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정해진 곳에 얼굴을 비출 때

by 선우

약속한 듯이

그대가 정해진 곳에 얼굴을 비출 때


병정같이 척척 움직이는 팔과 다리가

당신과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멀어져 버린다


새초롬함이 입가에 언뜻 머물다가

휙하며 책을 넘기듯 바뀌는 표정마저 뇌리에 남아


나를 관통한 총알처럼

안과 바깥이 비치는 흔적에 당신뿐이 남았다


포자의 잔상들이 내 무료한 하루의 호수를

종을 치려 줄을 당기듯 날 퍼뜩 흔들어버릴 때


같은 곳에 얼굴을 비추던 우리는

당신도 당신의 그 무언가를

나도 나만의 그 어떤 것을

붙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 수 없지만

함부로 가늠할 수 없지만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실패의 어느 총량이 요구되는 것처럼


마주하는 당신 표정에

지금 난

물들이듯 미소를 지어 보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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