랫폼을 살핀다. 한 달 2만 원짜리 구독료로 즐길 수 있는 환상의 두 시간, 그 짧은 시간만이 이 개 같은 하루의 잔혹함을 잊게 한다.


원고에 사용된 그림은 AI로 제작된 그림임을 밝힙니다.


새로운 글로 찾아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전 작성한 "타닥, 타닥"은 잠시 비공개로 처리했습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