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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17. 2022

데자뷔

  실체적인 이유를 찾기 전까지 프레드릭은 골목 깊숙한 단골 바에서 일어나지 않을 작정이었다. 땅콩 파편이 흩뿌려져 있는 테이블 위에 버드와이저 한 병이 놓였다. 휘슬 바의 오너이자 바텐더인 빌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프레드릭은 눈을 내리깔면서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병을 위로 들어 보였다. 빌리는 행주를 오른쪽 어깨에 휙 올려놓으며 고개를 좌로 우로 저었다. 이번에도 외상이냐는 빌리의 물음 섞인 체념의 표정에 프레드릭은 주의가 산만해졌지만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놓친 부분이 어디서부터였더라. 오늘 아침 침대에서 늦으막이 일어나 커피를 한잔 내려마셨고, 익숙한 향기가 몸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집 앞 꽃집에서 커다란 수국 한 다발을 샀다는 사실까지는 명백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두 블록 너머에 티나의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깜짝 선물이었기 때문에 기대에 부푼 발걸음으로 한 번에 4층까지 달음박 쳐서 올라갔고, 귀에 익은 차임벨을 눌렀다. 티나와 어젯밤의 일에 대해 긴히 논의를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한참을 문을 두드려봐도 나오지 않는 티나의 모습에 당황한 프레드릭은 꽃다발을 문 앞에 놓아두고 오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베이커리에 들러 빵을 샀고,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한 뒤 저녁쯔음에 단골 바의 명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지금 상황인 것이다. 어느새 다 비워버린 한 병에 프레드릭은 손을 들어 빌리를 찾았다. 빌리는 다른 손님과 대화 중이었다.

   순간 프레드릭은 자신의 손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귀가 멍해지고 소리가 사라졌다. 눈이 어둠에 잠기고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소란스러운 말소리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며 프레드릭은 기절했다.

  프레드릭은 눈을 떴다. 자신의 방에서.

  그리고 익숙한 향기에 왠지 모를 향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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