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TUS
BGM.
https://www.youtube.com/watch?v=6HunV-jPgwA&list=RDEMTnkSpjned73VcLyYhak__g
어릴 땐 사랑이라는 게 좋아하는 마음이 심화된 상태 같은 거라고만 여겼었다.
십대 중후반에 유학을 떠나기 직전 한 달간, 한 어학원의 영어 회화반과 일어 회화반을 하나씩 수강했다.
하루는 미쿡인 강사가 뜬금없이 장난치듯 내게 "Do you love him?"이라며 옆에 있는 20대 초반 남학생을 가리켰다. 그 남학생은 어린애 같던 나보다는 차라리 맞은편에 앉은 또래의 예쁜 여대생을 의식하고 있을 게 뻔했고, 나로서도 그는 아는 오빠 축에도 아직 들어가지 않는 범주였다.
나는 학원이란 곳을 종류를 막론하고 중1 봄 이후로 처음 다녀 보는 거였던 데다가 몇 주 뒤면 타지 생활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꽤 들떠 있었다. 학교도 중학교 졸업 후 2년여 만에 다니게 되는 셈이었으니까. 싱숭생숭한 기분에 낯가림 없이 스스럼없는 살가운 태도가 더해지니, 강사가 그걸 '다른 종류의 들뜸'으로 착각하고 그리 물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이성도 동성과 가급적 구분 없이 똑.같.이. 대하고 모오오두와 잘 지내려던 시절이었으므로 두루두루 친하게 대했을 터였지만, 남녀 유별이 지금보다 유별났던 사회 문화에서는 그게 외려 부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공.평.하려는 자세가 남이 보기엔 이성異性적인 관심을 표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성理性이었건만. '어제는 저 언니 옆에 앉았으니까 오늘은 이 오빠 옆에 앉아야겠다. 내일은 균등하게 떨어져서 앉아볼까. 골고루 돌아가면서 치우치지 않게-'라는 의지도, 동성의 옆자리가 비어 있는데 굳이 이성의 옆자리를 택하는 연애 심리로 보였던 것이리라. 게다가 대체로 학생들은 웬만하면 늘 같은 자리를 선호하니까.
Do you love him?이라는 질문도 생뚱맞기 그지없긴 했으니 그로선 단순히 수업에 재미를 더하고 싶었던 건지도.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What?이나 Pardon?이라고 아마 되물었겠고, 그는 질문을 취소하지 않고 꿋꿋하게 Do you LOVE him?이라고 반복했던 것 같다. No way-그럴 리가요!라고 오버스러운 황당한 웃음으로 받아치려다가, 장난이라도 그 남학생이 만약 보기와 달리 유리멘탈이면 어쩌나 싶었다. Why are you asking?왜 물어요?라고 찌르면 익살스런 표정을 보태더라도 분위기가 떨떠름해질 수 있겠고. 그렇다고 Yes, I do~라 농해도 은근 부담이겠지. 행여 오해받는 것도 사양이었다. 진퇴양난.
나도 모르게 절충안을 토했다. "I like him, but not lo~ve좋아하지만 싸랑은 아닌데욥~"
대답 잘했다 싶어 흡족해하며 씨익 웃었고, 학생들도 강사도 유쾌하게 웃었다.
농담이었든 아니든, 그때 강사가 말한 love는 아마 이성異性적으로 느끼는 연심을 가리키는 것이었을 테니 박애나 인류애, 가족애, 깊은 우정, 동료애 같은 사랑과는 구분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종류의 사랑을 다 포함해서,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좀 다르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은 별개다. 영어의 I like it 같은 경우도 '꽤 괜찮네/그거 좋은데/(약간이라도) 마음에 든다' 등의 가벼운 칭찬으로도 잘 쓰이니까 '좋아한다'와 늘 같은 뜻은 아니고.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남학생을 배려한 것도 인간에 대한 일종의 사랑이었지 딱히 그를 좋아한 까닭은 아니었다. 아니, 당시의 나는 뭐.든. 누.구.든. 웬만하면 좋아하고 잘 지내려 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웬만하면 어느 원소와도 잘 붙어 지내는 탄소라도 되는 것처럼.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고 그건 그래서 좋고. 미움받거나 미워하는 게 오히려 힘들었지. 좋아하는 건 서.로. 좋.은. 일이고, 그래서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엄밀히는 '좋은 것'과 '좋아하는 것'도 별개인데, 그땐 좋으면 그냥 좋아했던 것 같다. 좋아했던 건지 좋아하려고 했던 건지는 기억이 좀 묘연하다. 그땐 좋아하려고 하면 어지간한 빌런이 아닌 다음에야 자연히 좋아할 수 있었고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나 삶의 활동을 좋아하기를 좋아했으므로, 따로 관념을 두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언제부턴가 가족을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밖에서 타인으로 만났다면 사이좋게는 지냈겠지만 솔직히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하지만 지금껏 열렬히 좋아했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사랑해 왔고 사랑하고 있으니,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은 별개라고. 사랑하니까 당연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건 전제에 오류가 있었다고. 좋아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게 딱히 모순도 아니라고. 어쩌면, 아마도, 피차일반. 무엇보다, 가끔은 나 자신이 참 싫지만, 20세기 이후 탄생한 사람 중에 나보다 나를 제대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연인이나 어릴 적 짝사랑했던 이들, 친구들도 그렇다. 좋아서 어쩔 줄 몰랐던 사람에게는 정작 줄 수 있는 사랑도 제대로 못 주고, '어쩔 줄 알게'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대개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줬던 것 같다. 쑥스러워 괜히 튕기거나 하는 성격도 아닌데 어쩌다 그리 됐나 모르겠다. 강렬히 좋아하면 사고의 여유가 부족해져서 그런가. 머릿속이 하얘져서 뭉게구름 위에 떠 있을 때는 땅 위의 세세한 것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되니까 그런지도. 꼭 연애 감정이 아니어도, 대상이 무엇이든 그런 恋은 있다. 그런데 그게 꼭 愛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행히 좋아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때가 더 많은 듯하나, 그래도 도파민 분비와 짝을 이루는 감정이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경우라고 해서 그걸 꼭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못하겠다. 애착과 집착, 사랑과 자존심을 분별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고, 좋아한다는 명목으로 그런 유사 사랑을 받고 싶지도 않다. 겪어 보니 끔찍했다. 그래서 '너무 정신 없이 좋아하진 말아야지. 그래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곤 한다. 내게 있어서 愛는 세로토닌 쪽과 교집합이 더 크려나.
하여, 지나간 날들에는, 오늘도 이불킥하며 한번 웃어 주고.
*연정, 연모, 사모, 애정, 경애, 친애 등등 굳이 표현하자면 할 수는 있겠지만, 일상적인 말에서 우리는 그냥 '사랑'이라고 통합해서 표현할 때가 많지 않나. 일본어는 흔히 간단하게 '사랑'이라고 할 때도 恋こい와 愛あい를 적당히 구분해서 쓰니 그런 점에서 덜 헷갈린다.
오오하시 트리오의 곡 <LOTUS>의 가사는 어떻게 번역하는 게 좋을까.
恋という幻を見て
愛という悲しみを知る
연애라는 환상을 보고
사랑이라는 슬픔을 알게 되지
이 구절은 둘 다 사랑이라고 번역하면 의미 전달이 힘들겠고.
咲かない恋 水を撒いては
咲いている愛は枯れ果てたまま
피지 않는 연심에 물을 주고서
피어 있는 사랑은 말라비틀어진 채
이건 둘 다 사랑이라고 번역해도 무난하겠지만 여전히 뭔가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