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드는 목과 주머니에 찔러 넣은 두 손, 두꺼운 외투와 무거움 짐. 내가 겨울,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추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짐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갈 만큼 최대한 가볍게, 그리고 여행지에선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는 게 내 여행의 모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 겨울, 나는 운명처럼 도쿄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바로 난생처음 마주한 어느 낯선 도시의 겨울이다. 내가 살아가는 지역이 아닌 곳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겨울이란 얘기이다.
그 사연은 아주 기구하게도 전세사기를 당할 뻔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서 구해뒀던 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일정에 맞춰 급히 다시 집을 구하다 보니 입주까지 약 2주의 시간이 붕 뜨게 되었으며, 졸지에 나는 서울 하늘아래 살아가는 집 없는 어른이 될 처지에 놓였다.
‘한때 유행하던 호텔살이를 할 것이냐, 아니면 이 참에 여행을 떠나볼까, 지금 호주는 한 여름일 텐데 시드니가 좋겠지?’ 등등.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이직 준비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시간은 남아돌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연락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 너무 먼 곳으로 떠나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다시 도쿄이다. 이미 익숙하다면 익숙한 곳, 별다른 준비도 필요하지 않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비행기로 1시간이면 다시 돌아왔다 다시 갈 수도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을까? 이로써 겨울엔 떠나지 않는다는 나만의 철칙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도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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