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원

by 부엉이숲

새해가 되었다. 막 동이 트는 바깥은 푸른 어둠이 펼쳐놓은 차가운 한기가 두터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새해 첫날은 어제와는 다른 신선함이 있다. 새해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작년에 건강 때문에 힘들었던 일을 생각하면 드는 염려이다.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불안한 몸과 정신을 바로잡으려고 작년 여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평생 안 하던 운동이라 어려웠지만 코치님이 내 몸 상태에 맞는 쉬운 운동법부터 가르쳐주셔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제법 겨울다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만든 혹독한 추위 때문에 외출이 망설여진다. 그래도 운동은 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며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집을 나선다. 두툼한 점퍼와 따뜻한 속옷과 니트 머플러, 두꺼운 장갑을 끼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운동하러 가면 처음엔 PT룸에 가서 가볍게 맨몸 운동을 한다. 유리 벽면에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큰 글자 아래에 형광색 글들이 가득 쓰여 있고 PT룸 앞의 테이블에 알록달록한 마카 펜이 놓여있다. ‘날씬해지고' 싶다거나, ‘건강하자’, ‘다이어트 각오’를 다지는 새해 소원들이 푸른 뱀의 해에 맞는 뱀 캐릭터와 근육이 우람한 닌자 거북 캐릭터 옆으로 재치 있게 쓰여 있다.
“여기에 새해 소원을 적는 거예요.”
“회원님, 새해 소원 있어요? 한 번 써보세요.”

다른 이의 소원들을 읽어보는 나에게 코치님이 새해소원을 물어본다.
“새해엔 팔다리에 근육이 생기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는데 근육이 안 붙어요.”

“회원님 나이에 근육이 생기는 건 어려워요. 있는 근육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해요.”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이대로 쭉 하면 근육이 생길 거라는 착각을 잠깐 했다. 늘어진 팔다리 살은 어떻게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엔 남자 형제들보다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부모님께 증명하려고 나는 무엇에든지 억척스럽게 열심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범 이상을 오르지 못하는 나는 여자로 태어난 성별에 억울함을 전가하면서라도 버티고 견뎠다. 결혼생활 동안은 양보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당연히 강요되었기에 나를 내려놓고 살아왔다.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아이들도 독립했으므로 나는 뜻밖의 자유를 얻은 듯 홀가분했다. 나는 나의 일에 마음 놓고 매진하였다. 그 일이 내 몸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나를 몰아세우고 최고가 되려 하고, 누구에게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나의 화를 오히려 키웠을 줄은 나중에 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완경 이후 폐경기 증후군도 없었고,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 기회가 주어졌다고 홀가분했었는데 암에 걸리고 보니 덜컥 삶이 무섭고 자신 없어졌다. 유방암 수술의 성공률과 생존율은 비교적 높다고 의사 선생님은 안심하라고 했지만 가슴이라고 하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몸의 일부가 박탈된다는 두려움과 직면했다. 내가 더 이상 건강하고 젊은 여성이 아니라는 자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여성으로서 매력적이지 않지만 삶의 지혜를 오랜 세월 동안 체득한 마음 넓고 현명한 할머니가 된다고 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나는 여전히 생생한 에너지에 휩싸인 생명력이 넘치는 젊은 몸의 주인이고 싶었다. 그동안 성실하고 묵묵하게 견뎌왔던 억압의 시간에서 비로소 풀려났건만 늙고 매력 없는 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암에 걸린 나의 몸은 이미 정신적으로 패배한 듯 미리 지쳐버렸다.


수술 후 안정을 찾고 나자 나의 몸에 미안함과 반성이 비로소 들었다.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스스로 나를 옭아맸던 억압의 감정을 가만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으로 당당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였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살았었다. 여유 있고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하고 “난 잘할 거야, 난 최고가 될 거야, 난 누구보다 뛰어나,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할 거야...” 이렇게 나 자신을 감옥에 가두고 나의 몸을 다그쳤다. 닦달과 조바심은 염증을 만들고 바쁘게 몰아치는 시간은 혈관에 바삐 염증을 실어 날라 암세포를 만들었다. 수술한 이후의 나의 몸은 전과는 다르게 힘이 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팔팔하던 나의 몸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억울해하지 않는다. 나의 몸을 인정하고 이 상황에서 건강을 유지하며 내게 주어진 삶의 무대에서 자유롭고 싶다. 그러자면 나를 어찌해야 할까.

주간보호센터에 가서 정기적으로 노인들을 위한 산림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을 해왔다. 내가 그들을 부르는 호칭은 ‘어르신’, 혹은 ‘아버님’, ‘어머님’이다. 바른 호칭은 아니라고 생각되나, 딱히 어울리는 호칭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왜인지 딱딱하고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님’이라고 불러드리면 노년의 여성분들은 더 좋아하신다. ‘어머님’들은 특히 노년의 남성분들보다 더 수업에 집중하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내 손을 꼭 잡고

“선생님이 좋아요, 다음에도 꼭 다시 와요.”

하시면서 자신의 기분을 솔직하게 드러내신다. 비록 일회 교육이어서 다음에도 다시 갈 기회가 없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분의 손을 마주 잡고

“어머님, 다음에 다시 올게요. 건강히 지내시다가 다시 만나요.”

라고 손등을 두드려 드린다. 지금 노년을 맞아 쭈글쭈글해지고 굽은 몸을 가진 그분들은 아마도 자기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하여 살지 못했으리라 추측한다. 정도는 약하지만 나도 그런 시절을 보내왔기에 가끔 욱하는 심정이 들 때가 있는데 그분들은 오죽하랴. 이런 상념에 젖어 들 때면 내가 나의 삶에 감사하지 못한 태도가 부끄러워진다. 짧은 시간동안 하는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소녀처럼 천진하게 웃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이 듦이 약하고 불안한 상태가 아님을 깨닫는다. 지난한 삶을 살아오셨던 분들이 오로지 이 시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의 미래를 본다. 나는 그분들처럼 지금보다 더 나이 든 나의 삶에 기뻐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노년의 여성이 가지는 지혜와 경험은 오히려 빛나는 자산임을 알았다. 노년 여성을 불완전하거나 부차적인 존재로 보았던 편견을 반성한다. 내 신체와 건강의 변화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새해에는 나이 들어감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낙천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아프고 변화할 테지만, 이를 한탄하거나 부정하지 않겠다. 건강한 식사와 운동으로 즐겁게 살아보겠다.

5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열심히 운동을 하여도 근육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자신감만큼은 쑥쑥 자랐다. 근육이 느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코치님의 정확한 팩트 체크에 새해소원을 무엇이라고 쓸지 생각하면서 펜을 들어 적었다.

“건강 부자, 근육 부자. 새해에도 힘차게 잘하자!!”

라고 마카펜의 굵은 심지 쪽으로 진하게 쓴 나의 소원은 매우 진지해 보인다. 우람한 근육이 멋진 코치님의 소원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새해 소원이 뭐예요?”

“하하 저는 잘 노는 거요. 작년처럼 올해도 잘 놀고 싶어요.”

“앗, 그거 참 근사한 소원이네요. 저도 그거 소원할래요.”

아니 이렇게 내가 소원에 욕심을 내도 될까. 있는 근육과 있는 건강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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