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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Jul 25. 2020

출근하기 싫었던 어떤 여름

회사 앞에서 출근 시간을 기다렸던 이유


    출근길 버스 차창 너머로 고등학교 정문 옆 길가에서 교복을 입고 노닥거리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 학교 앞에 도착하고도 들어가지 않고 게임을 하는 듯 휴대폰에 열중하는 학생들을 보다 보면 한 때의 내가 떠오른다. 

    초반엔 강원 일부 지역에서만(속초, 고성 등) 가능하던 포켓몬고가 전국에 정식 서비스되면서 광풍이 불었다. 공원에 가면 휴대폰을 바라보며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떠오른 그 시기는 포켓몬고 유행이 사그라든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회사까지는 집에서 버스로 30분쯤 걸려, 늘 정시보다 넉넉히 일찍 도착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사무실에 들어가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일찍 도착해 탑에 소원이라도 빌듯이 회사 건물을 빙빙 돌았다. 때론 로비의 의자에 외부인처럼 앉아있기도 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 발견하고 말을 걸어오면 게임 때문이라고, 아직 게임의 전투가 안 끝났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때 게임은 그냥 공허함을 달래는 손 장난 같은 거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퇴근길보다 유독 출근길에 집착하던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견딜 수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숨 막히는 그 분위기와 그걸 만들어내는 켜켜이 쌓은 스트레스. 내 것이 아니라 빌려 쓰는 것처럼 영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자리에 도착하면, 마치 잠시 자리를 비웠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키보드를 톡톡 치면 잠들어있던 모니터 속에 어제의 전투가 그대로 되살아난다. 때때로 입력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지지직거리는 모니터를 보면,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불과 한 시간쯤 전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매일매일은 새로운 하루가 아니라, 아직 끝내지 못한 할 일로부터 유예받은 추가 8시간, 아니 8+의 시간이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일에 나의 시간을 내주다가 시간의 빚으로 바뀌는 날이 이어졌다.


    그 매일을 원천적으로 피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아주 조금씩 유예하는 나름의 방법을 택했다. 집과 저녁시간 같은 건 전투를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휴식에 불과하다는 듯 매일 나를 몰아세우는 그 전장에 조금이라도 일찍 빨려 들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그 전장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서로 의지했던 든든한 전우들이 전부였다. 주말에 푹 쉬는 것조차 평일에 일할 에너지를 주입하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유예하고 피하다 출근시간이라는 막다른 길을 만나면 그제야 내 자리에 닿았다. 침대보다 오랜 시간 함께하는 모니터 너머의 회의실 이름은 war room. 애초에 전시상황실을 콘셉트로 만들어졌으니, 매일 전쟁 같은 하루가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대신 폭염 아래 배회하기를 선택할 만큼 피하고 싶었던 그 전쟁터에서 1년여간 지속된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 나는 알지만 동시에 모른다. 어쩌면 결과를 겪어낸 지금의 나보다, 손 부채질을 하며 여름철 회사 앞 보도에서 출근 시간이 나를 잡아갈 때까지 도망치던 내가 더 정확히 알고 있을 것 같다. 지나간 기억은 긍정적으로 해석되기 마련이고, 포켓몬고 중독자처럼 보였던 그 여름의 나는 전쟁터의 한가운데 있었으니까. 


    끝난 전쟁은 그 세계의 유산으로 남았다. 그저 나는 그 여름의 나, 출근길에 본 학생들과는 달리 빠른 걸음으로 회사에 들어가는 요즘의 나 자신이 좋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설 때 만나는 반가운 인사들 너머로 느껴지는 에너지 넘치는 공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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