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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식당과 조직 생활을 통해 본 가스라이팅

한국 조직사회에 내재된 정서적 통제 메커니즘

by JINOC

한국 사회의 방송 콘텐츠는 자주 그 시대의 조직문화를 반영하거나 압축한다. 최근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에서 발생한 소위 ‘설루션’ 논란은,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의 논쟁을 넘어 조직 내부에 구조화된 권력의 언어, 감정 통제, 그리고 정서적 폭력의 문제를 정확히 포착한 사례였다. 표면적으로는 문제 해결을 위한 피드백이었지만, 실상은 수용자의 현실 인식을 무력화하고 자존감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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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러한 현상을 단지 개인 간의 갈등이나 감정의 충돌로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가스라이팅을 시스템화하는 방식, 그 방식이 왜 유독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재현되는지, 그리고 조직이 이를 구조적으로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자 한다.


‘가스라이팅 조직’의 작동 방식

피드백이 아닌 감정 조정

조직 내에서 가스라이팅은 ‘피드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그 본질은 평가가 아니라 통제다. 행동을 개선하도록 돕기보다는 ‘당신은 틀렸다’는 암시를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수용자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여기서 핵심은 권력관계의 일방성이다. 피드백을 주는 쪽은 자신의 해석과 감정을 절대화하고, 수용자에게는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어는 다음과 같다.

“이게 최선입니까?”

“당신은 기본이 안 되어 있어요.”

“왜 그렇게 방어적이세요?”

이 실행 가능한 피드백을 제공하지 않으며, 결국 수용자를 심리적으로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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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의 유동성과 인식의 교란

가스라이팅 조직의 또 하나의 특징은 기준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디테일이 문제였고, 다른 날은 속도가 문제이며, 이후에는 태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기준이 고정되지 않으면, 구성원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 수 없고, 자기 판단 기준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의 본질적 목표다


왜 한국의 조직은 가스라이팅에 취약한가?

위계 중심의 사회 구조와 정서적 복종의 내면화

한국의 조직문화는 여전히 유교적 위계질서, 군대식 커뮤니케이션, 학연・지연 중심의 비공식 권력 구조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 체계는 의사결정을 분산하기보다는 집중시키고, 질문보다는 ‘눈치’를, 문제 제기보다는 정서적 일치를 우선시한다.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 아니라, 권위자의 감정을 해석하고 이에 정서적으로 동조하는 능력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문제 제기는 쉽게 ‘불만’으로, 침묵은 ‘충성’으로 간주된다. 이 구조는 트집성 피드백과 정서적 압박을 양산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감정노동과 불확정성의 구조화

감정노동은 더 이상 특정 직무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의 다수 조직은 감정의 동기화와 감정의 전략적 사용을 ‘성과의 일환’으로 취급한다. 특히 서비스 직군이나 창의직군에서조차 ‘열정’, ‘주인의식’, ‘몰입’ 등의 감정적 기준이 구체적 업무성과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자기 검열과 감정 왜곡을 강요한다. 즉, ‘좋은 직원’은 업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고 조직 정서에 일치하는 사람이다.

출처 : 청년의사


도구적 합리성과 심리적 안전의 부재

조직 내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나쁜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의 일환으로 작동한다. 하버마스는 도구적 합리성을,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다루는 합리성이라 정의했다. 이 틀 안에서 구성원은 문제 해결의 주체가 아닌 ‘성과 달성의 리소스’로 전락하며, 감정・존재・의미는 제거된다.

또한 심리학자 에이미 에드먼슨이 제시한 ‘심리적 안전(Psychological Safety)’은 여기서 결정적으로 결여된다. 피드백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반론을 제기했을 때 불이익을 받는 구조라면, 해당 조직은 학습조직도 아니고 창의조직도 아니다. 그저 ‘방어적 생존조직’ 일뿐이다.


트집성 피드백을 구조화하는 시스템


현대의 기업은 다양한 이름으로 가스라이팅을 시스템에 내재화하고 있다.

퍼포먼스 리뷰 제도: 모호한 기준과 상시적 비교를 통해 수용자의 자기 의심을 유도

역량 평가 체크리스트: 주관적 지표를 통한 감정적 서열화

피드백 문화 캠페인: ‘솔직한 문화’를 강조하면서 반론권은 부재

리더십 역량 모델: 감정 통제를 ‘리더십’의 핵심 요소로 설정

이러한 제도들은 겉으로는 ‘소통’을, 실제로는 ‘통제’를 지향한다. 결국 피드백은 조직의 가치관이 아니라 권력자의 정서를 반영하는 장치로 전락하게 된다.

출처 : 영화 GAS LIGHTING


가스라이팅 시스템을 해체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은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개인의 성향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피드백은 상호 검증 가능한 기준에 기반해야 한다.

모든 피드백은 반론 가능한 구조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리더는 감정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심리적 안전은 성과와 무관하게, 조직 설계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조직문화는 여전히 트집과 가스라이팅에 익숙하다. 이는 사람을 바꿔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감정의 통제에서 감정의 공유로, 권위의 복종에서 신뢰의 설계로, 이제는 전환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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