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정문에서 교실에 들어가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길게 이어진 경사로를 끊임없이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1~2분 차이로 지각을 다투던 내게 이 길은 야속하기만 했고, 그렇게 경사로를 다 올라도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야 했으며, 어김없이 건물 입구에선 학생주임 선생님이 허리에 손을 짚고 기다리고 계셨다.
연이어 반복되는 학창 시절의 나날이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가장 깊게 각인된 학교에 대한 이미지는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제 역할을 다한 듯 흩날리며 사라지던 벚꽃이다. 입구 경사로를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탓에 알고 보니 숨은 벚꽃 명소였던 것이다.
어느 봄날, 점심시간 친구들과 벚꽃에 뒤덮인 길을 걸으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담소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사진 속 배경이 되어준 그날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바람에 날려 후드득 떨어지던 벚꽃 비, 내게 각인된 여고시절의 가장 강렬한 추억이자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때 처음 떨어지는 꽃잎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이후 내게 봄의 색깔은 딸기우유 색, 생각나는 이미지는 흩날리는 벚꽃이 되었다.
보통 여행에도 철이 있다고 한다. 성수기와 비수기, 피해야 하는 시기와 꼭 가봐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통념보다는 내 머릿속엔 도시마다 어울리는 계절이 있다. 여름의 파리, 뉴욕의 가을, 지구 저 반대편에서 서머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시드니의 여름이자 우리의 겨울, 그리고 도쿄의 봄이다.
3월에서 4월에 걸쳐 약 한 달 남짓, 짧게 폈다 사라지는 꽃. 도시 전체가 핑크빛으로 물드는 그날에 떠나겠다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계절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 말이다. 그렇게 벚꽃 흩날리는 어느 봄날, 나는 도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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