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매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담아 펴내는 컬쳐북에 인터뷰이로 제안받았다. 컬쳐북의 존재를 알고 난 후, 내년이든 그 이후든 컬쳐북을 제작하는 TF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인터뷰이로나마 지면을 점유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 실제 인터뷰에 앞서 받은 질문지는 두 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첫 번째 장의 테마는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노래는?"이다. (두 번째 장은 "앞으로의 나를 표현하는 노래는?"이다. 이후에 다른 글로 정리할 생각이다.)
질문지를 마주하고 몇 달 전의 면접이 떠올랐다. 코로나 19로 화상으로 진행했던 두 차례의 면접은 꼬박 두 시간씩의 질문과 대화로 채워졌다. 길었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압박면접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질문과 반응들이라 오히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면접관으로 임했던 이전 회사의 40분짜리 면접도 길고 힘들었는데, 그때의 2시간짜리 면접은 알찬 대화를 끝낸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해치운' 질문들이 아니라, 면접이 끝난 뒤 혼자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은 질문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화상면접 중 메모한 몇몇 질문들을 종종 본다. 회사를 떠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소홀히 해선 안 될 것들이 담겨있어서다.
이번 인터뷰의 질문들 역시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많았다. 그리고 그 점에 또 한 번 회사에 취하고 만다. (이전 글 "회사에 취하다"참고) 질문지를 받은 후, 주말을 포함해 혼자 있는 동안엔 줄곧 이 질문과 나의 답에 빠져들었다. 내용과 함께 흐르는 노래의 조화가 참 절묘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서 어제 밤늦게 완성한 이 답을, 컬쳐북이 완성되기 전에 조금 공개해본다.
Q. 우리 회사 또는 인생에서 지금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노래는?
<Try Everything> - Shakira
2016년 개봉했던 영화 <주토피아>의 OST로 유명하다.
Q. 왜 이 노래를 선곡하셨나요?
이렇게 스타트업에 합류한 것도 내게는 나름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지금은 하고 있는 일이나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들, 그 방법까지도 이 노래와 많이 닮았다.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 홉스처럼 남들의 시선이나 의견,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시도하는 내가 좋다. 특히 노래에서처럼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
Q. 요즘 가장 고민은?
코로나 19가 퍼지는 동안 운동을 못해서일까,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체력이 가장 큰 고민이다. 일에서나 생활에서나, 끊임없이 도전하려면 체력과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을 인사처럼 쓰고 있는 코로나 19 시대, 건강관리가 가장 걱정거리라는 점은 당연한 것 같기도,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최근에 체력 저하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어, 한동안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Q. 요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내가 쓴 글이나 책에 보여주는 관심과 공감들에 힘을 얻고 행복해진다. 독립출판으로 1년 전 나온 책이라 이전만큼 빈번하지는 않고, 이제 막 오픈한 브런치에 쌓인 글도 적지만 소소한 기쁨이랄까. 올여름엔 책의 일부분이 짧은 한편짜리 웹드라마로 제작되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추가하자면, 브런치에서나 주위 지인들에게 많이 자랑하는 우리 회사도 행복요소다. 나의 일이 정말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고, 중요한 가치에만 집중하는 업무 시간이 좋다.그래서인지 아직까지는 출근이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월요일조차도), 정말 큰 변화 아닐까?
Q. 지금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표현할 더 많고 새로운 해시태그들을 찾아가는 것. 짧게 설명할 수 없는 다차원의 사람이고 싶다. 지금까지 그랬듯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면서 나에게 맞는 걸 찾고 싶다.
Q. 이 노래 가사 중 가장 와 닿는 구절은?
I won’t give up, no I won’t give in Till I reach the end and then I’ll start again
여러 차례 반복되는 구절인데,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end를 나는 'try'로 생각하고 싶다. 나는 끝끝내 모든 걸 완성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시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어떤 임원분과의 면담에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시도는 정말 많이 하는데 지속적으로 해내는 것이 어렵다"라고 고민을 상담한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이 아주 쿨하게 "그럼 좀 어때?"라고 반문하셨는데, 그 시간은 지금까지 회사에서 한 면담 중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30분이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왜 스스로 계속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갇혀있냐는 질문이었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주위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이제 나는 '완성'을 시도에서 찾는다. 새로 배워본 운동, 시도해 본 삶의 루틴이 내게 맞다면 내가 힘들게 노력하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그냥 즐기는 사이에 나의 새 해시태그가 될 거라 믿는다.
작년에 딱 3개월 배운 캘리그래피는 너무 재밌었지만, 세 달째가 되니 계속해서 배우고 싶지 않았다. 강습을 연장하는 대신에 여행 중 들른 대형 문구센터에서 캘리그래피 펜을 여러 개 샀다. 그 펜으로 내가 쓰고 싶은 문구만 틈날 때마다 연습했고, 책의 굿즈로 캘리그래피 엽서를 쓰기도 한다. 나의 캘리그래피 도전은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나만 알 수 있고, 내가 즐기는 형태로 완결했다.
Q. 이 노래가 나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요?
몇 년 전, 미리 유서를 한번 써본 적이 있다. 그때 내 삶이 다할 때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하는지 생각했다. 나는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나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살았던 사람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걸 정말 많이 시도한 사람, 마치 주디 홉스처럼!(주디 홉스는 토끼지만)
내 좌우명은 '후회하지 말자'인데,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조차 시도한 걸 후회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 않고 아쉬워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후회가 없다. 이제 고민될 땐 '하자' 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쌓아가기보다 그 목록을 '할 일', '한 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산다. 노래에서 계속 이야기하듯, 난 절대 give up 하지 않고 계속해서 try everything 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