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결심

by 세바스찬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알림음을 듣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속보라는 두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은 너무도 짧은 문장이었다. "세바스찬 감독, 향년 30세로 사망" 순간, 창밖의 비가 멎었다. 하늘은 맑지도 어둡지도 않았고, 모든 풍경이 중간에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앉은 채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단지 그 문장을 눈으로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을 본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 영화는 마치 마지막이라는 예감을 품은 듯 아름답고 조용했다. 나는 어딘가에서 그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고, 예술가의 죽음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든 장면이 멈춘 듯한 이 고요는, 오히려 폭력적이었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건 내가 집을 나온 날이었다. 처음으로 영화관에 혼자 들어가 본 그날, 스크린 위에 흐르던 제목은 <영보이>였다.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그 제목을 따라 영화를 끝까지 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정말 지루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패러디한 듯한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닌 진지한 액션 스릴러였고, 그 진지함이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영화의 몇몇 장면을 잊지 못했다. 저예산 영화 특유의 투박함 속에서도 어딘가 예술적인 감각이 스며 있었고, 첫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설득하려는 고집과 정성이 느껴졌다. 분명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그 잔혹하고 낯선 이미지가 조용히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화면 위에 피를 그리는 화가였다. 그러나 그 피는 결코 더럽지 않았고, 고통은 미학으로 승화되었다. 나는 그의 인물들이 말없이 흐느끼는 장면들을 사랑했다. 침묵이 가장 날카로운 언어가 된다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내 안의 언어 몇 줄을 함께 묻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천천히 노트북을 열고 그의 이름이 적힌 책들을 꺼냈다. 인터뷰, 평론집, 스토리보드… 그의 손길이 닿은 기록들을 꺼내어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그것은 마치 해부처럼 조용하고 정교했다. 그는 늘 미세한 감정들을 해부하듯 조각했다. 그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의 인생을 되짚는 고요한 수술대 앞에 서게 된 기분이었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수, 사랑, 구원, 혹은 죽음.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른 채 멍하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냉소와 침묵을 닮아 있었다. 나는 종종 생각했다. 그가 그런 인물들을 만들 때, 어떤 얼굴을 떠올렸을까. 고요한 분노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가는 그 얼굴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지만, 세바스찬 감독의 영화는 나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깊게 스며들었다. 그는 마치 또 다른 나를 조각낸 듯한 인물들을 여러 영화에 흩뿌려 놓았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이상하고, 괴랄하며, 기이하게도 진심이었다. 그가 남긴 공백 앞에서 나는 여전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앉아 있었다. 다만 이 묵직한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감각만이 내 몸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새 영화가 개봉될 것 같았다. 언론에 보도된 죽음조차 그의 연출처럼 느껴졌고, 나는 관객처럼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이 세계의 모든 죽음이 연출이라면, 살아 있는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잃어도 울 수 없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나는 눈물이 났지만, 그것이 진짜 슬픔인지, 혹은 상실을 흉내 내는 무언의 예의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내 손끝이 조금씩 떨렸고, 손톱 밑이 서서히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의 공기와 섞여 있었다.


그의 장례식은 공개적으로 치러진다고 했다. 기자들의 카메라 사이로 간간이 흘러나오는 영상은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조문객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은 채 정갈하게 줄을 서 있었다. 배우들, 감독들,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동료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까지 하나둘씩 빈소를 찾았다. 그의 유서에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응원해준 이들과의 이별을 따로 준비하고 싶다는 말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조용히 마련된 별도의 공간에는, 그의 열렬한 관객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스크린에는 그의 초기 단편작이 반복되고 있었고, 누군가는 화면을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그 어떤 영화보다도 그의 철학에 가까웠다고 느꼈다.


