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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밖엔 난 몰라 May 02. 2023

아름다운 늑대의 분노로 세상을 바꾸라

늑대를 츰추게 하는 리더란?

[전세사기·물가고 등에 목숨 포기한 이웃들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리며, '늑대 지점'으로 전락하지 않는 리더십은?]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혹은 과일 재배 농부의 노심초사 과학영농 덕분인지 4월의 마지막 날 출근길

           탐스럽게 익은 포도송이를 올해 처음으로 환하게 만났지요. / 사진=픽사베이)



당신의 포도 맛, 달콤한가요?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혹은 과일 재배 농부의 노심초사 과학영농 덕분인지, 4월의 마지막 날 출근길 탐스럽게 익은 포도송이를 올해 처음으로 환하게 만났지요. 동이 트면 부지런히 문을 여는 동네 길가 '총각네 과일가게' 총각들이 가지런히 진열한 과일상자 속 하얀 종이 포장 봉지에 담은 수줍은 햇 청포도가 햇빛을 받아 사파이어 빛을 보석처럼 반짝이며 '저를 데려가 주세요~' 고혹스러운 미소로 저를 유혹했지요. 성미 급한 제가 출근길 차를 급히 길가에 세워 두고 "안녕하세요. 청포도 한 송이 주세요~" 새 아침 마수걸이 손님이 되어 청포도 알 하나 툭 터트려 입에 물었지요.


태양신과 토양과 농부가 선물한 포도송이의 시큼 달콤함은 힘겨운 생활물가의 짐을 깜빡 잊도록, 포도와 함께 힐링(Healing)의 1분을 잠깐 제공해 주었지요. 순간 '아~ 이 달콤함이 살아 있는 이웃들의 남은 생애로 쭈욱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순진한 의식의 흐름을 되뇌다 퍼뜩 정신 차려 현실로 돌아옵니다. 다시 긴장감으로 시동을 켜고 4월의 마무리를 위한 치열하고 장렬한 비즈니스(Business)의 세상으로 가기 위해 소음의 도시고속도로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지요. 푸른 포도송이 입 안 가득 굴리며 절대 달콤하지 않은, 물고 물리는 자본주의 전쟁터 일상 속으로~.


달콤 시큼한 포도를 물고 터트리는 기쁨으로 드라이브하는 출근길 아침 5분 뉴스를 듣습니다. 법망의 허점을 이용한 무자본 갭투자 깡통전세 뉴스와 중장비처럼 거칠고 무섭게 오른 생활물가에 지쳐 목숨까지 포기한 뉴스를 뒤로하고 유유히 무심한 듯 소환되는 전세 사기꾼들의 뉴스 기사는 씁쓸함을 넘어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합니다. 짧은 인생 좋은 세상에 화내지 말고 살자는 새해 저의 다짐과 출근길 청포도의 단맛은 짧은 침묵과 함께 분노의 감정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달콤한 햇 포도송이는 분노의 포도송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구를 여러 번 파괴할 만큼의 핵무기가 넘쳐나고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불량한 시대를 염려하기에도 벅찬데, 벚꽃이 떠난 것도 우울한 4월의 마지막 날 집 없는 사람이 희망을 포기하고 생을 마감한 뉴스는 전혀 달달하지도, 먹음직스럽지 않게 변한 분노의 포도가 되어 버렸지요.




화가 치밀어 '분노의 포도'를 씹으며 먼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대학교 학보사 기자 시절 잔소리꾼 편집장 형이 던져 줘서 읽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노동자 작가 존 스타인백(John E. Steinbeck)이 쓴 장편소설『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39 출간)를 생각해 냅니다.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며,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지요. 퇴근 후 책장에서『분노의 포도』표지의 먼지를 털어 내고 아침에 산 청포도 한 알 터트려 씹어 가며 읽어 봅니다. 포도 맛은 여전히 시큼 달콤하지만 제 기분은 그리 달지만은 않습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넘쳐나고 생계가 어려워지면 양같이 착한 노동자 서민들은 분노하고 포악한 늑대의 심정이 된다고 하지요.

소득이 기초생활비에 수렴하는 지점을 경제사회적 용어로 '늑대 지점(Wolf Point)'이라 한다지요. 내 집 살이와 저축은커녕 눈뜨면 급히 올라간 생활물가로 편안한 감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깡통전세 사기꾼과 스팸 메일(Spam Mail) 사냥꾼들의 공포에 시달릴 때 무성한 포도알처럼 서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진다면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그리고 국가에 대한 감정이 늑대의 포악함으로 진행되는 변곡점을 위기의 지점, 즉 '늑대 지점'이라고 한답니다.


작가 존 스타인백은 분노의 포도란 소설을 통해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 사회적 자본주의의 길을 찾도록 지성인들에게 요구한 셈이고, 다행스럽게 늑대 지점까지 무너진 사회의 길로 접어들지는 않았지요. 굶주리고 우울하고 견디기 불행한 아웃사이더로 전락한 이웃들과 나와의 거리를 좁혀 내가 가진 것을 조금부터 나누려는 공동체의 태도만이 함께 살아가는 힘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떠났습니다.


인간은 애초에 이기적인 생존의 유전자, 본능을 가졌지만 서서히 함께 부딪혀 가면서 이웃과 따뜻한 공감을 나눈 공동체로 하나가 되는 자의식에 눈떠 참다운 인간애를 발휘하는 철든 인간으로 나아가는 종족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우리 세대에게 던져 놓고 지구를 떠났지요. 인간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압박과 고통이 무겁고 지독하다 할지라도 평등을 지향하는 커뮤니티(Community)를 이루어 연대한 인간 자신들을 함께 지켜 나가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의 조건 아닐까요?



관점을 좁혀 세계 10위권 부자 국가로 올라선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내부에 대입해 봅니다. 순한 양으로 살아오다가 늑대 지점의 벼랑에 선 이웃들이 얼마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남의 일이라고 하지만 힘겨운 깡통전세에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울먹임과 소식들이 들려오는데, 사회경제적 리더십 반열에 선 사람들의 요즘 마음가짐이 또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리더라면 사회적 늑대 지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누구도 그 지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그 반대편에 있는 희망의 대안과 좌표를 명쾌하게 제시하여 따뜻한 나라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시콤달콤한 청포도를 먹을 자격이 되지 않을까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건강한 분노의 힘으로 연대하며 인간과 이웃들의 생명력과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않도록 뿌리를 내리도록 메시지를 주었지요. 9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제 가슴 뭉클하게 읽히는,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의 공포와 가난의 절망적 상황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지요.

이웃끼리 연대하는 것은 각각의 작은 영혼 한 조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커다란 공동체 영혼 한 조각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에서 쫓겨나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한, 늑대 지점의 바닥에서 고된 삶을 이어간 이스라엘 백성같이 살아가는 분들이 아직 지구촌과 우리나라에도 실존하고 있음을, 손톱 밑의 가시로 여기며 분노하며 치유하는 국민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며, 청포도 맛보기를 소망합니다.



저녁 산책길 남은 청포도를 먹으며, 나의 이기심이 늑대를 닮은 부분이 있는지 여기저기 마음의 거울을 꺼내 따져 봅니다. 우선 내가 늑대가 되지 않아야 하고, 이웃들을 늑대가 아닌 순한 양으로 대접하는 인간이 되라고, 아름다운 분노를 잊지 말라고 존 스타인백 형님이 산책길 물소리 따라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힘겨워도 늑대 지점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형님과 함께 춤을 춥니다.




존 스타인백 형님, 세상을 변화시킬 늑대의 분노로 우리 와인 한잔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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