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는 것과 미치치 않는 것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의 차이-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by 변미용
어리석고 캄캄했던 어느 날에,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가로수 밑동에 손을 짚은 적이 있다. 축축한 나무껍질의 감촉이 차가운 불처럼 손바닥을 태웠다. 가슴이 얼음처럼, 수없는 금을 그으며 갈라졌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만났다는 것을, 이제 손을 떼고 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도 그 순간 부인할 길이 없었다.


지면이나 모니터속에서 만난 작가 한강은 하늘거리는 식물을 연상시키듯 여리하고 단아했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추구하는 작품 속 여주인공들은 나무를 동경하고 나무가 되고 싶어한다.

20160515_072552.jpg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땅속으로 파고 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10년전 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한강의 [몽고반점]을 처음 접했을 때, 그 파격적인 소재가 제법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해서는 안될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를 거슬러도 수없이 회자되었던 것이지만, [몽고반점]은 언급하기에 다소 불편한 형부와 처제의 육체적 교합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때 스스로에게 한 변명(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었지만)은 "그래, 이상문학상이니까..."였다.

그 한강을 십년이 훌쩍 지나서 이렇게 자주 언론과 인터넷상에서 보게 될 줄이야...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게 되었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읽고 싶지 않았다. 무슨 상이다...하면 언론에서 있는 힘껏 과대포장해서 특수효과를 누리는 것을 영화며, 연극이며, 책이며, 사회 면면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상승과 하락이 있지만, 상승폭이 급격하다보면 추락의 고통도 더 클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인게다. 암튼...나는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채식주의자]와 관련된 인터넷 뉴스에서 이 소설이 [몽고반점]의 이어진 연결 소설 중의 전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그럼 내가 읽기 불편해하며 이해하기 힘들었던 [몽고반점]이 [채식주의자]를 통해 좀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까? 뭔가 개연성있는 이야기가 전편에 흐르고 있을까?"

그래서 나는 결국 [채식주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에 이르는 이야기의 연결고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채식주의자] -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싫어하는 것 외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영혜와 평범함때문에 그녀와 결혼한 영혜 남편이 영혜가 꾼 꿈을 계기로 영혜가 채식을 선언하고 육식을 거부하게 되면서부터 삐걱거리다 결국엔 언니 인혜의 집들이 가족모임에서 극단의 행동을 표출하게 된다는 이야기

[몽고반점] - 비디오아트 작가이지만 부인의 경제력에 의존하고 있는 그(영혜의 형부이자 인혜의 남편)가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처제 영혜(채식주의 선언 이후로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의 엉덩이에 있는 엄지손가락만한 몽고반점으로 부터 촉발된 욕망과 예술의 경계에서 꿈틀거리다 결국은 예술을 가장한, 아니 예술을 꽃피우기 위해 오묘한 성적 교합을 갖게 됨. 그리고 눈 뜬 아침, 그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아내 인혜가 정신병원에 연락한다는 이야기

[나무불꽃] - 정상 판명이 난 남편은 잠적하고, 여섯살난 아들을 홀로 키우며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생 영혜를 돌보는 인혜의 이야기...


제일 공감할 수 있었던 편은 [나무불꽃]이었다.

인혜의 처절한 삶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었기 때문일게다.


아이와 함께 세상을 버릴까 하다가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인혜를 둘러싼 일련의 극명한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뜨거운 분노와 절망과 힘겨움을 가슴에 껴안고도 미칠 수도 , 죽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인혜의 아픔과 절망이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죽음으로써 나무가 되려고 하는 영혜를 맞닥뜨릴 때마다 핏빛같은 울음이 가슴깊은 곳에서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십년 전 [몽고반점]을 읽었을 때와 십년이 흐른 지금 [몽고반점]을 읽었을 때...느낌이 사뭇 다르다.

[채식주의자]가 개연성을 부여했기 때문일수도 있겠고...

여전히 '예술'과 '욕망'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폭이 다른 삶을 이해할만큼은 넓어졌기 때문인가보다.


작가 한강을 응원한다.

소설이, 문학이 소외받는 시대에 사람들을 문학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끌림 '이 오래가기를 바래본다.


[채식주의자]는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선정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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