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무대는 여름이었다.
쏴아아아—
미친 듯이 퍼붓는 장대비. 공장 안은 여전히 요란하다. 거대한 기계들이 쉼 없이 웅웅 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나는 그 소음 속에 가만히 서 있었다. 멍하니, 어떤 생각도 감정도 없이.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는 내 몫의 일을 슬쩍 가져가 대신하고 있었다.
기계음 사이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험담이 들렸다. 그 조각난 말들, 비난, 비웃음. 나는 그저 바닥만 바라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하며, 텅 빈 두 손바닥을 천천히 들어 본다. 손바닥 위엔 아무것도 없다. 공허하고, 차갑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콕 찌른다.
“성훈 씨, 오늘 좀 괜찮아? 그래도 아까처럼 멍하니 있던 건 멈췄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내 팔목을 덥석 잡는다.
“오늘 회식 간다고 했잖아. 그냥 같이 가자.”
망했다. 정말 가기 싫었다. 매번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가짜 부모님 이야기, 존재하지도 않는 동생 핑계. 하지만 이번엔 핑계를 댈 틈조차 없었다. 그는 재빨리 나를 차에 태웠다.
"자, 천하제일 고깃집..."
수염이 덥수룩한 그가 두꺼운 손가락으로 내비게이션 화면을 콕콕 누른다. 삑, 찰칵, 삐빅. 화면이 반응할 때마다 나의 머릿속은 점점 하얘졌다. 이미 차에 타버린 나는, 그저 '빨리 밥이나 먹고 집에 가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나보다 여덟 살 많은 삼촌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공장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털보 아저씨’라는 별명이 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산타로 분장해서 사람들은 '산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유일하게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와 친하지 않다. 그는 그저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일 뿐이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서울에 아파트가 있고, 가족도 서울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일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자, 다됐다!" 내비게이션에서 주소를 겨우 찾은 털보는 웃으면서 기지개를 피우고 천천히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말없이 달린다. 덜컹거리는 차 안, 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음악도 없고, 대화도 없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시내의 번잡한 간판들이 하나둘씩 보이고, 우리는 목적지 앞에 도착했다.
고깃집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먼저 자리에 앉아 고기를 주문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다. 털보 아저씨는 내게 이것저것 묻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었지만 들은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마주 앉은 지금 이 순간이 더 숨이 막혔다. 내 손이 떨리고, 눈동자가 파르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곧 사람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엔 털보 앞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어느새 눈치껏 구석으로 밀려났다. 술잔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섞인 건배 소리. 고기 냄새가 테이블을 덮는다. 나는 조용히 야금야금 고기를 씹는다.
누구도 내 고기를 구워주지 않았고, 누구도 내 잔에 술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조용히,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모두가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고기 냄새, 술 냄새, 웃음소리, 손뼉 치는 소리, 건배하는 소리. 그 모든 것이 나에겐 역겨웠다. 저마다 취한 척, 친한 척, 웃는 척… 나는 이 인간 군상들이 혐오스러웠다. 거의 두 시간 동안 구석 자리에 갇혀, 조용히 고기와 술로 배를 채웠다. 말없이, 기계처럼 입을 움직이며.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내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빠르게 옷을 챙기고,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손등으로 훔쳤다. 도망치듯 출입문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고깃집 앞에 사람들이 웅성이며 모여 있는 틈을 타 슬쩍 빠져나가려던 찰나… 털보 아저씨의 손이 내 팔을 붙잡았다.
“2차! 노래방 가야지.”
나는 눈빛으로 욕을 날렸다. 제발 보내달라는 뜻도, 짜증이 가득 담긴 시선도 통하지 않았다. 이미 택시는 도착해 있었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 뒷덜미를 툭 잡고는 내 몸을 택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노래방으로 향하는 택시 안. 나는 입도 열지 못한 채 창밖만 멍하니 바라본다. 물방울이 맺힌 창 너머로, 세상이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노래방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넥타이를 머리에 두른 관리자가 무슨 전쟁터라도 되는 듯 미친 듯이 헤드뱅잉을 하고, 술잔은 여기저기에서 부딪히며 넘쳐흘렀다.
그 혼란 속에서도 털보 아저씨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며 분위기를 챙기고 있었다. 마침내 내 앞에 다가온 그는 잔에 술을 따르더니, 크게 웃으며 내 귀 가까이에 입을 댔다. “못 먹겠으면!! 안 먹어도!! 돼!! 그냥!! 잔만!! 들어!!”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향해 술을 따르러 돌아섰다.
나는 잔을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 손 안의 잔은 미지근했고, 그 속에 담긴 것은 술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나 자신이었다.
술잔을 들려는 순간… 문득, 내 손안에 쥐어진 건 우리 집 현관문 손잡이였다. 나는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 화면엔, ‘오전 1:03’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한 통의 부재중 문자. 보낸 사람은 털보 아저씨였다.
