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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Mar 07. 2020

숲으로 입장합니다

밖에 나가야겠다


아침에 눈떠서 잠들때까지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요.
'이번주가 고비다.'

'생각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한 예방책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그동안 못봤던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마음먹고
책도 읽고 숲용품들도 차근히 용도대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묵은 먼지도 걷어냈습니다.

그동안 못했던 집안청소도 열심히 하고 보니 일주일은 잘 지나갔습니다.

열흘쯤 지나니 정말 답답해서 집에 못있겠더라구요
사회적 거리는 두되 숲적 거리는 가까이 해도 되겠다 싶어서 가까운 도솔산으로 갔습니다.

박씨재실 대문 앞에서 숲 선생님들과 만났습니다.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도 웃는 눈이 반갑습니다



"저 위에 뭐가 있어요."

"어디? 어디에 있어요?"
"대팻집 나무위에 저거 동그란거 안보여요?"

산에 왔지만 숲해설가는 산에 높이못올라갑니다.
밖에 나와 신선한 공기를 쐬려고 나오긴 했지만 숲해설가는 걸음이 느립니다.
보이는게 많아서요. 궁금하거든요. 눈맞춰야 할 숲의 온갖 생명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잖아요.



관목이라지만 높다랗게 뻗어나간 가지의 꼭대기에 매달린 좀사마귀 알집을 보는 숲해설가의 시력은
독수리 시력임을 인정합니다.
가지 끝을 당겨 좀사마귀 알집을 들여다보며풀잎 같은 가느다란 사마귀약충이 나올 모습을 그려봅니다

탑을 쌓듯이 층층이 자란 대팻집 나무의 짧은 가지도 눈에 새깁니다.



박씨재실에서 메타길 올라가려면 만나는 길가 웅덩이입니다.
손바닥만한 길가 웅덩이에 해마다 도롱뇽, 개구리들이 알을 낳습니다.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때론 트럭도 승용차도 오고가는 길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저 웅덩이도 차바퀴가 패여서 만들어진 웅덩이입니다.
바퀴에 깔리면 어쩌려고...



여기는 길 가운데입니다.

위 사진의 길 가장자리와 가운데 웅덩이 중 어느쪽이 안전할까요?

가장자리 웅덩이는 가물을 때면 물이 먼저 없어집니다. 물이 마르기 전에 부화하여 성체로 자란다면 다행이지만 물이 말라버리면 알은 쭉정이가 되어버릴겁니다.
가운데는 물은 많은데 사람들 눈에 잘 띄지요. 만져보고 손에도 올려놓습니다.

사람의 손은 알에게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습니다.

반면에 왼쪽의 계곡은 물도 많고 사람들로부터 안전한 곳이지만 물살이 세서 알이 떠내려갈 위험이 있습니다.  어느쪽이 안전할지 수많은 망설임 끝에 도롱뇽은 지금의 이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선택의 결과는 이제 알 자신에게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끝에 삶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따뜻한 쪽에선 벌써 꼬물거리는 도롱뇽 올챙이들이 깨어나 힘차게 헤업칩니다.

몇마리 일까요?

내가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는걸 올챙이들이 알아요. 솔잎 밑으로 뻘을 파고 들어가 숨습니다



몸통이 볼록해진 올챙이 앞다리가 나올려나 봅니다. 도롱뇽 올챙이는 개구리 올챙이와 달리 앞다리 먼저 나온답니다



여름이면 연한 분홍색 꽃이 자잘하게 피는 낭아초입니다.

여리하고 파리한 이파리가 찬 바람을 뚫고 나와 햇볕을 모읍니다.


 매니큐 바른 것처럼 뾰족 손톱끝이 빨갛던 겨울눈에서 찔레가 새순을 내놨습니다 .

 연두에 분홍의 콜라보가 참 곱습니다.

찔레순 보고 난데없이 침이 한가득 고입니다

(댕강댕강 꺽어서 마요네즈에 콕 찍어먹음 맛있겠다)고 생각만 했습니다.