나는 결국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버스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고, 회사에는 이틀의 휴가를 냈다. 이제는 그를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감정이 목울대를 조이고 있었다. 그가 직접 언급한 마지막 인사를 나 역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아무 준비도 없이, 단지 마음 하나만으로 가방을 챙겨 문을 열었다. 멀고 낯선 장례식장이었지만, 그곳에 가면 그를 조금 더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가 스크린 밖에서도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가까운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버스는 도시를 빠져나와 들판을 가로질렀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고, 시간은 그 조용함을 따라 느릿하게 흘렀다. 핸드폰 배터리는 이미 반쯤 닳아 있었고, 멍하니 틀어놓은 음악에서는 그가 연출했던 한 영화의 삽입곡이 흘러나왔다. 모든 것이 그의 흔적으로 가득한 듯했다.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물었다. '왜 지금에서야 가고 있는 걸까...?' 처음엔 그저 영화 한 편의 팬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사람의 마지막 장면에 관객으로라도 남고 싶었다. 그가 남긴 세계에 조용히 입장하는 순간, 내 안에서도 무엇인가가 끝나고 또 시작될 것 같았다. 마치, 영화가 막 시작되기 전, 극장의 불이 꺼지고 숨을 고르는 바로 그 정적처럼.


도착한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작고 한적한 동네에 자리하고 있었다. 멀리 남해안 바다가 보였고, 버스에서 내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짠내와 바람이 뒤섞인 바닷가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순간 나는 그의 세 번째 영화, <바닷가 마을 소년>을 떠올렸다. 그 작품은 소규모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으며 세바스찬 감독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영화였고, 정작 나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초창기 작품이 너무 형편없었기에 단지 기억 속에만 남겨두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영화는 개봉하고 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내 눈앞에 돌아왔고, 그때부터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바닷가 마을은 그 영화의 배경처럼 느껴졌고, 나는 현실과 영화가 겹쳐지는 낯선 감정 속에 천천히 장례식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요한 건물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서 있었고, 그의 직장 동료들과 배우, 감독, 그리고 가족들까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안내 표지판을 따라 '일반 조문객'으로 분류된 방을 찾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면에는 그의 작품이 흐르는 스크린이, 양 측면에는 하얀 백합과 국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왼쪽 벽면에는 세바스찬 감독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조문객들이 남긴 작은 메모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고, 팬들의 마지막 인사가 수줍고도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장례식장이었지만, 내게는 마치 그의 영화가 한 컷씩 벽에 상영되고 있는 작은 시네마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느새 손에 땀이 배도록 긴장했고, 마음 한구석에서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떨림이 피어올랐다. 그가 만든 세계 안에 실제로 들어와 있다는 감각이, 그 순간만큼은 분명하고 생생했다.


조용히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한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조용히 한쪽으로 데려갔다. “세바스찬 감독님의 열렬한 팬, ‘세뱃돈찬’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어색하게나마 그의 손을 잡았다. 조문객들이 각자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고, 스크린에서는 여전히 그의 영화가 무성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았고, 그 남자는 말을 이었다.


감독님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 그렇게 많진 않았어요. 저기 앞에 계신 분들은 자주 함께 영화 보고 이야기 나눴던 분들이에요. 그런데 처음 뵙는 얼굴이라… 궁금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네… 그렇군요.” 그의 질문은 이어졌다. “혹시 어떤 영화 제일 좋아하세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영보이>요.”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정말요? <영보이>부터 팬이셨다니… 거의 처음 들어봐요. 대부분은 <바닷가 마을 소년> 이후부터 팬이 되셨거든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쩌다가 이런 자리가 마련된 거예요? 팬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생소해서요.” 그러자 그는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화면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세바스찬 감독과의 메시지 기록이 남아 있었다.


화면 속 대화는 단순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3개월 전)

세바스찬: 오늘도 정말 감사했습니당!


세뱃돈찬: 아닙니다, 감독님! ^^ 저희는 언제나 응원합니다!

그나저나 다음 영화는 언제쯤 개봉하는 건가요?


세바스찬: 글쎄요. 사실 배급사와 미팅은 있었는데…

이건 비밀인데, 이번 영화는 ‘죽음’에 관한 영화예요.


세뱃돈찬: 정말요? 신기하네요!


세바스찬: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죽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세뱃돈찬: 죽는다뇨. 그런 생각 마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세바스찬: ㅎㅎㅎ 사람 일은 모르니까요. 혹시라도 제가 죽는다면…

제 장례식엔 꼭 와주세요. 팬분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할 수 있게 할게요.


세뱃돈찬: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전 감독님보다 먼저 죽지 않을 거예요 ㅠㅠ


세바스찬: 감사합니다 :) 늦은 밤이네요.

