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으로 사먹은 자장면은 나의 소울푸드
'띠링'
[울랄라 공장섹션]
직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현재 강한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재난으로 나무가 회사를 강타하였습니다.
수리 및 공사를 위한 조치로, 여러분들께 2주간 유급휴가를 부여합니다.
부디 안전사고 없으시길 바랍니다.
문자 한 통으로 생각지도 못한 휴식이 찾아왔다. 하지만 ‘휴식’이라는 단어는 지금의 나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다. 어차피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날들의 연장선일 뿐이었고, 그저 '이제 무엇을 하며 버텨야 할까'라는 막막함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밖에서는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거센 빗소리는 마치 나가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좁고 어두운 집에 이주일 내내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냉장고는 이미 텅 비었고, 월말이 가까워지며 생활비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도 며칠이면 끝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서 가장 저렴한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정도를 사 오면 최소한 굶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아마도'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나는 책상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결국 노트북을 켰지만, 비 때문인지 인터넷은 느리고 화면은 자주 멈췄다. 바탕화면만 뻣뻣하게 깔린 채,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는 채로 나는 그저 숨만 쉬고 있었다. 집 안은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이었고, 유일한 광원은 노트북 화면에서 새어나오는 푸른빛뿐이었다. 그 희미한 빛이 벽지를 덜컥거리게 치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방 안을 채웠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온몸이 눌리는 듯한 감각이 몰려왔다. 말도 안 되는 양의 비가 하늘에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정신을 잠식하는 듯한 그 소음 사이로 내 배도 조용히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편의점에 가야 할까.' 비를 뚫고 주전부리 하나라도 사올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배는 점점 더 고파졌고, 기분은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휴대폰은 조용했다. 어떤 메시지도, 어떤 알림도 없었다.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일까. ‘우울’이라는 단어는 이 기분을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했고, 너무 흔했다. 그보다는 ‘고립’. 맞다. 정확히 그 단어가 내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어딘가에 혼자 표류해 있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문득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어릴 적에 봤던 이야기였다. 빚더미에 쫓기다 결국 대교 위에서 몸을 던졌지만, 죽지 않고 이름 모를 섬에 떠밀려 살아남게 된 한 남자. 그리고 또 한 명, 방 안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 영화는 두 명의 김씨를 따라간다. 하나는 물리적으로 표류된 김씨, 또 하나는 사회로부터 단절된 히키코모리 김씨. 나는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혹시 이 창 밖 어딘가에서 또 다른 박씨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나는 다시 노트북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영화를 틀었다.
다시 봐도 참 기묘하고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영화였다. 특히 자장면을 만들어내던 장면. 그 장면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나도 자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지금은 절약해야 할 시기였고, 통장의 잔고는 이미 바닥이 보였지만… 그 자장면. 윤기 도는 검은 소스, 고소하면서도 살짝 단맛이 느껴지는 그 익숙한 맛과 냄새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내 기억의 문을 여는 자물쇠 같은 존재였다.
나는 어느새 그 자장면을 떠올리며, 조용히 과거의 시간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너는 뭐가 되려고 이러는 거니!!” 엄마는 눈가에 눈물을 그렁이며 나에게 소리쳤다. 집 안 공기는 이미 무너진 감정들로 가득했고, 거실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처럼 뒤엉켜 있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얼굴로 조용히 뒤돌아 서 있었고, 고개는 깊게 숙여져 있었다. 나는 끝내 화를 참지 못했다. 감정의 벽을 넘어서듯 터져 나온 말은, 마치 결별 선언 같았다. “내가 이 집구석을 나가서 당신들보다 더 열심히 살 거니까, 언젠가 내가 성공하면… 날 아는 척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는 문을 세게 박차고 나갔다. 방문이 울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진짜로 집을 떠나버렸다.
그 순간부터였다. 모든 것을 잃고 혼자가 된 채, 나는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서 있었다. 한순간의 분노와 절망이 만든 결정이었지만, 다시 돌이킬 수는 없었다. 말해버렸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다. 사실 무서웠다. 불안했다. 정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 번 들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주머니 속엔 300만 원. 내가 가진 전부였다. 이 돈으로 버티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벌어야만 했다. 증명해야만 했다.
나는 시대로 향했다. 막연한 기대였다. ‘도시는 기회가 많을 거야.’ 그런 단순한 믿음 하나로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론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고, 어느새 장대비로 바뀌었다. 나는 줄곧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혹시 엄마가, 혹시 아버지가… 아니,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까. 마음 한구석엔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종착지까지 두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화면은 조용했다. 메시지도, 전화도 아무것도 없었다.
