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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Dec 01. 2020

나의 방향, 나의 취향

<하루의 취향>을 읽고 

    에세이를 읽다 보면 저자가 나와 '결'이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독서라는 건 본질적으로 아주 조용한 내면의 활동인데, 그런 책을 만나면 '나도 나도!' '맞아 맞아!' 하며 마음속이 시끌벅적해진다. 이 책도 그랬다. 호텔 라운지에서 애프터눈 티와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저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어쩜 모든 상황에서 내리는 판단이 나와 같은지! (단지 술을 좋아해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큰 부분인 것은 인정하지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결혼한 저자가 남들의 시선이나 의견(이라고 쓰지만 나는 잔소리라고 읽는다)에 신경 쓰지 않고 집을 매매하는 부분은 오늘 나의 가장 큰 고민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집에 대해 고민한다는 건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대목에서 또 내 마음속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 비슷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파트는 내가 살고 싶은 집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에게는 필요 없을 수 있지만 나에겐 너무 중요한 공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만의 바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나 한 시간쯤 느리게 취할 것 같은 야외 공간 (이왕이면 루프탑), 아파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중정이나 복층의 취미 룸 같은 것들.

    내가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커뮤니티 시설을 공유하고 싶지 않지만, 소수의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밤새도록 술잔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게스트룸도 필요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느끼지 못했다는 게 더 의아할 정도로 내가 살고 싶은 집에는 내가 살고 싶은 방식과 모습이 녹아있었다. 나의 첫 번째 책 <잔이 비었는데요>에 쓴 것처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해시태그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용도에 맞게 공간을 잘게 나누고 싶은 집 구조의 취향도 결국은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연결된다. 



제가 바깥사람입니다


    부부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계수입을 주로 담당하는 것은 남자 쪽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 반대로 일상을 영위하면서 때때로 받았던 질문에 대해서도 말한다. 남자 쪽이 자존심 상해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주위의 질문은 현실에서 이제 막 따온 것 같은 질문이다. 예전에 즐겨보던 웹툰 중에 여자가 출근하고 웹툰 작가인 남자가 집안 살림을 하며 사는 일상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나도 어렸고 아이를 낳고 싶진 않지만 결혼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때라, 하우스 허즈번드로 함께하는 삶에 만족할 사람을 만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보다 훨씬 어렸던 고등학교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남편이 나보다 수입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더니 펄쩍 뛰며 반대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나이에도 명절이면 때때로 친척 어르신들로부터 들었던 '잘난 남자 만나서 시집가는' 루트를 나는 온몸으로 거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나와 함께 살 사람에게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직업, 수입, 학력 같은 것들이 나의 가치를 말하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지금 나이의 절반쯤 되던 그때는 그게 중요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런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내가 그 틀에서 벗어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도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가 남들의 반복되는 질문에 넌지시 물어보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렇게 갇혀있지 않고 고정관념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자기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내 취향으로 내 삶을 채우기 


    특히 일에 대해 다룬 내용들도 비슷해서 놀라웠다. 나는 일을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가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다른 사람과는 다른 많은 취향이 같더라도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기 때문이다. 광고 업계에서 일하는 그녀가 리더 역할을 맡고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말이 '광고는 두 번째'라는 것은 일상의 선호에 가까운 다른 취향들과 달리 '와 정말 이 작가님은 나랑 비슷하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책을 통해 나는 한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 색으로 자기 삶을 칠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저자의 다양한 취향은 (여행 스타일도, 술을 대하는 진심도) 나와 많은 부분이 같았지만 아마 구체적으로 나의 취향을 쓰다 보면 분명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보일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세히 아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떠나보내며, 내 취향을 탐색하는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내 삶을 남의 취향으로 채울 순 없으니까. 12월 한 달 동안 매일 내 취향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적어갈 생각이다. 내 방향을 찾아두고 맞이할 2021년을 기대하며.


 취향(趣向) :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취향'이라는 단어에는 방향이 숨어 있다. 내가 어떤 방향에 마음이 동하는지 알면, 다른 사람의 취향에 흔들리지 않고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흐르듯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19로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집 밖을 나서는 일상의 여행조차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지만, 내 취향을 찾는 여정은 집 안에서도 얼마든지 멀리 떠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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