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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일리 Jan 02. 2024

2023년 대만여행의 기록(3)

조용한 빛의 도시, 가오슝

여행, 아름답다. 세번째 이야기


 타이베이에서 가오슝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타이베이에서 마지막 시간은 융캉제에서 보내기로 했다. 융캉제 골목을 산책하다 보니, 5년 전 어머니와 융캉제에 왔던 기억이 났다. 대만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여기 왔었다. 비가 많이 온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5년 전 대만 여행을 함께 추억했다. 여행 지원금을 사용할 목적으로 소품 가게에서 예쁜 양산과 귀여운 소품들을 사고 다음 목적지인 가오슝으로 향했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기차를 타니 가오슝에 도착했다. 중간에 열차가 ‘타이중’ 역에서 정차했었는데 다음엔 타이중도 여행해 봐야지 생각하며 유심히 밖을 보았다. 가오슝 ‘신쭤잉’역에 내리니 더운 공기가 확 올라왔다. 초가을 같았던 타이베이에 비해 가오슝은 한여름에 가까운 날씨였다. 호텔 체크인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우리는 점심 식사를 먼저 하고 미리 알아둔 빙수 가게도 가기로 했다. 드디어 한국에서부터 기대하던 ‘새우 딤섬’을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빙수 가게 또한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맛이었다. 서울에서 이건 얼마였을 텐데 대만은 고작 이 가격에 이 퀄리티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신난다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우리는 가오슝 야경 명소인 영국 영사관을 향해 출발했다. 시즈완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는 게 쉽지 않아서 택시를 잡았다. 도착한 영국 영사관 입구는 외지고 가파른 언덕이 있었다. 초저녁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해가 져서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평소 겁이 많은 나는 은지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혼자서 오진 않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높은 영사관 건물에서 내려다보니 왼쪽에는 도시, 오른쪽에는 바다가 보였다. 도시의 불빛은 제법 화려했지만 매우 조용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바다에 떠있는 몇 척의 배를 보니 제주도 새벽 바다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바다가 없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바다가 신비롭고 신기하다.   

  

 영국 영사관에서 내려온 우리는 가오슝에 있는 대규모 예술 단지인 ‘보얼 예술특구’로 향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탔는데 택시 기사와 의사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다. 서로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답답해하는 상황이었는데 이건 우리가 여행하면서 겪는 일 중 가장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택시 기사는 우리가 내려온 영사관 방향만 가리켰고 우리는 보얼이라는 단어 반복했다. 중간에 우리가 대화를 포기하고 택시에서 내리려 할 때마다 택시 기사는 원치 않는 듯 우리를 말렸다. 한참 서로 헤매다가 택시 기사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알아채고 목적지에서 정확하게 내려주었다.

“은지야. 난 네가 없었으면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 택시에서 내려버렸을 거 같아.”

“나도 그래.”

 그렇게 도착한 ‘보얼 예술특구’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멋있었다. 상점 안에도 볼게 많았지만 골목 사이사이에 조형물과 조명이 아름다웠다. 게다가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이렇게 분위기 있고 멋진 장소에 우리 둘만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한참을 분수대에서 물 맞으며 놀다가 궁금증이 생겼다.

“근데 가오슝 사람들은 다 어디 있을까?”


이 도시는 공간이 넓고 매우 아름다운데 비해 사람들이 없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이허강 주변을 거니는데 하얀 다리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가오슝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패키지 관광객들을 본 것이어서 가오슝브릿지가 유명한 곳이기는 한 것 같았다. 은지와 나는 한때 홍콩을 매우 좋아했었다. 그래서 함께 몇 번의 홍콩 여행을 했었다. 대만의 어떤 부분은 비슷하면 비슷한대로, 다르면 다른대로 홍콩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이곳이 조용한 빛의 도시라면 홍콩은 어느 노래 가사처럼 별들마저도 소근대는 화려한 빛의 도시이리라. 

“심포니 오브 나이트가 생각난다. 그에 비해 관광객은 적지만.”

“스타의 거리는 잘 있을까? 우리 다시 홍콩에 꼭 가자.”

“나는 그때 홍콩은 1년에 한번은 꼭 가는 곳인 줄 알았어.”

 추억을 많이 공유하고 있는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정말 소중하다.


 우리는 야시장을 들렀다가 대만 여행 카페에서 추천받은 일본식 이자카야를 갔다.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마시면서 가오슝의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다. 이자카야 직원은 내년에 한국을 여행 할 예정이라며 우리나라의 문화와 대중음악에 매력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계산할 때 그 여행이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그곳을 나왔다.


 평소 신경이 예민한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거의 못 자는 편이라 수면제를 처방받아 여행을 다녀야 했었다. 5년 전 대만 여행에서도 여행 첫날 한 시간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약국에서 급하게 수면유도제를 사야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날 호텔에서 쓰러져 잠든 후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이번 여행에 수면제를 준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여행하면서 단 한 번도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 전 여행이 겉으론 멋진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큰 스트레스로 와닿았다면 이번 여행은 내 모습 그대로 즐겁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덧 나답게 아름다운 여행은 절반을 넘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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