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호텔로, 세이프패스(SafePath)
*들어가기 전 : 특정 서비스를 주로 언급하지만 광고도 아니고 혜택 제공도 없었습니다. 그저 온라인을 유영하다 찾은 신규 서비스에 대한 느낌을 기재한 글입니다.
불편러가 세상을 바꾸고, 귀차니스트는 시장을 만든다
작년 11월, 메모장에 이런 문장을 적어두었다. 비슷비슷하게 채워지는 인스타그램 속 광고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서비스를 발견한 날이었다. 이 광고가 나에게 도달한 이유에는 아마 주로 용산구에서 활동하는 지리적 특성, 그리고 (실제로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1인 가구라는 속성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관심이 생겨 찾아본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아직 이 서비스는 용산구 일부 지역에 한해 이용할 수 있었다.
광고 이미지와 문구는 아주 간단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비스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광고를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고, 의식의 흐름을 느낄 새 없이 링크를 클릭했다.
세이프패스는 룸 클리닝 서비스를 기본으로 한다. 광고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집에 없더라도 전문가가 방문해 주기적으로 청소와 정리정돈, 쓰레기 처리 등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출근이나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마치 호텔에서 하우스키핑을 받은 것처럼 말끔한 집을 만날 수 있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론 예전부터 이런 청소 서비스는 있었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된 이후에도 선뜻 지출하자니 그게 고스란히 나의 게으름 비용 같았다. '혼자 사는 집인데 그걸 못 치워서 다른 사람을 들인다고?' 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등짝 스매싱이 느껴지는 것 같달까.
마침 이 광고를 봤을 때는 2달 이상 이어지던 재택근무가 끝나 출퇴근을 다시 시작했을 때였다. 긴 재택근무로 익숙해진 1초 출퇴근에서 다시 1시간 거리의 통근을 하다 보니 집을 말끔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려운 게 아니라 '귀찮았다'. 집안일이 대부분 그렇듯이, 어렵고 힘든 게 아니라 귀찮음의 영역 아주 깊은 곳에서 나를 지켜본다. 그 시선이 나를 스트레스받게 한다. 막상 시작하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손을 대는 게 가장 어렵고, 그렇다고 모른 척 미뤄두고 있자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찔리는 경험이 나에게만 있을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님의 말이다.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호텔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 맘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집은 일터이기도 하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세이프패스는 그렇게 기본적으로 집이 일터로 기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덩어리 일들을 '스탠다드' 서비스로 해결해준다. (이벤트 가격이긴 하지만) 주 1회 5만 원에! 거기에 내가 부재중인 동안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옵션들을 제공한다. 호텔 베딩과 호텔 수건 서비스도 그중 하나인데, 내가 세이프패스의 고객이 된다면 무조건 이용하고 싶은 옵션이었다. 시트와 이불 커버, 페이스 타월을 매주 교체해준다고 한다. 룸 클리닝과 함께 호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서비스를 받게 되는 셈이다. 그 외에 화장실 청소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가구의 이동/조립/폐기 같은 잡다한 일도 옵션으로 요청할 수 있다.
혼자 살다 보면 때로 설치기사나 수리기사의 방문처럼, 얼마 안 걸리지만 어쩔 수 없이 반차나 휴가를 써야 하는 일들이 있다. 고양이더러 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 없으니 아까운 휴가를 소진하게 되는데, 세이프패스는 이런 부재중 대행 서비스도 옵션으로 제공한다. 서비스를 받는 날 도착한 택배가 있다면 무료로 소독 후 집 안, 또는 냉장고에 넣어주기도 한다고 한다. 사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찾아보니 서울도시가스그룹에서 실험적으로 진행하는 서비스인 것 같고, 실제 사용자의 후기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사소한 부분까지 서비스로 잘 정리되어 있는 게 신기했는데, 블로그에 방문해보고 모든 서비스를 관통하는 하나의 니즈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게 세이프패스가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가치이자, 타깃으로 삼은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아닐까? 집을 또 하나의 일터가 아니라 휴식공간으로 돌려주는 것. 예전에는 모두 스스로 또는 집 안에서 해결해야 했지만,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해지거나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배달 서비스들은 물론이고 비대면 세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런드리고, 친구나 지인에게 부탁하는 대신 편하게 의뢰할 수 있는 도그메이트 같은 펫시터 서비스도 해당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전히 집안일을 조금 대신하는 것에 지출하기에는 큰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앞서 언급했던 <여행의 이유> 속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집을 호텔처럼 느끼게 해주는 셈인데 충분히 합리적인 비용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세이프패스가 수입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만을 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접 집안일을 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이 비용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걸어서 불과 몇 분인 편의점이나 식당에 방문하는 대신 배달앱으로 음료나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 앞으로 음식이 배달되는 동안 내가 하는 건 생산적인 일이 아닐 때가 훨씬 많다. 이미 봤던 TV 프로그램을 또 보며 낄낄거리기도 하고 음식을 기다리며 먼저 맥주를 한잔 하고 있기도 한다. 그저 같은 금액이라도 내가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뿐이다. 같은 수입을 얻는 나 자신조차 당시의 상황에 따라 이 '귀찮음 비용'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집 안에 머무르는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몇 걸음'의 가치가 배달료보다 비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스크림과 과자 나부랭이조차 배달로 시키는 건 나에겐 이성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외출에서 돌아오던 나는 500미터쯤 돌아가야 들를 수 있는 편의점이라도 직접 들러서 사 오는 것이 배달료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가치를 부여하는 기준은 모두 주관적이니까 어떤 것이 맞다고 따질 수 없다. 다만 이런 귀차니스트들이 전에 '집 안'에만 갇혀있던 집안일을 무대에 올렸다. 세이프패스가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는지, 앞으로 계속해서 유지할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운 문을 열었다는 것 만큼은 확실해보인다. 이 무대가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그건 얼마나 많은 귀차니스트들이 응원하고 지지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불편러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난 고작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라떼'와 지금의 학생들이 경험하는 것들의 차이를 실감한다. 역사적인 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일상에서 느껴지는 변화다. 2000년대 초반에는 '귀차니스트의 정수'라고 기사에 소개된 로봇청소기가 지금은 3대 이모님이 되었다. 결국 이렇게 전에 없던 시장을 만들고 펼쳐내는 건 귀차니스트들이 아닐까?
집이라는 또 다른 일터가 나의 온전한 휴식처가 되는 게 생각보다 빨리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일부 지역에 한해 서비스되고 있는 세이프패스가 잘 자리 잡아서 '세세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은 귀차니스트들이 나도 인지하지 못한 나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시장을 열어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시장이 열렸을 때 초기 사용자로서 시장을 지지해주고 함께 지킬 수 있도록 앞으로도 귀찮은 건 귀찮다고 느끼며 해결이 필요하다고 열심히 떠들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