버스가 시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거리 앞에 서 있었다.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이 도시에 희망이 있을까. 오히려 걱정만 커졌고, 나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한 모텔로 들어갔다. 프런트 직원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1박에 30만 원입니다.” 너무도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어른이 된 것처럼, 또는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스위트룸에 들어가 조용히 짐을 풀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누워 있으려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벽지도 침대도 낯설기만 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거리를 한참 서성였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허기짐이 몰려왔고, ‘일단 자자’는 생각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역력했다. 내 짐은 온데간데없었고, 휴대폰도 사라져 있었다. 방 안은 완전히 털려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진짜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 그대로 텅 빈 상태였다. 남은 건 후회와 두려움, 그리고 깊은 고독뿐이었다.
범인을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말하길, 모텔 복도에 설치된 CCTV는 모두 가짜였다고 한다. 결국, “방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당신의 책임도 있다”는 말과 함께, 수사가 진행되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형식적인 대답만 남겼다. 휴대폰도 도둑맞은 마당에 무슨 수로 연락을 주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저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무력하게 자리를 나섰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위, 10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섬에 갇힌 기분이었다. 수영을 해보려 해도 사방엔 상어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았고, 정말 배가 고프면 내 손가락이라도 씹어야 할 것 같은 절박함이 밀려왔다. 누구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고, 나는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고, 걸어서 가기엔 거리는 너무 멀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땀과 눈물이 섞인 듯한 감각 속에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던 찰나, 문득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무작정 거리로 나가 전봇대, 버스 정류장, 가게 앞에 붙은 알바 공고를 찾아다녔다. 붙여놓은 전화번호를 적고, 직접 문을 두드리며 여기저기 지원했지만, 대부분의 곳에서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열 번이 넘도록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마저도 안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그때, 우연히 들어간 한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에서 다소 외진 곳에 새로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게였고, 손님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사장님은 조용히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무 조건 없이라도 당장 일할 수 있습니다.” 집도, 돈도, 희망도 없던 나에게 이 기회는 마지막 지푸라기 같았다. 사장님은 처음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내 단호한 태도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조건 매일 출근하겠다고 했다. 오전, 오후, 밤 언제든 좋다고 했다. 이상하게 그때만큼은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그렇게 나는 편의점 일에 매달렸고, 결국 첫 월급을 받게 되었다.
당시 내 전재산은 270만 원. 그중 70만 원은 통화가 잘 되는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는 데 썼고, 나머지 200만 원은 그날그날 찜질방 대실로 시간을 때우며 보냈다. 생활비가 어느새 50만 원으로 줄었을 무렵, 마침내 월급이 들어왔다. 170만 원이었다.
나는 찜질방 건물 1층에 있는 허름한 중식당으로 향했다. 그날, 나는 내 돈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진짜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사 먹는 한 끼였다. 음식이 눈앞에 놓이자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그 따뜻함은 온몸을 감쌌다. 나는 정말로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나의 열정과 도전에 스스로 감탄할 만큼, 다시 살아볼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 감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편의점은 ‘노동청 신고’ 문제로 인해 나를 해고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그 편의점은 문을 닫았다. 모든 게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엔 두렵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음엔 더 멀리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집과도 더 멀어진 도시, 서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직접 자장면을 만들어 먹던 장면을 떠올렸다. 냄비 하나, 국자 하나, 양념과 재료를 손으로 다듬고, 조심스레 볶고 끓이며 스스로에게 한 그릇의 따뜻한 위로를 건넸던 그 장면. 익숙한 요리도, 대단한 기술도 아니었지만 그 한 그릇에는 삶을 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기억은 내게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자장면은 그저 음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버둥대던 작은 선언이었다.
나 역시 오늘, 그 장면처럼 해보고 싶었다. 하루 종일 쏟아지던 비를 뚫고 장을 보러 나갔다. 양파, 대파, 돼지고기, 춘장, 면, 그리고 몇 가지 양념. 하나하나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마음속엔 작은 설렘이 피어났다. 돌아오는 길엔 비에 흠뻑 젖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게 의미 있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반지하 방에 도착해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는 좁은 싱크대 앞에 섰다. 낯선 칼질, 부족한 조리도구, 구부정한 자세. 그래도 한 번도 짜증나지 않았다. 자장면은 금방 완성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춘장을 태울 뻔했고, 면은 약간 퍼졌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한 그릇의 자장면이 내 앞에 놓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검고 윤기 나는 그 면발. 조심스레 한 젓가락을 들어 입에 넣었다.
맛은… 솔직히 말하자면 파는 데보다 형편없었다. 면은 쫄깃하지 않았고, 춘장은 좀 짰다. 그런데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이 자장면은 내가 반지하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따뜻했고, 가장 진심이 담긴 음식이었다.
나는 어느새 젓가락을 든 채 가만히 멈춰섰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슬픔도, 외로움도 아닌 이상한 감정이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행복했다.
이건 내 인생의 첫 시도였고, 첫 월급의 진짜 보상이었다. 비록 조잡한 그릇 하나일지라도, 이 자장면은 나 자신에게 주는 가장 순수한 위로이자, 기념이었다.
원고에 사용된 그림은 AI로 제작된 그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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