얼른 주무세요! 다음에 기회 되면 맥주 한 잔 해요 ㅎㅎ


나는 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작게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그는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이런 대화를 나눴다는 게, 뭔가 믿기지 않아서요. 진짜 사람, 진짜 감독님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게요. 감독님이… 진심으로 팬들을 아꼈던 게 느껴져서, 그냥… 감탄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리 사이에 짧고도 길었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 누군가의 유언을 직접 들은 듯한 고요한 충격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은 조용히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었고, 말도 섞지 않았지만, 같은 슬픔을 공유하는 이방인으로서 조용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팬들이 써둔 메모들이 모인 테이블도 있었다. “당신의 영화는 내 인생의 방황을 껴안아줬어요”, “죽음마저도 당신의 영화처럼 고요하길 바래요.” 그런 문장들을 읽고 나자, 나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나는 꺼내 둔 작은 노트 한 귀퉁이에 ‘그의 영화는 늘 내게 질문을 남겼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하려 살아왔다’라고 썼다. 그리고 조용히 그 글귀를 놓았다.


세바스찬 감독의 영화는 늘 일상의 틈새에 스며든 비정상적인 감정을 다뤘다. 그는 거대한 서사보다, 작고 말없는 인물 하나의 고개 끄덕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복수조차 정교했고, 죽음조차 정적이었다. 성훈은 그가 그려낸 잔혹하고 뒤틀린 세계를 단지 기괴한 이미지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미지 뒤에 숨은 끈질긴 질문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왜 살아야 하지?"가 아니라, "왜 살아가는 척을 멈추지 못하는가?"라는 질문들. 세바스찬 감독은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어떤 식으로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불완전하고 어설퍼도, 삶은 한 컷 안에 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장례식장을 나온 성훈은 바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짙게 내리깔린 구름 아래, 파도는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고,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손에는 세뱃돈찬이 건네준 작은 USB가 쥐어져 있었다. “이거는 선물이에요. 뭔가 특별한 분께 드리고 싶었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 성훈에게 건넸다. 성훈은 묻지 않았다. 다만 그 말의 여운만을 조용히 마음에 담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민박집에 도착한 성훈은 커튼도 치지 않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USB를 꽂자, 이름 없는 하나의 파일이 열렸다. 제목도 없고, 저장된 날짜만이 덩그러니 찍혀 있었다. ‘3개월 전’. 마우스를 클릭하자, 검은 화면 위로 몇 줄의 문장이 떠올랐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그냥 장면 전환일 뿐이다. 그리고 다음 컷은, 너의 차례야.


성훈은 스크롤을 내렸다. 낯선 캐릭터들,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감정들. 세바스찬 감독이 쓰고 있던 미완의 시나리오였다. 그것은 단순한 플롯이 아니라, 세바스찬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생각들의 모음이었다. 그 문장들은 영화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일기 같았고, 편지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계속 써주세요. 나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살아 있는 자에게는, 계속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성훈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마우스를 내려 자신이 저장해 둔 오래된 시나리오 파일을 열었다. 여전히 제목은 없고, 인물은 흐릿하며, 줄거리는 엉성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이제 ‘미완’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을. 세바스찬 감독이 남긴 이야기, 그리고 세뱃돈찬이 전한 선물, 그리고 이제 성훈이 살아가며 써내려갈 이야기. 그 모든 것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성훈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갈 결심을 한다


밖에서는 파도가 여전히 부서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한 장면이 끝나고, 다음 장면이 시작되는 소리처럼 들렸다. 성훈은 스크린을 마주하며, 아주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세바스찬입니다.


2주 넘게 새로운 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제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요를 눌러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번 이야기는 조금 무거운 소재였지만, 혹시라도 정말로 제가 죽은 건 아닐까 생각하신 분이 단 한 명이라도 계셨을까 싶어,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써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이야기 구조를 짜볼 것입니다. 여기에 글을 남기는 일은 단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가 오랫동안 꿈꾸던 영화 시나리오의 한 조각을 꺼내 놓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있으며, 언젠가 더 나은 모습으로 그 꿈을 이뤄내고 싶습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일지라도, 저는 그 안에서 어색함보다는 익숙함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앞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업로드될 저의 새로운 이야기들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 세바스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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