성훈 씨, 조심히 잘 들어갔어?
다음번엔 너무 멍 때리지 마,
혹시라도 기분이 안 좋거나 몸이 안 좋으면 바로바로 말해.
아무튼 오늘 즐거웠다! 다음 주에 봅세.
- 털보 / 오전 12시 57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언제 노래방에서 나와, 언제 집에 온 거지? 요즘 들어 이런 식으로 기억이 자꾸 끊긴다. 무언가에 쫓기듯 깨어나 보면, 시간은 벌써 흘러 있고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공허하게 눈만 깜빡이고 있다. 이런 식의 삶. 벌써 5년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둠, 소리 하나 없는 정적. 그 안에 나 혼자, 조용히 삼켜졌다. 한숨이 깊게 새어 나왔다. '왜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울렸다. 반복되는 하루, 사라지는 기억, 무표정한 얼굴들. 그 속에서 나는 계속 존재하고 있다. 왜인지도 모른 채. 샤워를 마친 뒤, 물기 어린 머리로 무심코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OTT 앱을 켠다.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익숙한 루틴처럼. 또 어떤 드라마를, 어떤 영화 속 남의 인생을 보며 오늘이라는 현실을 지우게 될까.
낯이 익었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싶었더니… 예전에 찜 목록에 넣어두고는 잊어버렸던 영화였다. 무언가를 골라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그냥 '이 정도면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어둠을 밝히고,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영화는 가족 영화였다. 서로 상처 입고, 오해하고, 소리치던 가족들이 조금씩 서로를 감싸 안으며 흘러가는 이야기.
웃기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묘하게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던 중, 작은 아이가 미인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장면이 나왔다. 어색한 무대, 조명이 번쩍이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 아이가 홀로 서 있는 장면.
화면 속 아이가 무대 위에 올라가 관객을 바라보는 그 장면에서 나는 갑자기 멈춰 섰다. 기억 저편에서 바람처럼 밀려오는, 아주 오래 전의 그날이 불쑥, 내 앞에 도착했다.
(1993년 여름)
“제34회 행복초등학교 학예회” 커다란 현수막이 교문 위에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쥔 채, 학교 앞에 서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었고, 운동장에서는 이미 북적북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잘할 수 있지?” 엄마는 다정하게 웃으며 내 눈높이에 맞춰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였다고 믿고 싶었다. 실은… 긴장한 나머지, 입을 뗄 수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은 굳은 문처럼 닫혀버렸고 숨결은 목구멍 어딘가에서 막혀버렸다.
그때, 뒤통수가 따끔하게 저렸다. “이 놈의 새끼, 엄마가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그 말과 함께, 묵직한 손바닥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순간 눈앞이 번쩍했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웃을 때 어땠는지, 화낼 때 눈매는 어땠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름은 기억나는데 얼굴은 사라졌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가장 무서웠던 사람인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을 텐데… 왜, 그 얼굴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걸까.
엄마는 내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꼭 할 수 있어.” 그 말은 부드러웠고,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조용히, 단단하게 다짐했다. 이번 학예회에서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거라고.
강당은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의 장기자랑에 몰두한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조명이 비추고, 박수가 쏟아졌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숨이 막히는 듯했다. 긴장이 온몸을 조여왔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천천히 무대 위로 걸어 올랐다. 앞엔 수많은 사람들. 숨을 고르며, 객석을 재빠르게 둘러보았다. 엄마, 아빠가 어디쯤 앉아 있는지 눈으로 찾았다. 엄마는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표정했다. 그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흔히 부르는 동요가 아니라, 나는 '징검다리'의 ‘여름’을 선택했다. 그 무더웠던 여름, 덥고 습한 열기 속에서 부채질하며 앉아있던 사람들의 표정은 지쳐 있었고, 다소 불쾌했다.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자, 몇몇 어른들은 반가운 듯 몸을 일으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 또래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내가 준비한 율동을 천천히 추며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가 따라왔다.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췄다. 그 빛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자유로웠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꿈을 노래하는, 한 사람의 '가수'였다.
노래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고, 어디선가 꽃다발이 날아왔다. 선생님들도, 교장 선생님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학예회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조용히 물으셨다. “아들은 커서 뭐가 될 거야?”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수요!"
그때 나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온 세상이 내 무대 같았고, 언제든지 다시 노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흐르자, 어느새 내 두 뺨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32년 전의 이야기.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왜 이리 그립고, 왜 이리 슬플까.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아무 말 없이 어두운 방 안,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화려한 영화 속 이야기보다, 지금은 내 이야기가 더 크게 느껴졌다. 마치 그 영화 속 세상에 내가 잠시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그 반짝이는 순간은 여전히 선명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껐다.
원고에 사용된 그림은 AI로 제작된 그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