어젯밤 고라니가 다녀갔나봅니다.

말랑하고 신선한 응이 조로록 얌전히도 놓여있습니다.

숲속에 빈 곳이 있어서 눈이 커다란 짐승이 여린 찔레순 따먹고 한뎃잠을 자고 갑니다.




하늘에도 빈 곳이 있어서

서로에게 시린 어깨를 내어 줍니다

나무가 비켜 선 곳에 작은 틈이 생깁니다.

이제 태어날 나뭇잎이 빈 곳을 채우고 나뭇가지들은 서로의 몸에 길을 냅니다.

빈 곳으로 바람이 지나갈 것을 나무들도 알고 있습니다.



목련이 바깥을 엿봅니다.

아직은 꽃을 틔울 때가 아니라는 듯 겨울눈에 달린 털옷을 바짝 조입니다.

사람들도 마스크를 코 끝 위로 바짝 올립니다.





물결이 일렁이는 햇볕을 저어 앞으로 나갑니다

반짝이는 것들은 참 낭만적입니다.

현실이 어려워도 무작정 희망적인 생각이 넘실거립니다.




분명히 굴참나무 근처에서 딱따구리가 내는 딱딱딱 소리를 들었습니다만

천천히 소리죽여 다가갔는데 더 이상 구멍파는 소리는 들을수가 없었지요.

대신 꺽어진 가지 바로 아래 작은 구멍에 조그만 새가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왼쪽 나무 위로 날아가 숨을 죽이고 사람들을 지켜봅니다.

딱새인것 같습니다.

조마조마한 딱새의 심박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러 생명 먹여 살리는 대단한 나무입니다.


실크이불을 덮어놓은 거미알집 니다.

엄마거미의 알뜰한 바느질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계곡을 올라가다가 만난 순대들,고운 뻘흙이 도롱뇽 알들을 숨기기라도 하듯 켜켜이 덮었습니다.알들이 하얘서 다 죽어버린줄 알았어요.
 죽은 것이 아니고 이제 올챙이로 깨어날려고 변화하는 모습이랍니다.



잘 보면 메타세쿼이어 나무 등걸 밑에 모래깔때기를 찾을수 있습니다.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귀신의 함정입니다.

개미귀신이 파놓은 함정은 2밀리정도 밖에 안되요. 아직 먹은게 변변찮은 개미귀신은

크지 못했습니다.

눈꼽보다 작은 구멍하나 하늘로 내고 숨죽인 애벌레가 보슬보슬한 땅 아래 고픈 배를 쥐고

자기보다도 더 작은 개미가 지나가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작아서 더 간절할테지요.

내일은 꽃이 문을 열고 벌을 부를테지요.

한방울의 꿀을 미끼 삼아 부지런한 날개짓에 묻어갈 꽃가루는

간절히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원합니다.



간절함은 꽃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혹벌은 부지런히 나무가지를 상처를내고 나뭇가지는 상처를 덮기 위해 부지런히 새살을 만듭니다

가지끝에 생긴 혹은 혹벌애벌레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나무가 혹벌에게 진 걸까요?

새 생명을 만들려는 간절함은 벌레혹을 뚫고 싹을 준비했습니다.

싹이 터 연한 잎을 펼칠때쯤이면 애벌레도 깨어날 겁니다.

애벌레와 여린 잎의 첫 대면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무는 새잎을 틔우고 잎은 열심히 햇볕을 모아 양분을 만듭니다.

나무는 자신을 위해서도 나뭇잎을 만들고 얼마간은 애벌레의 몫으로도 나뭇잎을 만듭니다.



가죽나무의 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엽흔이 하트를 퐁퐁 날려줍니다

하루종일 기분 좋은 햇살이 나를 따라 다닙니다.




가혹한 시간이 우리를 타넘고 있기에 그저 모두가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이 무사하게 지나가기를!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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