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오래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 아니면 뒤에서 두세 번째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터질 듯한 숨참과 입 안에 느껴지는 비릿한 맛이 싫었다. 운동장 몇 바퀴 돌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제일 싫었으며, 체력 시험을 봐도 오래 달리기 점수는 나의 평균을 깎아내릴 뿐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폐활량이 좋지 않은 가봐.’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초등학교 6학년 가을 운동회에서 나는 우리 반 계주 대표였다. 오래 하는 건 못해도 빨리하는 건 자신이 있었던 거다. 2차 성징과 함께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는 달리는 걸 멈췄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장거리든, 단거리든 최선을 다해 뛰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아예 달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달리는 건 못해도 걷는 건 자신 있다. 하루 2만 보는 아무렇지 않게 걷기도 하며, 연속으로 2시간도 걸을 수 있다. 평소엔 이런 능력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지만, 여행 중에는 백분 발휘된다. 웬만한 거리는 대중교통 대신 걸어 다니고, 최단 경로를 선택하는 대신 가야 할 방향만 정해 놓고 걷는다. 목적지까지 1시간 정도면 일단 걷고 보는 것이다. 조금은 멀리 돌아가도 상관없었다. 방향만 올바르다면.
그렇게 정해진 루트 없이 걷다 보면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보통의 관광객이라면 찾지 않을 거리의 풍경, 현지인들의 삶, 여행책자에선 찾을 수 없던 진짜 맛집 등.
일단 도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못하는 걸 잘했다. 엄마들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자전거 앞뒤로 아이들을 태우고 골목골목을 누볐고, 직장인들은 사시사철 포멀한 정장을 차려입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겼으며, 상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는 통에 올빼미형 인간인 나는 마감시간을 맞추느라 헐레벌떡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이곳 사람들은 기다림을 당연시 여기며 서두르지 않는 느림의 미학을 즐길 줄 알았다. 길게 늘어선 줄과 느리게 나오는 음식에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달리기도 아주 잘했다. 도시 곳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공원과 정원이 자리하며 산책이나 조깅을 즐길 만한 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도로 위에선 번쩍번쩍한 세단보단 작고 귀여운 경차가 많이 보였고, 위협을 가하며 쌩쌩 달리는 대신 멈출 때를 알았다. 여기라면 차에 치여도 크게 다치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전거도 달리고 사람도 달렸다. 학생들은 오와 열을 맞춰 달리고, 어른들은 이어폰을 끼고 본인만의 루틴을 쫓아 달렸다. 그중 누구 하나 중간에 포기하는 이 없이 말이다. 그렇게 도쿄 사람들은 달리고 나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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