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다시 만나다
목동 단지 매물을 보여주셨던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사장님 : 곧 조합설립이 되는데 그 전에 꼭 팔아야 하는 매물이 있어서요. 빠른 잔금 조건으로 매매 가능해요.
마침 오전은 마포, 오후는 흑석 신축들을 보기로 약속이 잡혀있던 터라 그 사이에 목동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보통의 남편들은 주차난도 심하고 집도 좁은 구축 실거주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집을 보러 가는 것부터 설득해야 했다.
남편 : 안할건데 굳이 보러 가야 해?
나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보러 가자.
남편 : 가격은 어느 정도까지 조정되는데?
나 : 일단 보고 나서 말해봐야지.
하필 대진운도 안 좋아서 신축들 사이에 구축을 보니 남편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집을 보러 갔을 때 마침 1층의 다른 집이 수리 중이라서 인테리어가 거의 완성된 집을 구경해볼 수 있었다. 이 정도로 수리해서 살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나온 매물은 매도인 가족이 10년 넘게 실거주하며 깔끔하게 사용한 집이라서 대대적으로 공사할 부분은 없어 보였다. 도배, 장판, 조명 정도만 수리하면 거주하기 나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가격이었다. 생각보다 사업이 빨리 진행되면서 당장 매도하지 않으면 현금청산의 리스크가 있는 상황이라 가격 조정이 가능했다.
사장님 : 매도인이 빨리 파셔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나 : 네, 가격은 어느 정도 조정되는 걸까요?
사장님 : OO억 정도면 어떠세요?
나 : 매도인이 동의하신 가격이에요? 일단 저도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사장님 : 네, 다른 매수대기자도 있어서요. 생각해보시고 오늘 꼭 연락주세요.
사장님이 제시한 가격이 너무 좋았다. 그 단지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단지들은 이미 더 높은 가격에 실거래가 찍혔었고, 같이 봤던 매물들의 호가는 2억 정도 높았다. 내가 본 매물 중에서 최고의 급매였고 빠른 잔금이 가능한 내 조건과도 잘 맞았다. 가격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흑석 신축 매수가 1순위였기 때문에 일단 보류했다.
나 : 사장님, 일단 제가 당장 결정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다 흑석 신축 투자가 불발되면서 일주일이 지나고 바로 목동 사장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나 : 사장님, 그 때 그 집 거래되었을까요? 거래 안되었으면 제가 하고 싶어서 연락드려요.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사장님께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 그 집 아직 거래 가능해요!!
나 : 그럼 그때 말씀하셨던 매매가에서 OO 정도 조정되면 제가 할게요.
사장님 : 네, 내일 오전까지 연락드릴게요.
드디어 매수가 가까워져 왔음을 직감했다.
목동 신시가지 단지를 살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토허제로 지정되기 전 전세를 끼고 사놓을 수도 있었고, 정비계획 수립 전 가격이 크게 움직이지 않았을 때 살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구축이라서, 주차가 불편해서, 좁은 집이 싫어서, 재건축이 불투명해서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단지를 매수하지 못했다. 그때 조금 용기내서 움직였다면 지금쯤 이미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경우 사업진행단계에 따라 급매를 잡을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다. 특히 조합설립 전 다물권자의 물건은 급매로 나오기 마련이므로 그 타이밍을 노리는 것도 방법이다. 한 사업지에 여러 개의 물건을 갖고 있는 경우 '다물권자'라고 불리는데 조합 설립 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물건을 매도하지 않으면 현금청산을 당한다. 현금청산 당하는 것보다는 급매로라도 매도를 하는 게 매도자 입장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가격 조정을 요청해볼 수 있다. 특히 조합설립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매수인이 조금 더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