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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May 25. 2020

예민하게, 자주, 임신과 아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 시험관 과정 중에 쓰는 난임 일기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을 보기 시작했다. 1명의 ‘교수’가 기획하고 8명의 ‘잃을 것 없는 자들’이 벌이는 범죄 드라마다. 조폐소에 잠입해, 그들만의 조건들을 내세우고, 경찰들의 계획을 꿰뚫어 보며, 돈을 찍어내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범죄를 그리는 드라마. 시즌1의 첫 번째 에피소드, 뇌리에 꽂힌 대사가 있었다.



“난 아이가 셋이야. 모두 인공수정으로 얻었지.” 조폐국 국장은 불륜 관계인 비서가 임신했다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아내와 헤어질 수도, 너의 임신을 축복해 줄 수도 없다는 서글픈 말. 심장 쫄깃해지는 범죄 드라마를 보며, 두 사랑 모두 놓지 않겠다는 파렴치한의 대사를 듣는 순간에 나는 생각했다.


인공수정에 세 번이나 성공했다고? 부럽다.


지난 12월,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난임 병원에서의 시술, 인공수정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나는 꽤 낙담했다.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시술은 다시 하면 되니까!’의 마음으로 임했다면 그만인 것을 왜 그리 슬퍼했을까. 그때의 일기를 보면 나는 꽤 울었고,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많이 애썼던 것 같다.


드라마에는 임신에 관한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낙태를 하겠다는 비서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며 말리는 범죄자, 임신했으니 ‘몸을 더 소중히 하라’는 또 다른 범죄자까지. 조폐국에서 벌이는 행동과 결이 다른 이런 대사들은 자꾸만 내게 여운을 남긴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들은 임신을 준비하는 기본자세 ‘마음을 놓으라’는 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불편해한다. 반면, 이런 생각도 한다. ‘자꾸 떠오르는 걸 어떡해! 게다가 난 시험관 진행 중이라고!’


그래서 결론 내린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임신, 아기 등에 대해서 선택적 과잉반응 상태인 것 같다고. 그리고 결심했다. 선택적 과잉반응 상태 역시 ‘마음을 놓는’ 상태로 인정하겠으며, 이런 나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맛있는 음식이 0칼로리이듯, 나 편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생각들이 곧 ‘좋은 생각’ 아닐까? 12일 차에 접어든 주사 효과 때문인지 아랫배가 묵직하다. 따뜻하게 찜질해주면서 <종이의 집>을 마저 봐야겠다.


그리고 다짐했다.

만끽하겠다. 기다림과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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