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흰옷을 사지 않는 이유는
언젠가 때가 탈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허여멀건한 그 옷에
빨간 국물이 튀거나
까만 먼지가 붙거나
청색 볼펜을 긋거나
그래 버리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바엔
아예 검어져 버리는 게 낫죠
내 마음도 처음엔 하얀색이었을까요
애초에 검은 마음이면
상처 입어도 아프지 않았을까요
피 흘려도 티 나지 않았을까요
흰옷을 사지 않고 애초에
검은 옷을 입었으면 다치지 않았을까요
다들 입는 그 검은 옷
그들과 함께 깔깔 거리며 나
군중 속으로 숨어버릴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