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죽음을 예감했던 백령도 해병

유서를 쓰고 다음 생을 기약했던 순간

by 김진용 GSG의장

흑룡부대, 유서를 쓰고 전투배치 된 사내

— 총 대신 기도를 품은 병사

1999~2001 복무하던 시절

갓난아기 때 죽음으로부터 살아난 나는,

결국 스스로 또 한 번 죽음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1999년. 서해가 피로 물들었던 그해 여름,

제1 연평해전(당시 우리 대한민국 해군이 북한 군함들을 격파시켰던 ‘서해교전’이 원래 명칭)이 터졌고, 수십명의 인민군들을 잃고 격분한 김정일은 NLL(북방한계선)을 멋대로 긋고 보복을 위한 전면전을 예고한 상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이라 뉴스에는 한두줄 정도만 나오고 군 가족들 이외의 국민들 대다수는 체감을 못했다. 그전에 이미 나는 ‘해병대 자원입대’를 결정한 상태에서 입대 날짜를 받아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그렇게 아프게 자랐는데, 왜 하필 거길 가냐?”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기도로 얻은 이 생명을,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쓰고 싶었다.


내가 배치받은 곳은

서해 최북단, 백령도 흑룡부대 기습특공대.

IBS(공기부양 소형 고무보트)를 이용해 적진을 은밀히 공격하고 퇴각해야 하는

말 그대로 ‘가장 먼저 죽는 부대’였다.

우리 대대의 모체는 ‘812 북파 망치부대’


해병대 중에서도 실전을 앞세운 선봉.

그곳은 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엔 철조망 냄새, 바닷물 냄새, 그리고

‘죽음’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신병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북한 경비정이 해상 분계선을 넘었고,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소대장은 짧고 냉정하게 말했다.


“모든 병사는 유서를 작성하라.”


펜을 쥐는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이병이었다.

총도 제대로 쏴본 적 없는 이병.

유서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갑자기 다시 ‘그 연약한 아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는 썼다.

“어머니, 저는 지금 죽을 수도 있지만,

절대로 헛되게 가지 않을 겁니다.

기도해 주세요. 마지막까지, 부끄럽지 않게.”


용기를 내어 그걸 쓰고 나는 진지에 투입됐다.

전방 초소, 차디찬 흙바닥 위,

밤마다 북한의 확성기 심리전 방송이 들려왔다.

“너희는 포위됐다. 이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해역이다.”


숨도 크게 못 쉬었다.

다음 순간 들릴 수도 있는 ‘딱’ 하는 총성.

북쪽의 발포 한 방이면

모든 병사의 이름은 뉴스 자막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죽어도 헛되진 않겠다는 자위의 생각도 들긴 했다.


”환생이 된다면 강인한 놈으로 태어나리…“


그러나…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며칠 뒤, 상황은 해제되었고

우리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총을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


나는 병장이 되어도 유서를 버리지 않았다.

책 속에 끼워 두었다. 아마 지금 본가 어딘가에 유물처럼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죽게 될 그날을 위해.

그 유서는 단지 죽음을 위한 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더 바르게 살기 위한 나만의, 나를 향한 경고문이었다. 그래서 죽어서는 안되었고, 살아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


내가 갚아야 하는 게 얼만데.



작가의 메모


죽음을 준비한 자만이,

생명을 진심으로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상륙기습특공 63대대 전투태세 검열
전역 기념 앨범 중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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