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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Dec 24. 2020

세상을 만드는 일

무대감독을 꿈꿨던 작가 지망생


    지난 10월 말, 가을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든 산을 보다가 고등학교 때 클럽활동으로 했던 클레이 애니메이션(Clay Animation)이 떠올랐다. 우리가 했던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찰흙 같은 소재로 인형을 만들어 이를 미세하게 움직여가며 촬영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었다. 보통은 <웰레스와 그로밋 Wallace & Gromit>이나 <치킨 런 Chicken Run>을 생각하면 된다. 학창 시절에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TV 광고도 종종 있었던 때라, 동아리 목록에서 이걸 발견하고 꼭 합류하고 싶었다. 


<치킨 런>의 한 장면    - 출처 : 네이버 영화



    동아리에서 나는 배경을 담당했는데, 영상의 프레임 속 인물이 활동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벽이며 바닥 같은 '공간'에서부터 하늘이나 산 같은 풍경, 그리고 전화기나 책상 같은 소품까지 인물을 제외하고 화면에 담길 모든 것들이 배경이었다. 실제로 촬영이 이루어지는 각 세트의 크기는 책상 하나만큼도 되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그래서 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찰흙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일부 소품을 제외하고 배경팀에서 찰흙을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특히 간단히 색칠한 도화지로도 쉽게 채울 수 있는 하늘과 달리, 나무와 숲은 제작 방식에 따라 화면에 보이는 모습이 천차만별이었다. 실제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나무를 만들기도 했고, 때로는 스펀지를 찢고 적절하게 색을 칠해서 산의 능선이나 풀숲을 꾸몄다. 일반적인 영상작업이라면 소품 선정이나 장소 섭외로 마무리할 일들이 대부분 무에서 를 창조하는 것으로 바뀐다.


    손가락이 초록색으로 물들 만큼 많은 작업이 필요했던 산 배경이 시나리오에 등장하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작은 가구나 소품이 많은 일상 공간을 제작하는 것이 오히려 즐거웠다. 방의 컬러와 벽지를 정하고 소품을 배치하는 모든 것이 내 손에 맡겨지는 자유로움이 좋아서였다. 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준비하면서 산을 배경으로 한 장면을 촬영하게 됐을 때,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아마추어(armature)'라 불리는 인형 뼈대와 나무 모형을 구매했다. 

뼈대로 사용했던 아마추어와 디오라마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나무 모형 (출처 : ebay)



    가을의 색이 잘 섞인 산을 보다가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떠올린 건 아마 그때 만들었던 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사용한 나무 모형을 보며 더 완성도 높은 배경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실제에 더 가깝게 보이도록 많이 노력했다. 여름방학을 포함해 거의 한 학기 이상 노력한 그 작품은 출품했던 청소년 영화제에서 수상도 했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상업 클레이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그야말로 아마추어(amateur) 다운 결과물이었다.  



    인물과 배경의 완성도를 떠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프레임 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초당 프레임을 나타내는 FPS(Frames Per Second)가 영화의 경우 24 정도인데, 애니메이션은 프레임 수가 곧 비용과 시간으로 직결되어 24개의 프레임을 1초에 채우기 어렵다. 어릴 때 일요일마다 TV 앞에 앉아있게 했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초당 30 프레임을 사용해 영화보다 자연스러운 만화를 구현했다고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8개에서 12개 정도의 프레임을 사용한다고 알려졌는데, 우리는 그보다도 훨씬 적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4개 이하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수상까지 했던 영상이 나게 남아있지 않은 건 아쉽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다시 한번 상영해보면 그 어설픈 영상에도 웃음이 난다. 내가 만들었던 산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또렷하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학업과는 관계도 없던 동아리 활동에 큰 매력을 느꼈고, 나중엔 배경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에 작가라고 썼던 장래희망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바뀌었다. 어린 시절 내내 같았던 작가라는 꿈이 왜 갑자기 변했는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도 글을 쓰는 것처럼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하고 채워갈 세계를 갖는 건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가 아니다. 물론 각본가와 감독이 있을 테니 나 스스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자유롭지 않겠지만, 대신 물리적인 공간을 갖는 특별함이 있다. 뒤늦게 그 두 개의 꿈이 공유하는 같은 결을 알아챈 약 20년 후의, 오늘의 나는 어떤 세상을 지금 만들고 채워가고 있을까. 


    그즈음 출연했던 EBS <장학퀴즈>에서 만난 진행자로부터 받은 사인에는 '꼭 멋진 무대감독되세요'라고 쓰여있다. 그 사인을 받고 설렜던 18살 고등학생이 기대한 대단한 무대감독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연출하고 출연하는 극(Play)의 무대를 책임지고 있다. 갑자기 생긴 나무모형이 애니메이션 배경을 만드는 내 열정을 불태워줬듯, 나도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내 삶의 내용에 맞는 무대를 만들어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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